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의료계와 정부 간 갈등이 1년 넘게 계속되고 있다. 초창기와 비교해 주목도는 낮아졌지만 일선 의료 현장은 여전히 급박하게 돌아가는 중이다. 의료 붕괴 시점도 점차 가까워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재명정부 초대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명됐다. 의료계는 일단 환영의 뜻을 보였다.

코로나19의 공포가 전국을 덮쳤을 때 온 국민은 한 사람의 입만 바라봤다. 하얗게 센 짧은 머리카락, 노란 재킷을 입은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의 말에 사회가 들썩였다. 질병관리본부장을 거쳐 초대 질병관리청장을 역임한 정 후보자가 보건복지부 수장으로 지명됐다.
방역 최전선
코로나19 당시 정 후보자는 관련 상황을 전달하는 브리핑을 매일 진행하며 국민의 눈에 익숙해졌다. 그의 침착한 태도는 국민의 지지와 신뢰로 이어졌다. 2020년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은 정 후보자를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 가운데 1명으로 선정했다.
<타임> 기사에는 문재인 전 대통령의 소개글이 함께 실렸다. 문 전 대통령은 “정 청장(당시 질병관리청장)은 개방성, 투명성, 민주성의 원칙을 가지고 방역의 최전방에서 국민과 진솔하게 소통해 K-방역을 성공으로 이끌었다”며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한국의 방역은 세계의 모범이 됐다”고 했다.
또 세계적인 대문호 알베르 카뮈의 소설 <페스트>를 인용하며 “<페스트>에서 의사 리외는 ‘페스트와 싸우는 유일한 방법은 성실성’이라 말했다”면서 정 후보자의 성실성을 높게 평가했다.
코로나19 시기의 활약은 이재명정부 초대 보건복지부 장관 지명으로 이어졌다.
지난달 29일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은 “정 후보자는 코로나19 당시 정책 수행 능력과 소통 능력을 유감없이 보여준 보건 전문가”라며 “의료 대란 등 위기를 회피하지 않고 각계와 소통하며 해법을 제시할 수 있는 역량 있는 인물”이라고 발탁 배경을 설명했다.
정 후보자에게 주어진 과제는 1년 넘게 이어지고 있는 의료계와 정부의 갈등 해소다. 윤석열정부 시기인 지난해 2월 의대 정원을 2000명 늘리겠다는 보건복지부의 발표로 시작된 의정 갈등은 여전히 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집단 사직 형태로 병원을 떠난 전공의의 복귀율은 미미하고 휴학으로 저항했던 의대생 상황도 녹록지 않다.
의료계는 환영의 뜻
“전형적 관료 타입”
윤정부에서 의정 갈등은 평행선을 그렸다. 정부와 의료계는 한 치의 양보도 없이 팽팽하게 맞섰다. 그러다 12·3 비상계엄 사태가 불거지면서 현안에서 크게 밀렸다. 탄핵 정국, 조기 대선 등 대형 이슈가 의정 갈등을 완전히 지워버린 것이다. 갈등을 해결할 주체도, 결정권자도 없는 상황에서 사태는 표류했다.
정 후보자로선 의정 갈등 해소라는 막중한 책임을 짊어지게 된 셈이다. 정 후보자는 지난달 30일 “의정 갈등과 초고령화, 양극화 심화로 어려운 시기에 새 정부의 복지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돼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고 소감을 밝히면서 “의정 갈등의 가장 큰 문제는 불신에서 초래됐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의료계와 신뢰·협력 관계를 복원하는 게 가장 시급하다”고 밝혔다.

정 후보자는 “의료계에 누적된 문제가 많이 있다”며 “제 생각에는 좀 더 포괄적이고 지속 가능한 의료개혁 방안을 종합적으로 만들고 그 안에 의료 인력에 대한 문제를 다뤘으면 좀 더 좋았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윤정부 의료 정책에 대해 평가했다. 그러면서 “국민과 전문가, 그리고 많은 의료인의 현장 의견과 목소리를 담아 체계적인 의료개혁 방안을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의료계는 정 후보자 지명에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이하 의대교수협)는 정 후보자와 더불어 이진숙 교육부 장관 후보자 지명에 긍정적으로 반응했다. 보건복지부와 교육부는 의대 정원 문제를 다루는 주무부처다.
의대교수협은 “이제 곧 새로운 수장을 맞이할 교육부와 보건복지부는 상호 신뢰와 상생의 자세로 의료계와 함께 협의해 주시기를 간곡히 요청드린다”며 “의대교수협은 국민 건강과 의학 교육의 미래를 위해 책임 있는 협력과 진정성 있는 대화에 끝까지 함께하겠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도 “의료 위기 극복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정 후보자 지명에 환영의 뜻을 밝혔다. 의협은 “정 후보자는 지명 소감에서 진정성 있는 소통과 협력으로 의정 갈등을 해결하겠다고 밝혔다”면서 “이 같은 의지에 깊이 공감하며 국민의 건강을 최우선에 두고 정부와의 신뢰 회복과 협력 관계 형성을 위해 적극 나설 것”이라고 전했다.
코로나19 때 손소독제 업체를?
배우자 주식 청문회 주요 쟁점
대한간호협회 역시 “국민 중심 보건복지 정책을 이끌 적임자”라고 정 후보자를 평가했다. 이들은 “정 후보자의 합리적이고 소통 중심인 리더십이 보건의료계 내부의 신뢰 회복과 협업 기반 강화에 큰 역할을 할 것”이라며 “직역 간 조화로운 협력을 위한 정 후보자의 노력에 적극 동참할 것이고 국민 건강을 위한 보건의료 정책 실현에 함께할 준비가 돼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인사청문회다. 정 후보자의 인사청문회에서는 배우자가 보유하고 있던 주식이 쟁점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정 후보자가 방역 최전선에서 코로나19에 대응하던 사이 그의 배우자는 손소독제 등을 제조·유통하는 업체 주식을 매입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코로나19 당시 개인위생의 중요성이 대두되고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행되면서 손소독제 수요가 크게 늘었고, 관련 주가가 반짝 오르기도 했다. 공직자 이해충돌 논란이 나올 수 있는 대목이다. 앞서 한편에서는 배우자의 주식 문제로 정 후보자가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에서 배제됐다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야당 간사인 국민의힘 김미애 의원은 “국민 모두가 방역에 협조해 고통을 감내하던 시기 한편에선 사익을 취한 전형적인 이해충돌 행위였고 일부 주식은 재산 신고조차 누락한 정황까지 드러났다”고 주장했다.
정 후보자는 관련 논란에 대해 “잘못된 내용이 많다. 청문회를 통해 사실관계를 기반으로 국민께 충실히 설명드리겠다”고 말했다. 정면돌파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청문회 넘을까
일각에서는 정 후보자가 의정 갈등을 해결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회의론도 존재한다.
의료계 사정에 밝은 한 의대 교수는 “정 후보자는 전형적인 관료 스타일이다. 문제 해결을 위해 자기 생각을 관철하는 타입이 아니다. 위에서 지시하는 내용을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게 따를 인물”이라며 “수십년 동안 쌓인 의료계의 모순을 해결할 가능성은 적다고 본다”고 말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