[일요시사 취재2팀] 김준혁 기자 = 기획예산처(기획처) 초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이혜훈 전 국민의힘 의원이 29일 “불필요한 지출은 찾아 없애는 한편, 민생과 성장에는 과감하게 투자하는 방식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 후보자는 이날 서울 중구 예금보험공사에 마련된 인사청문회 사무실 출근길에서 기자들과 만나 “이런 시기에 초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데 대해 무거운 책임감이라는 말만으로도 부족하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 경제, 우리 사회는 성장 잠재력이 훼손되는 구조적이고 복합적인 위기에 직면해 단기적 퍼펙트스톰 상태”라며 “고물가와 고환율의 이중고가 민생에 많은 부담을 주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인구 위기 ▲기후위기 ▲극심한 양극화 ▲산업과 기술의 대격변 ▲지방 소멸 5가지를 우리 경제가 직면한 구조적 이슈로 꼽으면서 “이는 어느 날 불쑥 튀어나와서 예상치 못한 위기를 만드는 ‘블랙스완’이 아니라, 위험을 무시하고 방관했을 때 나타나는 ‘회색 코뿔소’의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회색 코뿔소는 미국의 경제학자 미셸 워커(Michele Wucker)가 처음 사용한 용어로, 충분히 예측할 수 있었음에도 이를 간과하고 대응하지 않아 발생하는 위기를 의미한다.
기획처 운영 방침에 대해 이 후보자는 “단기적으로 그때그때 예산을 배정하는 게 아니라, 기획과 예산을 연동하는 전략이 필요하다”며 “기획처 권한은 나누고 참여는 늘려 운영 과정을 국민 앞에 투명하게 공개하겠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더 멀리, 더 길게 보는 전략적 사고가 필요하다는 맥락에서 기획처가 태어난 것”이라며 “국민의 세금이 미래를 위한 투자가 되고, 그 투자가 또다시 국민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전략적 선순환을 만들어내겠다”고 강조했다.
다만 이 후보자는 이재명정부의 확장 재정 기조에 대한 견해를 묻는 질문엔 “언제 한번 그 얘기만 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겠다”며 말을 아꼈다.
지난 28일, 대통령실이 보수 진영 3선 의원 출신인 이 후보자를 기획처 초대 장관 후보자로 파격 발탁하자, 국민의힘은 ‘해당행위’로 규정하며 거세게 반발했다.
배현진 국민의힘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 “전직 중진 의원이자 현직 중·성동을 당협위원장이 탈당계조차 내지 않고 이재명정부에 합류하는 것은 정치적 도의를 넘어선 명백한 배신행위”라며 “이 후보자의 행보는 자기 출세를 위해 양심과 영혼을 팔았던 일제 부역 행위와 다름없다”고 비난했다.
같은 당 주진우 의원도 페이스북을 통해 “이 후보자 지명은 경제 폭망에 대한 물타기”라며 맹폭했다.
국민의힘도 보도자료를 내고 “서면 최고위원회의를 개최해 당헌·당규에 따라 이 후보자에 대한 제명과 당직자로서 행한 모든 당무 행위 일체를 취소하는 안건을 의결했다”고 밝혔다.
정가에선 보수 진영에서 ‘경제통’으로 평가받아온 이 후보자가 고물가·고환율 등 대외 여건이 악화된 현 국면에서 적임자가 될 수 있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나온다. 그는 한국개발연구원(KDI) 출신 경제학자로, 국회에서 경제·재정 현안을 중심으로 목소리를 내왔다.
또 재벌의 시장 지배력과 불공정 거래 문제 등에 비판적 입장을 보여온 그의 이력에 주목해, 정부가 ‘탕평 인사’라는 상징성과 공정경제 기조 보완을 동시에 겨냥한 인선 아니냐는 해석도 제기된다.
대통령실도 인사 브리핑에서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간사, KDI 연구위원 등을 역임한 정책과 실무에 능통한 분”이라며 “경제민주화 철학에 기반해 최저임금법, 이자제한법 개정안 등을 대표 발의하고, 재벌의 불공정 거래 근절과 민생 활성화 정책을 추진한 바 있다”고 지명 이유를 밝혔다.
일각에선 국민의힘이 인사청문회 등 공식 검증 절차 시작 전에 제명에 나선 것을 두고 성급한 판단이 아니냐는 평가도 나온다.
실제로 과거에도 당이 논란 당사자에 대해 ‘제명’ 카드를 꺼낸 사례는 있었지만, 통상 탈당 권유 등 절차를 거치며 수위를 조정해 왔다. 제21대 총선 당시 차명진 전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 의원은 세월호 유가족과 자원봉사자를 비하하는 취지의 발언으로 제명 요구가 거셌으나, 당 윤리위원회에서 ‘탈당 권유’ 결정을 내린 바 있다.
김만복 전 국가정보원장 사례도 있다. 앞서 김 전 원장은 지난 2015년 새누리당 당원 신분으로 야당 후보 선거운동을 지원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새누리당 서울시당 윤리위가 ‘탈당 권유’를 의결했다. 그는 이의신청을 제기했으나, 이후 최고위에서 제명안을 최종 확정했다.
다만 이 후보자의 인선을 둘러싼 우려 요인은 여전히 남아있다.
그는 문재인정부 시기 코로나 재난지원금 등 확장 재정 정책을 강도 높게 비판했던 바 있다. 또 지난 22대 총선에서도 국민의힘 서울 중·성동을 후보로 나서 “퍼주기 팽창 재정과 통화정책 때문에 지금의 끔찍한 고물가 상황을 초래한 장본인은 국민 앞에 사죄부터 하시는 것이 순서”라며 더불어민주당에 대해 직격하기도 했다.
현 정부도 확장 재정 기조를 내세우는 만큼, 인사청문회에선 이 후보자의 재정 철학이 정부 정책 방향과 어떻게 조율될 수 있을지가 주요 쟁점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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