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보 잡힌 롯데타워의 운명

2024.12.05 17:48:48 호수 1508호

안갯속 흔들리는 123층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롯데지주가 불황 속 재무구조 악화를 피하지 못해 롯데월드타워를 은행권에 담보로 제공하는 초강수를 뒀다. 롯데케미칼의 영업손실로 인한 적자가 지난 3년간 지속적으로 쌓이면서다. 신용평가사로부터 재무 리스크 우려가 나오자 사업 비중 조절, 스페셜티(고부가가치) 소재 사업 비중 확대 등으로 포트폴리오를 새롭게 조정하겠다고 발표했다.



업계에 따르면, 2013년 9월부터 지난해 3월까지 롯데케미칼이 최근 10년간 발행한 회사채 14개에 기한이익상실(EOD) 원인 사유가 발생했다. 기한이익상실은 어떤 상황서 채권자가 채무자에게 빌려준 대출금을 만기일 전에 조기 회수할 수 있는 권리를 의미한다.

과거의 영광

EOD 이슈가 발생하자, 국내 3대 신용평가사(한국기업평가·한국신용평가·나이스신용평가)가 롯데그룹 핵심 계열사인 롯데케미칼 리포트를 일제히 냈다. 롯데그룹 유동성과 관련한 시장 내 불안감이 형성되자 그룹의 적극적인 해명이 이어졌다. 

롯데케미칼 자체의 풍부한 자산 등을 고려하면 이번 이슈가 당장 큰 문제로 번질 가능성은 낮다는 시각도 있다. 특히 석유화학 업계 불황의 지속, 이자부담이 장기간 계속될 수 있다는 예측 등으로 관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앞서 롯데케미칼은 지난 9월30일 기준 계약상 유지해야 하는 재무비율 중 3개년 누적 이자보상비율(EBITDA/Interest Expense)을 5배 이상 유지해야 한다는 항목을 충족하지 못했다. 재무 특약조건 미준수 사유 발생에 대해 순차적인 협의를 위해 오는 19일 사채권자 집회를 소집한다.


당국과 시장에서는 웨이버(일시적 적용 유예)를 통해 재무 약정 위반 사유를 해소할 것으로 예상하면서도 예의주시하는 모습이다.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롯데케미칼은 이달 19일 회사채권자 대상 집회를 소집하겠다고 공시했다. 집회에서는 계약 변경 또는 EOD 선언 여부 등에 대해 의사결정을 하게 된다. 앞서 롯데케미칼은 지난달 21일, 2조원가량의 공모 회사채에 EOD 원인 사유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롯데그룹은 최근 유동성 위기 루머 속에서 자산 유동화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롯데케미칼 사채 관리 계약에 따르면, 사채의 원리금을 갚기 전까지 일정 재무비율을 유지하도록 하는 조건이 달려 있다. 3개년 평균 이자비용 대비 EBITDA 5배 이상, 연결재무제표 기준 부채비율 200% 이하로 유지해야 한다.

신평사 예의주시 롯데케미칼
기한이익상실 원인 사유 발생

하지만 롯데케미칼은 석유화학 업황 악화로 적자를 내면서 지난 9월 말 이자비용 대비 EBITDA가 4.3배를 기록해 5배를 밑돌게 됐다. 3분기 EBITDA는 2977억원, 이자비용은 3197억원으로 배율이 0.9배로 매우 낮은 상황이다. 3분기 말 부채비율은 75% 수준이다.

롯데케미칼 회사채의 경우 교차 부도 조항이 있어 한 회사채에만 디폴트(채무불이행) 사유가 발생해도 나머지 회사채까지 연쇄적으로 EOD 상태가 된다. 현재 롯데케미칼의 회사채는 총 2조3000억원 규모다. 이 중 2500억원 규모를 제외한 나머지가 모두 연결돼있어 자칫 2조원의 디폴트가 생길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롯데케미칼은 사채권자 동의를 얻어 웨이버를 받으면 일단 위기는 넘길 수 있다는 입장이다. 채권자들과 금융사, 금융 당국도 이에 공감대를 형성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각에서는 EBITDA 관련 내용을 삭제하는 식으로 재무 약정을 수정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약 2조원의 채권이지만 현금이 당장 부족한 상태는 아니어서 웨이버만 되면 유동성에는 문제가 없고, 시장에 안심을 줄 것”이라고 설명했다.

롯데그룹은 롯데케미칼이 예금 2조원을 포함해 유동성 자금 4조원가량을 확보하고 있어 회사채 상환에 대응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다만 영업 현금 창출력이 당분간 개선되기 힘든 점은 숙제다. 롯데케미칼은 지난해 3477억원의 영업손실에 이어 올해 3분기까지 6600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금융기관 차입금 또한 약 8조4000억원 규모에 달한다. 국내 신용평가사들도 사채권자 집회 결의 내용을 주시하고 있다.

과거 5대 그룹에 꼽혔던 롯데는 ‘지친 거인’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는 롯데케미칼 등의 실적 부진과 영업손실 확대가 계속되면서 현금 유동성이 줄어든 탓도 있다. 롯데케미칼은 2021년 1조5000억원의 영업이익을 냈으나 이후 연속으로 적자를 기록 중이다.

2022년 7626억원, 지난해 3477억원의 적자를 냈다. 올해도 3분까지 누적 영업손실이 6600억원으로 시장에선 올해 적자 규모가 7000억원을 훌쩍 넘을 것으로 보고 있다. 

또 일진머티리얼즈(현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를 인수하고, 인도네시아 라인 프로젝트에 수조원을 투입하는 등 공격적 투자에 따른 여파라는 분석도 나온다.

조현렬 삼성증권 연구원은 ‘최근 이익 급락에 5조2000억원 규모의 라인 프로젝트, 2조7000억원 규모의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 등 투자 확대’를 배경으로 분석하며 “해당 투자만 없었더라도 현 시점서 순현금 포지션이었을 것”이라고 했다.

현재 롯데케미칼은 활용 가능한 보유예금 2조원을 포함해 가용 유동성 자금 총 4조원 상당을 확보해 안정적 유동성을 보유하고 있다. 이에 회사채 상황에 대응할 수 있고, 부채비율 역시 약 75%로 견조한 재무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나아가 롯데지주는 롯데케미칼 회사채의 신용을 강화할 목적으로 국내 최고 랜드마크인 롯데월드타워를 은행권에 담보로 제공한다고 밝혔다. 롯데월드타워는 지상 555m 123층 빌딩으로 세계서 여섯 번째이자 국내 최고층 빌딩이다.

롯데 선대 회장인 고 신격호 회장의 인생작으로, 2017년 완공했다. 핵심 자산을 내놓을 만큼, 시장의 우려를 불식시키고 롯데케미칼의 유동성에 문제가 없다는 메시지를 확실하게 전달할 목적인 셈이다. 

이 같은 조치에 대해 롯데지주는 “그룹 차원의 강력한 시장 안정화 의지를 담은 실질적 대책”이라고 설명했다. 롯데그룹 관련주는 지난 28일 장 초반 강세를 나타냈다. 롯데월드타워 담보 제공 및 강도 높은 인적 쇄신을 예고한 데 따른 기대감이 반영된 결과로 풀이된다.


롯데지주는 이날 오전 10시 2.39% 오른 2만1400원에 거래됐다. 같은 시각 롯데케미칼은 3.47%, 롯데쇼핑 1.78%, 롯데정밀화학 2.42% 등 강세를 보였다.

경쟁국 공급 과잉, 원료 상승···
3년 넘게 적자 ‘아픈 손가락’

궁극적으로 롯데지주는 수익성 개선이 당면 과제에 놓였다. 그러나 중국, 중동의 설비 증설로 인한 공급 과잉, 원료 가격 상승 등으로 시장 상황이 좋지 않다.

롯데케미칼은 의존도가 높았던 기초화학 부문의 매출 비중을 2030년까지 60%서 30%로 낮추고, 고부가가치 제품인 ‘스페셜티’ 위주로 포트폴리오를 전환하며 첨단소재, 정밀화학, 전지 소재 부문을 확대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투자 축소, 자산 매각 등도 함께 진행된다.

성낙선 롯데케미칼 재무혁신본부장(CFO)은 3분기 실적 발표 후 열린 콘퍼런스콜에서 “내년 시설투자(CAPEX)는 추가적인 검토를 통해 1조7000억원 수준까지 축소했다. 2025년 이후 시설투자는 상각 전 영업이익을 초과하지 않는 수준서 집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롯데그룹은 현재 부동산·가용예금만 71조4000억원에 달하는 등 유동성에 문제가 없다며 계열사 전반의 재무 안정성 관리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21일 롯데그룹은 보도자료를 통해 “지난달 기준 총자산은 139조원, 보유 주식 가치는 37조5000억원에 각각 달한다”며 “그룹 전체 부동산 가치는 지난달 평가 기준 56조원, 즉시 활용 가능한 가용 예금도 15조4000억원을 보유하는 등 안정적 유동성을 유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롯데는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그룹 전반에 걸쳐 자산 효율화 작업과 수익성 중심 경영을 진행한다”고 말했다. 롯데그룹은 특히 롯데케미칼 회사채와 관련한 현안은 최근 석유화학 업황 침체로 인한 롯데케미칼의 수익성 저하로 발생한 것으로 현재 충분한 유동성을 확보해 문제가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문제없다”

롯데는 “지난 2018년 이후 화학산업은 신규 증설 누적에 따른 공급 과잉으로 수급이 악화하고 중국의 자급률이 높아지면서 손익이 저하됐다”며 “이에 롯데케미칼이 일부 공모 회사채의 사채 관리계약 조항 내 실적 관련 재무 특약을 미준수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관련 조항은 최근 발행한 회사채에는 삭제된 조항”이라며 “현재 롯데케미칼은 사채권자들과 순차적으로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롯데케미칼은 지난달 기준 4조원의 가용 유동성 자금을 확보해 회사채 원리금 상환에 문제가 없다”며 “다음 주 중 사채권자 집회 소집을 공고해 내달 중 사채권자 집회를 개최해 특약사항을 조정할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smk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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