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2팀] 김준혁 기자 = 아픈 아내를 방치해 죽음에 이르게 한 육군 부사관이 살인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지난 16일 육군 등에 따르면 군검찰은 전날 경기 파주시 기갑부대 소속 상사 A(36)씨를 살인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앞서 육군 수사단은 그를 중유기치사죄가 적용됐으나 기소 단계에서 혐의가 상향됐다.
군검찰은 A씨에 대해 “부작위(마땅히 해야 할 행위를 하지 않은 경우)에 의한 살인죄가 성립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다만 살인이 인정되지 않을 경우를 대비해 예비적 공소 사실로 유기치사도 함께 적용했다.
A씨는 숨진 아내가 지난 8월부터 공황장애·우울증 등으로 거동이 불편해진 뒤, 온몸에 욕창과 구더기가 생겼는데도 3개월가량 병원 치료나 보호조치를 하지 않고 방치해온 것으로 조사됐다. 또 장인, 장모에겐 “아내가 공황장애가 심해 사람을 만나면 발작하며 쓰러진다”는 취지로 말해 방문을 막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사건은 지난 13일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다뤄지며 대중에 알려졌다.
방송에 따르면 사건은 지난달 17일, A씨가 “아내의 의식이 혼미하다”며 119에 신고하면서 시작됐다. 출동한 구급대는 파주시 광탄면의 주거지에서 전신이 오물로 오염된 30대 여성을 발견했으며, 해당 여성은 병원 이송 과정에서 심정지 증상을 보이다가 이튿날 패혈증으로 숨졌다.
병원 측의 신고로 긴급 체포된 A씨는 경찰 조사에서 “아내가 평소 섬유탈취제와 인센스 스틱을 사용해서 상태를 몰랐다”며 의혹을 부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해명에 의문을 제기했다. 강남규 응급의학과 전문의는 “살이 썩어 들어가는 냄새가 온 집안에 퍼졌을 것”이라며 “바닥이 진물로 새까맣게 변했는데, 같은 공간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이 모르기는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유성호 서울대 법의학교실 교수는 “변이 나왔다는 건 뭔가를 계속 먹었다는 의미”라며 “누군가가 음식물은 꾸준히 공급해줬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어 “피해자가 이불을 목까지 뒤집어쓰고 있는 점도 다른 사람이 씌워줬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고 설명했다.
사건 당시 거주지의 전기요금과 수도 사용량이 이전과 비교해 비정상적으로 늘어난 점도 짚었다. 정연제 서울과학기술대 에너지정책학과 교수는 “에어컨을 24시간 틀어놨을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김길복 한국수도경영연구소 소장은 “2인 가구에서 물 40톤(t) 이상 사용은 이해하기 어렵다”며 “하루 종일 물을 틀어놨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피해자가 생전 폭행을 당했을 가능성도 제기됐다. 강 전문의는 “어깨나 배에서 욕창 외의 원인으로 보이는 피부 괴사가 일어났다. 아무리 짧아도 3개월, 또는 그 이상 진행된 일”이라며 “특히 어깨 괴사는 가장 최근에 일어났는데 ‘자상’에 의한 괴사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흉부 CT에서 오른쪽 1번에서 6번까지 다발성 갈비뼈 골절 소견이 있는데 이는 심폐소생술에 의한 것은 아니”라며 “두꺼운 1번 갈비뼈가 심폐소생술로 골절되는 사례는 극히 드물어 외력, 폭행의 가능성을 의심해 볼 수 있다”고 소견을 밝혔다.
방송에선 고인이 최근까지 작성한 편지와 일기장 일부도 공개됐다. 해당 기록엔 “나 병원 좀 데려가줘. 부탁 좀 해도 될까” “죽어야 괜찮을까” 등 문구가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법조계에선 공소 사실이 어디까지 받아들여지느냐에 따라 형량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부작위에 의한 살인이 인정되면 형법 제250조에 따라 사형·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할 수 있다. 반면 예비적 공소 사실로 적시된 유기치사만 성립할 경우 형법 제271조·275조가 적용돼 법정형이 ‘징역 3년 이상’으로 낮아진다.
이와 관련해 강석민 변호사는 <그것이 알고 싶다> 취재진에 “감경될 만한 사정이 없다면 (유기치사죄로) 징역 5에서 7년, 길게는 10년까지도 가능할 수 있다”고 예측했다.
향후 재판에선 부작위에 의한 살인 공소 사실 인정 여부가 핵심 쟁점이 될 전망이다. ▲A씨가 피해자 상태를 인지할 수 있었는지 ▲보호·치료 조치로 사망을 막을 수 있었는지 ▲부작위와 사망 사이의 인과관계 등이 판단 기준으로 거론된다.
대법원에서는 부작위범 성립과 관련해 “결과 발생을 막을 작위의무가 있는 자가 이를 쉽게 방지할 수 있었음에도 용인·방관한 경우, 그 부작위는 작위에 의한 법익 침해와 동등한 형법적 가치가 있다”고 판결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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