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작가 임민욱은 첨예한 이데올로기와 정치적 사안을 다루는 작가로 알려져 있다. 그는 미약하고 취약한 대상에 애정을 쏟아 왔다. 우리 기억이나 역사에서 지배적 질서에 의해 억압돼온 것들이다.

일민미술관이 작가 임민욱의 개인전 ‘하이퍼 옐로우’를 준비했다. 이번 전시는 임민욱이 삼성미술관 플라토 이후 국내 미술관서 10년 만에 선보이는 개인전이다. 작가가 작업을 지속하는 동안 맞은 전환점을 소개한다. 일본 오바야시 재단의 리서치 그랜드를 계기로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수행한 연구도 확인할 수 있다.
조형성
전시 제목인 ‘하이퍼 옐로우’는 ‘옐로우를 초과한 상태’를 뜻한다. ‘Yellow(노랑)’이라는 단어가 가진 인종적 함의와 함께 한자로 번역한 ‘황(黃)’은 동북아시아 삼국(한국·일본·중국)을 매개하는 황해로, 작가의 논의를 전환하는 촉매다.
고대 한자 문화권서 황색은 황제와 인민, 통치와 혁명, 이질성과 토착성 같은 모순적 기호성을 가졌다. 작가는 황해를 통로로 형성된 문화의 복잡한 면면을 유적, 사료, 의례와 종교의 흔적으로 정교하게 짚어냈다. 하이퍼 옐로우는 그 결과가 과거와 미래를 순환하는 이미지에 이른 형상, 이를 토대로 현실의 임계점을 넘으려는 작가의 독특한 미학이다.
임민욱은 그동안 근대화‧도시화와 같은 역사적 기억을 간직한 장소를 퍼포먼스의 무대로 활용해 왔다. 장소에 관한 임민욱의 상상은 강과 도시를 방랑하는 관광객의 시선을 통해 미지의 대륙, 대양, 행성으로 확대된다.
1전시실에는 전시실 전체를 거대한 설치 지형으로 재해석한 ‘솔라리스’가 놓였다. 스타니스와프 렘의 소설 제목을 빌린 작품은 일본 나라에 위치한 사찰 도다이지, 그리고 미래 어딘가에 존재하는 행성을 한 장소에 포갠 것이다.
미약하고 취약한 것에 애정
현실의 임계점 넘는 미학
2전시실에서는 하이퍼 옐로우의 연구 과정을 함축한 3채널 영상 작업 ‘동해사’를 상영한다. ‘불의 축제’와 ‘물의 축제’서 펼쳐지는 제례를 중심으로 관광객이 부여받는 임시적 공동체성을 사유한다. 영상에서는 머리 위에 작은 머리 열 구를 더 가진 십일면관음 캐릭터가 등장해 이름 없이 무한히 펼쳐진 ‘생각의 바다’를 질주한다.
동해사와 이어지는 ‘달라진 얼굴’ ‘삼체문제’는 한국·일본·중국의 십일면관음 형상을 중첩하고 강렬한 폭발의 이미지와 뒤섞어 그렸다.

3전시실에는 자연물과 인공물을 엮고 부숴 다시 질서를 짓는 임민욱의 조형성을 구체화한 작업이 놓였다. ‘습합’ ‘산수문전’은 갑오징어 뼈, 부표 등을 물감과 파스텔로 자유롭게 구상하거나 이를 적층해 굳힌 것이다.
철학자 우카이 사토시는 임민욱의 작업을 두고 “과거를 상속하는 일의 어려움”으로 해석했다. 작가의 실험을 장소와 시간을 재생하는 ‘미디어’로, 현실의 외연을 넓혀온 노력으로 본 것이다. 하이퍼 옐로우는 이런 해석에 더해 그동안 임민욱의 작업서 간과된 조형성과 장식성을 살펴본다.
일민미술관 관계자는 “임민욱에게 아름다움의 추구는 동시대에 빠르게 태어나고 사라지는 취약한 것을 미묘한 감각으로 어루만지는 미술가의 비전이다. 일민미술관은 이 논의를 예술의 의미에 관한 질문으로 되짚었다”고 설명했다.
장식성
이어 “AI와 같은 기술의 가능성이 창작을 압도하고 예술이 자신의 의미를 찾는 데 어려움을 겪는 시대에 임민욱의 작업은 여전히 우리가 예술을 필요로 하는 이유의 실마리가 된다”며 “일민미술관은 동시대 문화, 사상의 흐름과 기술철학적 논의를 임민욱의 실천과 함께 조망해 미술가의 미학적 추구가 삶의 불완전함을 보완하고 현실 사회의 극심한 분열을 수용할 가능성을 살피고자 한다”고 덧붙였다. 전시는 내달 20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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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민욱은?]
임민욱은 파리 국립고등조형예술학교 회화과를 졸업했다.
‘만일(萬一)의 약속(2015)’ ‘United Paradox(2015)’ ‘Heat of Shadow(2012)’ ‘점프 컷(2008)’ 등의 개인전을 열었다.
광주·시드니·타이베이·리버풀·이스탄불 비엔날레와 아시아 퍼시픽 트리엔날레, 세토우치 트리엔날레 파리 트리엔날레 등에 참여했다.
국립현대미술관, 리움미술관, 구겐하임,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 워커아트센터, 테이트 모던, 카디스트 재단, 퐁피두 센터 등에 작품이 소장돼있다. <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