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촉법소년 연령 제한’ 더 늦춰선 안 된다

2025.09.16 16:06:56 호수 0호

우리 사회는 청소년 범죄에 ‘촉법소년 제도’라는 오래된 법적 장치를 두고 있다. 덕분(?)에 현행법상 만 10세 이상 14세 미만의 청소년은 죄를 짓고도 형사처벌 대신 보호 처분만 받는다. 이들이 아직 충분한 분별력과 책임 능력을 갖추지 못했다고 전제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허위 폭파 신고 등 끊이지 않는 청소년들의 강력 범죄와 그 수법의 잔혹성을 고려할 때, 연령 제한은 시대에 뒤떨어진 제도라는 비판이 거세다. 

과거에 촉법소년 연령이 정해졌던 시기와 작금의 사회적 환경은 크게 달라졌다. 디지털 매체와 정보 접근이 일상화된 시대의 아이들은 과거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세상 이치를 배우고, 범죄 수법조차 쉽게 습득한다. 초등학생도 스마트폰을 통해 사회 구조를 이해하며, 인터넷 영상으로 성인 범죄 사례까지 접할 수 있다.

그만큼 범행을 계획하고 실행하는 데 있어 단순한 ‘어린아이’로만 볼 수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14세 미만은 형사 책임 능력이 없다”는 법적 기준만큼은 그대로다. 이는 현실을 외면한 채 1950~60년대 기준에 머물러 있는 법제도라고 할 수 있다.

촉법소년 연령 제한은 본래 미성숙한 아동을 과도한 처벌로부터 보호하려는 취지였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 제도는 오늘날 일부 청소년들에게 ‘법적 면죄부’로 작용한다. 실제로 범행을 저지르기 전 또래 집단에서 “나는 촉법소년이라 괜찮다”는 식의 대화가 오간다는 사례가 언론 보도를 통해 드러나고 있다.

법적 보호가 오히려 범죄 유인을 강화하는 기제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또 피해자 입장에서 볼 때, 가해자가 촉법소년이라는 이유로 형사처벌조차 받지 않는 현실은 심각한 불공정으로 다가온다. 피해자의 고통은 성인 범죄와 다르지 않은데, 가해자만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면책되는 것은 정의의 기본 원칙을 위반하기도 한다.

세계 각국과 비교해봐도 한국의 촉법소년 연령 기준은 지나치게 높다는 지적이 많다. 실제로 일본은 만 13세 미만, 독일은 만 14세 미만, 영국은 만 10세 미만을 형사 미성년자로 규정한다. 특히 영국의 경우 10세 이상이면 살인이나 성폭력 같은 강력 범죄에 대해 엄격히 형사 책임을 묻는다.

우리 사회 역시 이미 아동의 발달 속도가 빠르고, 범죄의 수법이 성인 못지않음을 감안하면 최소한 일본·독일 수준으로 기준을 낮출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한국은 여전히 만 14세 미만을 일괄적으로 촉법소년으로 묶어두고 있는데, 이는 국제적 흐름과 동떨어진 처사다.

촉법소년으로 분류된 청소년들은 대부분 소년원 송치나 보호관찰 처분을 받는다. 하지만 이 같은 조치는 재범을 효과적으로 막지 못한다. 소년원 내 교육은 인력과 예산 부족으로 교화에 한계가 크며, 사회로 복귀한 이들이 다시 범죄의 길로 빠지는 사례가 많다. 실제로 재범률이 30% 이상이라는 연구 결과도 보고되고 있다.

촉법소년 제도는 가해자의 교화·재활이라는 본래 취지를 달성하지 못한 채 범죄 악순환의 고리를 만들어내고 있다. 결국 피해자는 늘어나고 사회 불안은 가중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과연 촉법소년 연령을 일괄적으로 낮추는 것만이 정답일까? 혹자들은 “너무 어린 아동까지 형사처벌하는 것은 인권침해”라고 반론한다. 그러나 이는 극단적 해석이다. 실제로 개정 논의는 ‘일괄 하향’이 아니라 ‘탄력적 적용’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예컨대 만 12세 이상이라 하더라도 충분히 범행의 결과를 인지하고 계획했다면 형사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예외 조항을 두는 방식이다. 이는 단순히 연령만으로 선을 긋지 않고, 개별 사건의 성격과 아동의 발달 정도를 반영하는 합리적 접근이라 할 수 있겠다.

법은 피해자와 사회를 보호하는 장치이기도 하지만, 현행 촉법소년 제도는 가해자 보호에 지나치게 기울어져 있다. 범죄의 심각성이 갈수록 커지는 상황에서 피해자의 권리와 안전을 보장하지 못하는 법은 그 정당성을 잃는다.

따라서 앞으로의 개정 논의는 피해자 중심으로 전환돼야 하며, 이들의 회복과 안전이 우선시될 때 사회 전체의 법 감정도 안정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법 개정만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청소년 범죄는 가정 환경, 교육 실패, 사회 구조적 문제 등과 깊이 얽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연령 기준을 낮추는 것과 동시에, 학교와 지역사회에서 아이들이 건전하게 성장할 수 있는 지원 체계도 함께 뒷받침돼야 한다.


즉, 단순히 처벌을 강화하는 것이 아닌, 처벌과 교육의 균형을 잡는 종합적 접근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현행 연령 제한은 범죄 억제 효과는커녕, 도리어 부정적 인식을 강화하고 있기에 우선 관련 법 개정이 시급하다.

촉법소년 연령 제한은 시대적 환경과 사회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낡은 제도다. 빠르게 성숙하는 아이들, 잔혹해지는 범죄 양상, 피해자의 권리 보장이라는 시대적 요구에 비춰볼 때, 현행 만 14세 미만이라는 기준은 더 이상 설득력을 가지지 못한다.

우리는 청소년의 인권을 존중하면서도, 피해자와 사회를 보호하는 정의로운 법 질서를 확립해야 한다. 촉법소년 연령 기준의 조정은 단순한 법 개정이 아니라, 미래 세대를 위한 사회적 안전망을 새롭게 짜는 출발점이다. 이제는 더 이상 ‘어리다’는 이유로 면죄부를 주는 법적 허점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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