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박근태 한국영화배우조합 위원장은 <일요시사>에 “작품 제작이 없어 삶의 희망도 없어진다”는 배우들의 최근 호소를 전했다. 이어 영화업계 인력을 쓰고 버리는 글로벌 OTT의 현황을 언급하면서 새 정부에 “새 인력 양성을 위한 콘텐츠 제작에 관심을 가져달라”고 요청했다.

박근태 한국영화배우조합 위원장은 “영화업계엔 코로나19 사태의 여파가 지난해부터 미치기 시작했다”고 우려했다. 박 위원장은 “배우는 단기간에 성과를 낼 수 있는 직업이 아니다”라며 “배우들이 꿈을 포기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박 위원장과의 일문일답.
-조합을 설립한 이유는?
▲오래전엔 대형 기획사서 연습생 관리 등 가수 관련 업무를 맡았다. 당시엔 오디션 프로그램이 유행했고, 케이팝의 신인 개발 시스템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저도 오디션 시스템이 선진적이라고 생각했는데 경쟁 위주로 흘러 안타까웠다.
이후 영화 배급사로 이직했는데, 배우는 매니지먼트 시장서 가수보다 훨씬 열악했다. 가수와 달리, 배우 소속사는 직접 콘텐츠를 제작하지 않으며, 제작사의 선택을 받아야 한다. 그래서 배우들에게 다양한 선택의 기회를 주고, 열악한 사정을 조금이나마 해소할 수 있는 방향을 찾다가 미국 영화배우조합을 일부 참고해서 만들었다.
-배우는 개인사업자인데, 어떻게 노조를 설립할 수 있었나?
▲처음엔 막무가내로 노조 설립 신고를 하러 갔다. 노동청에선 “어떻게 노조를 만들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그래서 한국방송연기자노조 사례를 언급했고, 다른 영화단체들로부터 연대 서명을 받았다. 이어 조합원들의 경력을 증명하고, 출연 계약서 복사본을 제출했다. 설립되기까지 8개월이 걸렸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한국 영화 흥행·제작이 부진하다. 배우들의 삶은 어떻게 달라졌나?
▲과거엔 드라마 촬영 일정과 방영 일정이 거의 비슷하게 잡혔다. 그래서 출연료는 월 단위로 지급했다. 반대로 영화는 약 1~3년 정도 기간을 잡고 제작된다. 그런데 OTT가 등장한 이후엔 영화 제작 일정이 대부분 3년으로 고정됐다. 코로나19 사태 당시엔 사전 제작된 작품이 많아서 어렵단 느낌이 없었다.
지난해부터 영화계의 매출과 제작 편수가 감소했다. 내년엔 개봉할 한국 영화가 거의 없는 걸로 알고 있다. 미국도 비슷한 상황이라고 알고 있다.
“코로나 여파 이후
개봉작 거의 없어”
-배우들의 최근 경제적 상황은?
▲배우들은 출연 계약을 스스로 하지 않고, 소속사가 대행한다. 출연료 지급 방식도 제각각이다. 영화는 출연료 지급 기준이 있고, 촬영 전에 출연료가 지급된다. 하지만 드라마는 쪽대본이 완성될 때마다 촬영하니, 방송 약 한 달 후 출연료가 지급된다. 방송계의 옛 표준 계약서에도 방영 이후 1개월이 지나 지급된다고 명시돼있다.
그런데 방영되지 않거나 편집돼 출연 분량이 사라지면 출연료를 지급하지 않는다. 정부의 콘텐츠 제작 지원 예산에도 물가 상승 등이 반영되지 않는다. 10년 넘게 반영되지 않았다. 그래서 제작 과정서 절감할 수 있는 건 인건비밖에 없다.
-배우들이 조합에 주로 원하는 것은?
▲제게 상담하러 오는 배우들은 경제적인 것보다 “연기를 하고 싶은데, 못하고 있다”는 얘기를 주로 한다. “경제적인 어려움은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버틸 수 있지만, 작품 제작이 없어 삶의 희망도 없어진다”고 말한다. 그래서 저도 정책 토론회서 “배우에 대한 금전적 지원보다 기회 제공을 더 많이 해 주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말한다.

배우는 단기간에 성과를 낼 수 있는 직업이 아니다. 오랫동안 꿈을 포기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 고 이선균 배우가 세상을 떠났을 때, 업계서 제일 안타까워 했던 것은 “이런 배우가 등장하기까진 최소 10년이 걸린다”는 것이었다.
-배우들에 대한 인격적 처우 등은 과거와 달라진 게 있나?
▲배우들은 유명 배우·단역배우·보조출연자로 구분된다. 이를 구분하는 기준은 “엔딩 크레디트에 이름이 올라가느냐”는 것이다. 그리고 제작사와 직접 계약한 것인지, 보조출연자 관리 업체를 통한 것인지로 구분한다. 보조출연자는 과거와 달라진 게 하나도 없다.
지난 2004년 보조출연자 자매를 성폭행했던 가해자들은 아직도 업계서 근무하고 있다. 이미 카르텔이 형성돼있기 때문이다. 조합이 다른 단체들과 연대해 요구하는 것 중 하나는 단역과 보조출연자의 경계를 없애자는 것이었다. 어차피 촬영장서 똑같이 고생하고 있고, 비중도 큰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끼리끼리 업계 카르텔 형성”
“OTT 폐해에 관심 가져주길”
예전엔 보조출연자로 시작해 인기 배우가 된 사례들이 있었다. 기업형 매니지먼트가 안착한 이후엔 올라갈 수 있는 사다리가 치워졌다.
-조합이 가장 중점을 두는 제도가 있다면?
▲배우 매니지먼트 시장이 급격히 무너지고 있다. 유명 배우들은 9:1로 계약해서, 소속사가 1을 가지고 간다. 이래선 소속사 운영이 안 된다. OTT가 도입된 이후 콘텐츠 시장이 너무 좋아져서, 유명 배우를 데리고 콘텐츠 제작을 해서 수익을 내는 구조로 갔다. 그래서 배우에게 너무 많은 양보를 했다.
그런데 시장이 죽으면서 어려워졌다. 작품 수가 줄어들었지만, 배우에게 투입되는 비용은 그대로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재계약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졌다. 계약이 풀린 많은 배우들이 새 회사를 찾지 못했다. 그들은 매니저 없이 일하기 어려워 “우리도 공제조합이 필요하지 않겠느냐”는 얘기가 나온다.

아울러 소속사가 없는 배우들을 관리할 수 있는 에이전시가 필요하고, 전자계약 시스템으로 바꿔야 한다. 촬영장서 계약서를 쓰거나, 출연료를 안 주는 경우도 허다하다. 배우의 출연료 체계를 회차당 지급서 시간당 지급으로 바꿔서 일정을 관리할 수 있으면 좋겠다.
-새 정부에 바라는 게 있다면?
▲글로벌 OTT는 영화업계가 지금까지 키워온 인력을 데려가서 써먹고 버리는 구조를 취한다. 그들은 유명 감독·배우와 작업하지만, 신인 감독·배우는 발굴하지 않는다. 이용만 당한 채 다음 세대가 사라진다. 약 10~20년 후 업계를 이끌 감독과 배우들이 등장하려면, 연극·뮤지컬·독립영화 등 제작이 활성화돼야 한다. 이에 관한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다.
아울러 정당한 노동의 권리에 관심 가져줬으면 좋겠다. K-POP 산업이 발전한 결정적 계기는 정당한 보상이었다. 음악은 가수·작사가·작곡가·연주가들이 모두 실연권·저작권을 인정받아 분배받는다. 하지만 영화계에선 보상 체계가 적절하지 못해 동기 부여가 어렵다. 큰 금액이 아니더라도, 출연한 영화·드라마가 재방송되면 보상을 해야 한다. 활동에 대한 금전적 지원보다 정당한 보상이 더 중요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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