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독박’ 민주당 딜레마

2025.03.31 10:34:50 호수 1525호

밀어붙일수록 여당만 득?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연금 모수개혁안은 여야 합의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지만, 그 비난은 더불어민주당이 독박을 쓰고 있다. 그간 민주당의 정치적·정책적 강경책은 청년 민심을 분노시켜 그때마다 위기에 빠진 국민의힘을 기사회생시켜 왔다. 분명한 건 이런 식의 적과의 동침은 국민에겐 악영향만 줄 뿐이라는 점이다.



여야는 지난 14일 국민연금 모수개혁안에 합의한 후 지난 20일 본회의서 가결 처리했다. 이번 개혁안의 핵심은 “더 내고 더 받는다”는 것이다. 기존 9%였던 보험료율은 13%로 올라갔고, 오는 2028년 40%로 예정됐던 소득대체율도 43%로 올라간다. 지난 2007년 60%였던 소득대체율은 50%로 일시 인하됐다가 매년 0.5%씩 내려가고 있었다. 이렇게 하면, 국민연금 기금 고갈 예상 시기는 2056년서 2064년으로 8년 미룰 수 있다.

정해진 운명

소득대체율 43%는 국민의힘이 지난 21대 국회 때부터 주장했던 내용이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당시 45%를 주장했다가, 이재명 대표가 “44%를 수용하겠다”고 물러섰던 적이 있다. 이번에도 이 대표가 43% 수용 의사를 밝혀 합의에 이를 수 있었다.

국민연금은 지난 1988년 최초 도입 당시 보험료율 3%에 소득대체율 70%를 보장했다. 원금의 약 23배를 보장하는, 지금으로선 상상하기 힘든 소득대체율을 보장했다. 국민연금 기금은 대부분 주식·채권시장서 운용된다. 전 국민을 강제로 가입시켜 조성되는 기금을 고위험·고수익 상품에 함부로 투자하긴 어렵다.

따라서 높은 수준의 소득대체율을 언제까지나 보장할 순 없다. 보험료율이 올라가고, 소득대체율이 내려가는 것은 정해진 운명에 가깝다.


일각에선 국민연금을 두고 “초기 가입자에겐 고수익을 보장하지만, 가입자가 줄어들면 파산하는 다단계 피라미드”라고 비판한다. 연금개혁청년행동이 지난해 10월18~19일 18세 이상 남녀 1003명을 대상으로 진행했던 대국민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20대의 63.2%와 30대의 59.2%는 “국민연금의 구조는 자녀 세대에 감당하기 어려운 빚을 지우는 다단계 사기 같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국내에선 제1금융기관·제2금융기관만 원금과 수익률을 보장하는 상품을 판매할 수 있다. 그 외의 기관이 원금과 수익률을 보장하는 상품을 판매하면, 유사수신행위법에 따라 2년 이하 징역으로 처벌될 수 있는 유사수신(다단계)이다. 따라서 국민연금에 대해선 “합법적 다단계 아니냐”는 일각의 인식도 있다.

모수개혁안은 여야 합의로 통과됐지만, 청년층의 비난은 민주당에 집중되고 있다. 비난을 듣는 이유는 ▲압도적 원내 1당이란 위치 ▲높아진 소득대체율에 있다. 비난의 핵심은 “현재 대한민국 인구 구성상, 민주당 지지세가 높은 86세대(1960년대 태생·1980년대 학번)에게 유리한 개혁안”이란 것이다.

“86세대에 유리” 평가
청년층 중심 비난 커져

이 때문에 민주당서도 반대·기권표를 던진 의원이 8명이나 나왔다.

이 중 3040 세대인 이소영·전용기·장철민 의원은 적극적으로 반대 의사를 밝혔다. 국민의힘서도 전체 의원 중 60%에 육박하는 59명이 반대·기권표를 던졌다. 이들 중 소장파로 불리는 젊은 피 김재섭 의원은 “정치 기득권을 장악한 기성세대의 협잡이고, 미래세대를 약탈하겠다고 합의한 것”이라고 반발했다. 우재준 의원도 “은퇴가 임박한 86세대들은 끝까지 조금 내고 받을 때만 즉시 더 받는다”고 비판했다.

대선주자급 정치인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한동훈 전 대표는 “정답이 없는 문제인 것은 맞다”면서도 “청년들이 기성세대보다 더 손해를 보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유승민 전 의원도 “청년들의 부담과 불신을 철저히 외면하고 무시한 국민연금법 개정”이라면서 거부권 행사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개혁신당은 소속 의원 3명 모두 반대표를 던졌다. 이준석 의원은 “60대 정치인들은 이 계수조정 방식으로 10년 정도 시간을 벌고, 그사이에 정치 인생을 마무리하면 그만”이라고 비판했다. 천하람 대표 권한대행도 “개혁안은 부모가 자식 저금통 털어 쓰는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기본소득제 시행을 주장하는 기본소득당 용혜인 대표도 반대표를 던졌다. 용 대표는 “이번 합의안은 재정 안정에 완전히 기울었다”며 “공적연금이 해결해야 할 심각한 사회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소관 상임위인 국회 보건복지위원장으로서 합의에 적극적으로 나섰던 인사가 민주당 박주민 의원이란 사실도 청년 민심에 부정적인 영향을 줬다.


논란이 일자 박 의원은 지난 24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2030세대의 부정적 반응에 대해 “연금 문제는 모든 세대가 고민해서 대응할 문제”라며 “세대가 싸울 방식은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이어 “부양은 한 가족의 문제지, 편 가르기나 세대 갈등 등 프레임으로 접근하면 맞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강경책 나올 때마다
국민의힘은 기사회생

박 의원은 지난 2020년 임대차 3법을 발의해 청년층의 비난을 듣는 등 큰 파장을 일으킨 적이 있다. 당시 박 의원이 발의했던 법안의 핵심은 ▲임차인에게 계약갱신청구권 1회를 보장해 임대차 기간을 사실상 2+2년으로 늘리고 ▲임대료 상승 폭을 5%로 제한한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되면 “전·월세 물량이 줄어든다”는 것은 쉽게 예측할 수 있다. 전·월세 임대료는 크게 상승했고, 특히 전세 물량이 줄었다.

지난 2023년 발생했던 대규모 전세 사기의 원인을 임대차 3법의 여파로 보는 일각의 평가도 있었다. 당시 박 의원은 자신이 임대차 3법을 대표발의했음에도 불구하고, 통과 한 달 전 본인 소유의 아파트 임대료를 크게 올려 비난을 들었다.

스스로 국회서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 전 미리 월세를 높이려는 시도가 있을 것이란 지적이 있다”는 발언을 했던 사실까지 발굴돼 비난의 강도는 더욱 커졌다.

또 민주당은 지난해 금융투자소득세(이하 금투세) 시행을 강경하게 추진하면서 청년 민심에 불을 지른 적이 있다. 금투세에 대해선 “개인투자자들에게만 부과되고, 매년 부과하는 특성상 장기투자자에게 불리하다”는 지적이 꾸준히 이어졌다.

하지만 강경파였던 민주당 진성준 정책위의장을 중심으로 시행을 밀어붙이려는 움직임이 계속 이어졌다. 그럴수록 반발은 더욱 커졌기 때문에 이재명 대표는 폐지 의사를 밝힐 수밖에 없었다.

민주당은 그때그때 위기에 빠진 국민의힘에 새 활력을 불어넣는 역설적인 선택으로 물의를 일으키는 경우가 많았다. 이는 큰 틀의 정국 운영에도 영향을 끼쳐,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을 탄핵한 후 지지율이 폭락해 국민의힘에 기사회생의 기회를 줬다.

최근엔 한 권한대행이 복귀했음에도 불구하고, 최상목 경제부총리에 대한 탄핵소추안 추진을 멈추지 않고 있다. 여기에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임명하지 않으면, 파면 사유에 해당한다”면서 한 권한대행에 대한 재탄핵 추진 가능성도 내비치고 있다.


적과의 동침?

민주당의 정책적·정치적 강경책은 ▲박찬대 원내대표 ▲박성준 원내수석부대표 ▲진 의장이 주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의 선택은 국민의힘에 새 활기를 제공하고, 청년 민심이 국민의힘에 힘을 보태는 결과로 이어진다. 국민의힘도 대규모 이탈표가 발생하는 등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과 권성동 원내대표의 당 장악력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밖으로 드러냈지만, 최소한 여론의 비난은 민주당이 대신 받아주고 있다.

정치적·정책적 선택마다 국민의힘을 회생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면, 압도적인 원내 다수당이란 민주당의 특성상 정국엔 더 큰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런 식의 ‘적과의 동침’은 국민에겐 악영향만 줄 뿐이다.

<ctzxp@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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