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나라가 짧은 기간에 대선 정국으로 들어섰는데도 이에 대한 국민적 관심도는 그리 높지 않다. 탄핵 정국 때 찬반 세력으로 나뉘어 모든 힘을 소진해서다. 대선이 코앞이지만 탄핵 반대 세력은 지쳐 있고, 찬성 세력은 조심하는 분위기다. 우리 사회 전체도 탄핵의 강을 건너면서 지쳐 있긴 마찬가지다.
탄핵소추는 국회 재적 의원 1/3 이상의 발의와 재적 의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가결된다. 다만,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는 재적 의원 과반수의 발의와 재적 의원 2/3 이상의 찬성으로 가결된다. 탄핵소추안이 가결되면 직무가 정지되고 180일 안에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받아야 한다.
윤석열정부 들어 더불어민주당 주도의 탄핵소추는 13명이나 가결됐다. 이는 야당인 민주당이 169석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 헌재는 이 중 윤 전 대통령만 인용했고, 10건의 탄핵 심판은 기각했다. 조지호 경찰청장과 손준성 검사는 아직 선고 전이다.
탄핵은 일반적인 사법 절차나 징계 절차에 따라 소추하거나 징계하기 곤란한 고위공무원의 비위를 헌재로부터 정확하게 판단받을 수 있는 행위다. 그런데 헌재 선고 전까지 최장 180일 동안 행정 공백이 생겨 국가적으로 피해가 크다는 게 문제다.
특히 대통령의 탄핵은 정치적 블랙홀이 돼 국민이 반으로 갈라져 나라가 쑥대밭이 된다.
행정 공백이라는 국가적 문제 외에도 피청구인 고위공직자 개인에게도 불합리적인 문제점을 안고 있다. 탄핵소추가 의결되면 탄핵을 방어하기 위해 개인 비용으로 탄핵 재판을 준비해야 한다. 그런데 탄핵소추가 잘못돼 기각돼도 업무 복귀 외엔 어떤 보상도 받을 수 없다. 명예회복은 아예 생각도 못한다.
지난 2월15일 민주당 조인철 의원은 탄핵소추 의결로 직무 정지 후에도 급여가 전액 지급되고 있는 현행법을 문제 삼아 탄핵소추 의결로 직무가 정지된 공무원의 급여를 대폭 삭감하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했다.
필자는 당시 조 의원이 ‘탄핵소추 의결 후 헌재서 기각 선고 결정을 받으면 보상받을 수 있는 법안도 발의했으면 좋았을 텐데’라는 생각을 했다.
현행법으론 탄핵 피청구인은 기각돼도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한다. 명예훼손 회복은 고사하고 당장 수천만원의 막대한 변호사비가 문제다. 지난 1월23일 탄핵소추안이 기각돼 6개월 만에 복귀한 이진숙 방통위원장은 변호사 비용 수천만원을 자기 돈으로 냈다고 했다.
최근 여당의 한 중진 의원은 "탄핵이 기각되면 소추한 의원들이 비용을 책임지도록 하는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며, ”그래야 이런 무분별한 줄탄핵이 견제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민주당과 합의 없인 요원한 주장에 불과하다.
윤 전 대통령이야 탄핵이 인용됐으니 막대한 변호사 비용을 개인이 낸다 해도, 기각된 다른 피청구인은 변호사 비용과 정신적 피해까지도 보상받아야 한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이번 기회에 보험회사가 고위공직자를 상대로 ‘탄핵 보험’ 상품을 출시하면 어떨까? 국가가 피해자에게 보상해주지 못한다면 개인이 보험을 들어서라도 보상받아야 마땅하다.
최근 tvN이 새 월화드라마 <이혼보험>을 방영하고 있다. 이 시대 가장 핫한 재난 이혼(돈 문제로 헤어지는 이혼)에 대처하기 위한 이혼 보험 상품을 선보이며,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재난이혼 이후의 삶을 보장해 주는 이혼 보험을 통해 색다른 공감을 느끼게 하는 드라마다.
필자는 며칠 전 이 드라마를 시청하면서 최근 가장 핫한 ‘탄핵’을 떠올리며 탄핵 보험도 필요한 시대가 됐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탄핵 보험이라는 드라마도 나오고, 실제 탄핵 보험도 출시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울러 탄핵소추 청구인인 국회는 탄핵소추가 기각돼도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고, 기획재정부의 지침에 따른다면서 변호사 비용을 국민 혈세로 내고 있는데, 이 부분도 개선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국회의 줄탄핵으로 지난 2023년부터 지난달 말까지 국회 본회의 가결 탄핵 사건 13건에 들어간 변호사 비용만 4억원이 넘는다고 한다. 국민의 이익만을 생각해야 할 국회가 특정 정당의 목적을 위해 혈세를 낭비해선 안 된다. "탄핵소추 의결을 밀어붙이고 기각 결정이 나와도 어쩔 수 없다"는 식의 무책임한 행동이 용납돼선 안 된다.
탄핵 대상인 고위공직자는 우리나라의 큰 자산이다. 국가를 위해 수십 년간 봉사하고 헌신한 자들이다. 만약 그들이 사리사욕이나 특정 정당의 지시에 의해 국가에 피해를 끼쳤다면 당연히 탄핵돼야 마땅하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상황으로 탄핵소추가 의결된 후 기각됐다면 분명 명예회복과 보상을 받아야 한다.
탄핵으로 인해 본 피해를 국가가 보상해주지 않으니 피청구인 개인이 탄핵 보험을 들어야 한다는 생각 자체가 창피한 우리나라 민낯을 보여주는 것 같다. 그러나 국가를 위해 헌신하다 오해받아 피해 본 고위공직자의 경우엔 탄핵 보험이 그리 나쁘지만은 않다는 생각이다.
우리나라에 아직 이혼 보험과 탄핵 보험 상품은 없다. 그러나 이혼 보험이 드라마로 방영되고, 탄핵 보험이 언급된다는 자체가 2025년도 우리나라의 자화상을 보여주는 것이다.
고위공직자가 탄핵소추 의결 이후 헌재 선고 전까지 직무를 수행하지 않았으니 그 기간의 급여 지급을 중단해야 한다는 주장이 틀렸다는 얘긴 아니다. 다만 그들도 가정이 있고, 가장으로서 생계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변호사 비용 외 피해 보상을 받을 수 있는 탄핵 보험 상품이 필요하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