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기의 시사펀치> 양곡법·한우법, 한·미 관세협상에 힘 실어주나

2025.07.26 12:56:00 호수 1543호

한·미 관세 협상을 통한 농축산물 시장 개방 우려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국회는 남는 쌀을 국가가 의무적으로 매입하는 내용의 양곡법 개정안을 24일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법안소위에서 통과시켰다.



미국과 관세 협상 과정에서 농축산물 시장 개방이 핵심 의제로 떠오르며 농업계 반발이 커지자, 더불어민주당이 법안 처리에 속도를 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한우 농가 자금 지원 등을 담은 ‘한우법’(탄소중립에 따른 한우산업 전환 및 지원에 관한 법률)도 22일 서둘러 공포됐다. 양곡법 개정안은 내달 4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할 것으로 보인다.

앞서 지난 22일, 정부는 서울청사에서 열린 대외경제장관회의서 25일 워싱턴DC서 예정됐던 ‘2+2 통상협의’ 때 쌀과 소고기 시장 개방을 협상 카드로 제시하지 않기로 정했다.

22일까진 농축산물 분야서 미국산 쌀 수입 확대와 30개월령 이상 미국산 소고기 수입 허용이 미국과 관세 협상의 쟁점으로 거론됐으나, 우리 정부가 농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과 민감도를 고려해 22일 두 품목을 '레드 라인'으로 정한 것이다.

이미 상호관세를 낮춰 협상을 마친 인도네시아(32%→19%)와 일본(25%→15%)은 농산물 시장 확대 카드를 썼지만, 우리 정부는 한미 통상협의를 3일 남겨놓고 단호하게 쌀과 소고기 시장 개방 카드를 접은 셈이다.


그런데 24일 미국이 돌연 스콧 베센트 재무 장관의 긴급 일정을 이유로 ‘2+2 통상협의’ 일정을 취소하자, 대통령실은 25일 미국에서 돌아온 위성락 국가안보실장 보고를 받고 "협상 품목 안에 농축산물도 포함돼있다"며 대미 투자 규모 등과 함께 농축산물이 협상 카드로 진행 중임을 시사했다.

같은 날 25일 트럼프 대통령은 트루스소셜에서 “호주가 이제 미국산 소고기 수입을 허용했다“며, "이것은 우리의 훌륭한 소고기를 거부하는 다른 나라들에도 예고된 것"이라고 했다.

미국산 소고기 수입을 제한하는 나라들에 통상 압력을 가하겠다는 의미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이 미국과 관세 협상에서 좋은 결과를 얻으려면 일본처럼 대미 투자도 과감히 하고 소고기 수입도 개방하라는 일종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이다.

우리나라는 2003년 미국 내 광우병 발생 직후 즉각 미국산 소고기 수입을 전면 중단했고, 이후 2008년 '30개월령 미만' 소고기에 한해 제한적으로 수입을 재개했다.

최근 3일 만에 농축산물 관련 레드 라인을 포기한 정부를 보면서 관세 협상 시한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서 이해는 되지만, 미국의 강경 모드에 밀리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25% 관세 폭탄을 막기 위해선 미국이 강하게 요구하는 쌀, 소고기 등에 대한 수입 규제를 완화하는 게 합리적일 수 있다. 그러나 해당 품목과 연관된 농민들의 저항이 막 출범한 이재명정부에 엄청난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특히 소고기는 ‘광우병 파동’ 전례로 전 국민의 좋지 않은 정서까지 있어 큰 걸림돌이 아닐 수 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트루스소셜을 통해 “일본은 대량의 쌀 부족을 겪고 있는데도 우리의 쌀을 수입하지 않으려고 한다”며 일본을 공개 압박했다. 결국 일본은 이에 굴복하고 쌀 시장 개방을 관세 협상카드로 사용했다.

실제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 미국과의 관세 협상을 조기에 마친 국가는 모두 농산물 시장을 개방했다. 이 여세를 몰아 트럼프가 우리나라에도 쌀 시장 개방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수입쌀에 대해 513%의 고율 관세를 부과하되 연간 약 41만톤의 수입쌀에 한해선 5%의 관세율을 적용하고 있다. 미국은 전체의 3분의 1 수준인 13만 2000t에 이르는 물량에 저율 관세를 적용받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24일 국회가 양곡법 개정안을 소위서 통과시켰고, 한우법이 22일 공포됐다는 건 정부와 여당이 미국과의 관세 협상에 농축산물 시장 개방 카드를 사용하겠다는 사인을 보인 것이라 할 수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양곡법 개정안은 국내 수요 초과 생산분을 정부가 의무적으로 사들이는 게 골자다. 기존 양곡법은 의무적이지 않았다.

필자는 이번 양곡법 개정안 통과와 한우법 공포가 미국과 관세 협상 막바지에 몰린 정부에 힘을 실어줬다고 생각한다. 만약 쌀 추가 개방으로 정부가 농가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힐 때, 개정된 양곡법이 농가의 생산성과 경제성을 보장하는 카드가 돼 농가를 이해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구기보 숭실대 글로벌통상학과 교수도 “양곡법 개정안 본회의 통과가 전제된다면 쌀 수입 쿼터 물량 확대에 대한 국내 저항은 줄이고 대외 신뢰도는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양곡법 개정안이 정부의 쌀 수입 규제 완화 검토의 명분이 된다는 의미다.

그렇다고 정부가 미국과 관세 협상서 소고기와 쌀 개방을 쉽게 처리해선 안 된다. 식량안보라 할 수 있는 농축산물과 관련해선 정부가 고도의 전략적 판단을 해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25일 스코틀랜드 방문에 앞서 무역상대국과의 관세 협상과 관련해 "8월 1일에는 거의 모든 거래가, 아니면 전부가 마무리될 것"이라며 합의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내달 1일부터 고율의 상호관세를 물리겠다고 공언했다. 현재 미국과 합의된 나라는 영국, 인도네시아, 베트남, 필리핀, 일본 등 5개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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