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지난 21일 ‘헌법 수호’를 기치로 내걸고, 12·3 비상계엄과 관련해 내란에 가담하거나 협조한 공직자를 조사하고, 그에 따른 인사 조치를 신속히 진행하기 위해 “49개 중앙행정기관에 ‘헌법존중 정부혁신 TF’를 설치했다”고 밝혔다. 지난 11일, 국무총리실이 TF 출범을 발표한 지 불과 10일 만이다.
이는 12·3 비상계엄 이후 흐트러진 헌정 질서 회복이라는 국가적 과제를 내세운 매우 중대한 시도지만, 실제 작동 방식 속에는 공직사회를 재편하고 권력구조를 재정렬하려는 정치적 기류도 함께 감지된다. 그 영향은 향후 공무원사회 조직문화 전반에까지 미칠 수밖에 없다.
헌법을 지키겠다는 정부의 대의는 숭고하지만, 그 대의가 어떤 방식으로 구현되느냐에 따라 그것은 국가적 원칙이 될 수도 있고, 정권적 도구로 변질될 수도 있다.
헌법수호 취지는 정당하나 절차가 관건
정부가 TF를 추진한 직접적인 이유는 12·3 비상계엄 사태가 남긴 의혹 때문이다. 당시 일부 공직자들이 계엄 추진 과정에 사전 모의, 정보 제공, 실행 지원, 사후 정당화 등에 관여했을 가능성이 제기됐고, 이는 단순한 의혹으로 넘길 수 없는 사안이다.
공직자는 헌법과 법률에 따라 직무를 수행해야 하므로 그 질서를 해쳤거나 흔들었을 가능성이 있다면 반드시 규명해야 한다. 특히 헌정 질서 위협은 국가를 구성하는 기본 시스템 전체를 흔드는 사안인 만큼 정부가 신속하게 진상규명에 나서는 것은 정책적 관점에서 볼 때 타당한 판단이다.
정부가 형사 처벌보다 행정 책임 규명을 강조한 이유도, 수사와 재판은 오래 걸리고 절차가 복잡해 금방 결론을 내릴 수 없기 때문이다. 조직을 빠르게 정비하려면 행정적 조치가 더 실용적이라는 판단이다. 따라서 TF의 대의적 목적은 분명 정당하며, 필요성도 충분하다는 점에서 출발 자체는 문제라고 보기 어렵다.
49개 기관 TF, 행정권력 확장 시도?
그러나 문제는 TF의 목적이 아닌 작동 방식에 있다. 정부는 중앙행정기관 49곳 모두에 TF 설치를 지시했고, 각 기관은 최소 10명 이상의 인력을 TF에 투입해야 한다. 총리실은 외부 전문가까지 포함한 총괄 TF를 구성해 전 부처를 수직적으로 조정한다.
이는 단순한 조사 조직이 아니라 정부 전체에 행정적 중층 권력구조를 새롭게 구축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조사 방식 또한 인터뷰, 서면조사, 내부 제보, 언론 보도, 국정감사 기록, 디지털 포렌식까지 동원하는 매우 포괄적이며 사실상 수사처럼 깊고 넓게 들여다보는 수준이다.
공직사회는 이 같은 조사 TF를 ‘중립적 사후 점검’이 아니라, ‘권력의 전면 개입’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행정조사와 인사평가가 결합된 구조는 결국 TF 자체를 조직 재정렬의 중심기구로 만든다. 이로써 TF는 단순한 목적 수행을 넘어 공직 지형을 바꾸는 보이지 않는 작동 장치가 될 가능성이 크다.
국방부 TF 50명, 군 사기 저하와 정치화 우려
정부 부처 중 가장 관심 받는 곳이 국방부 TF다. 국방부가 50명 규모의 ‘헌법존중 정부혁신 TF’를 가동한 것은 12·3 비상계엄 사태 관련 의혹을 정밀 조사하겠다는 강한 의지의 표현이다. 합참과 각 군 감찰 기능을 통합한 구성은 조사 체계를 일원화해 책임 규명을 명확히 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최근 합참의장 교체와 주요 지휘부 전원 교체가 이어지며 군 내부에서는 사기 저하와 정치 개입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특히 조사 범위가 방대하고, 판단 과정에서 정치적 해석이 덧씌워질 위험도 적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럼에도 국방부는 8월부터 진행한 자체 조사 결과를 곧 공개하겠다고 밝히며 사안의 엄중함을 강조하고 있다. TF가 군의 책임 구조를 바로잡고 제도적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계기가 되려면, 조사 과정에서의 절차적 투명성 확보와 군 조직의 불안정성을 최소화하는 관리가 병행돼야 한다.
제보센터, 내부정의인가 새로운 감시체제인가
이번 TF에서 가장 큰 논란이 되는 제보센터 운영은 TF가 가진 양면성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정부는 제보자의 익명성을 보장하며 무분별한 투서를 차단하고 공정성을 확보하겠다고 했지만, 공직사회 내부에서는 ‘상호 감시체계’가 도입된 것 아니냐는 우려가 빠르게 퍼지고 있다.
제보센터가 설치되면 구성원은 자신이 제보할 권리를 갖게 되는 동시에 제보당할 가능성을 동시에 경험한다. 특히 비상 상황 이후 정권교체기의 민감한 분위기 속에서 이런 제보 구조는 조직적 신뢰를 약화시키고 자기검열을 강화한다.
행정조직처럼 상명하복 문화가 강한 곳에서는 제보의 진위보다 제보가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침묵과 조심성이 조직 전반을 지배하게 된다. 이로 인해 제보센터는 ‘헌법 수호’라는 이름 아래 운영되지만, 실제로는 구성원 간 긴장과 경쟁을 심화시키는 정치적 압박 장치가 될 수 있다.
공정성 논란이 만든 구조적 불신
총리실은 TF의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외부 전문가들로 자문단을 구성했다고 설명하지만, 문제는 이 구성원의 면면이다. 임태훈 소장, 김정민 변호사, 윤태범 교수, 최종문 전 경찰청장 등은 각각 전문성은 인정받지만, 현 정부와 정책 방향 또는 이념적으로 비교적 가까운 성향으로 평가받는 인물들이다.
공정성이란 실제 공정한지보다 ‘공정해 보이느냐’가 더 중요한 정치적 개념임을 고려하면, 현재 자문단은 균형감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TF는 헌법과 관련된 민감한 사안을 다루고 있는 만큼 자문단 구성은 정치적 스펙트럼 전체에서 폭넓은 신뢰를 확보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못하면 TF가 아무리 객관적으로 운영된다고 하더라도 그 결과를 둘러싼 정치적 논란과 불신을 해소하기 어렵다. 자문단의 판단과 조언이 아무리 전문적 근거에 기초하더라도, 그 결론이 특정 진영의 이해와 맞닿아 있다는 인식이 형성되는 순간 그 권위는 급격히 흔들린다.
특검보다 앞선 TF결정, 사법질서와 충돌
정부는 TF가 행정조사이고 특검은 형사조사라고 선을 긋는다. 그러나 실제 조사 범위를 보면 TF가 담당하는 영역과 특검이 다루는 범위는 상당히 중첩된다.
더 중요한 것은 시간 구조다. TF는 내년 1월31일 조사 완료 후 2월13일까지 인사 조치를 마무리하도록 설계돼있는 반면, 특검은 여러 절차를 감안하면 훨씬 더 시간이 걸린다. 이는 사실상 TF가 특검보다 먼저 공직자의 정치적·행정적 운명을 결정하는 구조라는 의미다.
TF의 판단이 먼저 내려진 후 특검의 결론이 뒤늦게 나오는 구조에서는 특검의 판단은 행정적 판단을 바꾸지 못한다. 즉, 정부는 ‘행정조사’를 명분으로 특검보다 앞서 공직사회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되는 셈이다. 이런 구조는 TF가 헌법을 위한 조직인지, 정권을 위한 조직인지 의문을 갖게 된다.
TF가 만드는 공직사회 재편과 줄 세우기 구조
TF는 그 목적이 무엇이든 그 결과 공직사회에 특정한 정치적 효과를 낳는다. 공직자들은 자신도 TF의 조사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느끼며, 이는 자연스럽게 조직 내부의 줄 세우기와 충성도 경쟁을 강화한다. 이런 분위기는 개인의 행위뿐 아니라, 조직 전체의 의사결정 방향까지 미묘하게 바꿔 놓는다.
특정 정권에 비판적이었던 인사들은 스스로 위험하다고 느낄 수밖에 없고, 정권과 가까운 인사들은 상대적으로 안전하다고 인식한다. 이 과정에서 TF는 공직사회 내부의 새로운 권력 지형을 형성하는 ‘정치적 필터링 장치’가 된다. 이는 단순한 분위기 변화가 아니라, 공직사회의 구조적 압박으로 이어진다.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TF는 공직사회를 재구성하는 기능을 수행하며, 이는 행정적 개혁의 이름을 빌린 정치적 재편 프로젝트로 변질될 가능성이 높다. 결국 TF 자체가 공직사회의 행동을 ‘좌우하는 장치처럼’ 작동되고, 그 결과 정부 취지와 무관하게 정치적 효과를 내는 경로로 흘러갈 수 있다.
헌법존중 명분과 절차의 괴리 심화
헌법은 단지 문서의 규범이 아니라 절차적 정의와 공정성, 중립성의 원칙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이번 TF는 빠른 속도, 과도한 범위, 상호 감시 구조, 편향 논란의 자문단 구성, 특검보다 앞선 인사 조치 등 헌법적 가치와 충돌하는 요소들이 다수 존재한다.
헌법을 지키는 조직이라면 무엇보다 절차적 정당성을 최우선해야 하는데, 지금 TF는 그 절차보다 효과와 속도가 앞서 있는 구조다. 명분은 분명 ‘헌법 수호’일지라도 그 방식이 헌법의 절차를 훼손할 수 있다면, TF는 오히려 헌정 질서의 안정보다 불안과 갈등을 키울 위험이 있다.
헌법이 단순 텍스트가 아니라, 절차 속에서 살아 있는 가치라는 원칙을 고려하면 TF의 구조적 설계는 신중함이 부족했던 측면이 크다. 그만큼 초기 설계 단계에서 더 폭넓은 논의와 견제가 필요했다는 의미다.
헌법은 절차로 지켜지고 권력보다 앞서야
이번 TF가 헌법을 수호하겠다는 명분은 정당해도 그 명분을 실현하는 방식이 헌법과 충돌할 때, 권력의 도구로 변질될 가능성이 높다. 헌법은 국가의 규범이 아니라, 권력이 행사되는 방식을 제한하는 ‘절차의 철학’이다. 절차는 느리고 불편하며 때로는 비효율적이지만, 그 비효율성이 권력의 폭주를 막아주는 안전장치다.
그러나 이번 TF의 구조는 속도와 범위 면에서 지나치게 크고 빠르며, 공정성보다 선제적 통제를 우선시하는 방식으로 설계돼있다. 제보센터는 상호 감시의 문화를 만들고, 외부 자문단은 중립성 논란을 스스로 키우며, 특검보다 먼저 인사 조치를 단행하겠다는 일정은 사법적 판단 위에 행정적 해석을 덧씌우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정부가 헌법을 지키고자 한다면, 헌법적 가치인 절차·중립·절제를 먼저 지켜야 한다. 그 원칙이 무너지는 순간 TF는 헌법을 위한 조직이 아니라, 정권을 위한 구조로 변질될 위험에서 벗어날 수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