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기의 시사펀치> 하루를 설계하지 못한 사회

2025.12.28 09:47:03 호수 0호

시간 관리가 아니라, 시간 질서가 무너진 것

우리는 하루를 24시간으로 나누어 관리한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시간을 관리하지 못한 채 시간에 끌려 다니고 있다. 새벽과 오전, 점심과 오후, 저녁이 서로 다른 시간대라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개인과 조직, 정치와 사회 모두 하루 전체를 동일한 긴장과 속도로 밀어붙인다.



그 결과는 만성 피로, 판단 오류, 감정 과잉, 그리고 사회 전반에 퍼진 번아웃이다. 이는 개인의 생활 습관 문제가 아니라, 시간을 다루는 사회 구조의 실패다.

새벽은 원래 하루의 방향을 설계하는 시간이다. 개인에게는 사고가 가장 맑고, 조직에게는 전략이 정리되며, 국가로 치면 정책의 기본 철학을 가다듬어야 할 시간이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 새벽은 이미 소진된 시간이다.

야근의 연장이거나, 과도한 일정 속에서 겨우 잠을 청하는 최소한의 휴식일 뿐이다. 숙의 없이 밀어붙인 정책, 충분한 검토 없이 쏟아지는 개혁 구호는 이 ‘새벽 없는 사회’의 단면이다. 출발선이 무너진 하루는 방향을 잃고, 방향 없는 하루가 쌓이면 사회 전체가 흔들린다.

오전은 하루 중 가장 생산적이고 판단력이 높은 시간이다. 개인에게는 핵심 업무를, 조직에게는 가장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시간이다. 그럼에도 한국 사회의 오전은 회의 준비와 보고 대기, 형식적인 일정으로 소모된다.

정작 중요한 판단은 오후로 밀리고, 에너지가 떨어진 시간에 졸속 결정이 내려진다. 성장해야 할 시간에 잡무를 쌓아두는 구조 속에서 개인은 지치고 조직은 정체되며, 국가는 경쟁력을 잃는다. 하루의 오전을 허비하는 사회는 결코 성장하지 못한다.


점심 이후는 하루의 전환점이다. 에너지는 다소 줄어들지만 감정은 안정되고, 경험과 균형 감각이 작동하기 시작한다. 원래 이 시간은 이해관계를 조율하고, 정책의 부작용을 점검하며, 사회적 합의를 다듬어야 하는 시간이다.

그러나 한국 정치와 행정에서 이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전의 기세를 그대로 끌고 가다 오후에 충돌이 발생한다. 조율 없는 속도, 숙성 없는 개혁은 결국 사회적 갈등과 정책 피로로 돌아온다. 중간 조정을 건너뛴 사회는 반드시 후반부에서 대가를 치른다.

오후는 체력과 집중력은 떨어지지만, 정리와 마무리에 적합한 시간이다. 그럼에도 한국 사회는 오후에도 오전처럼 달리기를 강요한다. 조직은 성과를, 정치는 속도를 요구하고, 언론은 자극을 부추긴다.

이 시간대에 내려진 결정은 감정에 휘둘리기 쉽고, 판단 오류의 위험도 커진다. 정책 실패와 조직 내 갈등, 여론의 과잉 반응은 대부분 이 시간대에 집중된다. 노년의 시간에 청년의 기세를 강요하는 사회는 결국 사고를 피할 수 없다.

저녁은 하루를 정리하고 비워야 할 시간이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 저녁은 또 하나의 낮이다. 회식과 추가 업무, 끝없는 알림과 뉴스가 이 시간을 잠식한다. 하루를 정리하지 못한 채 다음 날을 맞이하는 구조 속에서 새벽과 오전이라는 가장 중요한 시간이 무너진다.

개인의 수면 부족은 곧 생산성 저하로 이어지고, 사회 전체의 피로는 미래를 설계할 능력을 갉아먹는다. 저녁을 쉬지 못하는 사회는 내일을 준비할 수 없다.

이 모든 문제를 개인의 자기계발이나 의지 부족으로 돌리는 것은 책임 회피에 가깝다. 하루의 리듬을 무시하도록 설계된 사회 구조 속에서 개인에게만 ‘잘 살아보라’고 요구하는 것은 공정하지도, 현실적이지도 않다.

정치와 행정, 조직 문화와 노동 환경이 하루를 하나의 생애 구조로 인식하지 못한 채, 끝없는 직선 시간으로만 다뤄온 결과가 지금의 피로 사회다.

하루를 잘 사는 사람은 인생을 잘 산다. 마찬가지로 하루의 리듬을 존중하는 사회만이 지속 가능한 국가가 된다.

새벽에는 방향을 세우고, 오전에는 핵심을 결정하며, 점심 이후에는 균형을 조율하고, 오후에는 정리하고, 저녁에는 비우는 사회. 이것은 느림의 문제가 아니라, 질서의 문제다. 속도를 늦추자는 주장이 아니라, 시간을 제자리에 돌려놓자는 요청이다.


개혁은 거창한 구호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오늘 하루를 어떻게 운영하느냐에서 시작된다. 하루도 설계하지 못하는 정치가 미래를 말하고, 하루를 혹사하는 사회가 지속 가능성을 말하는 것은 모순이다.

인생은 오늘 하루에서 바뀌고, 사회 역시 오늘의 시간 사용 방식에서 바뀐다. 이제 질문은 분명하다. 하루조차 관리하지 못하는 사회가, 과연 내일을 설계할 자격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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