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래닛 아쿠아

2024.09.30 08:15:30 호수 1499호

제레미 리프킨 / 민음사 / 2만8000원

수자원 인프라의 등장은 인류 역사에서 중대한 전환점이다. 약 6000년 전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인도의 인더스 계곡, 중국 황허, 그리고 훗날 로마제국서 지구의 물을 독점적으로 이용하기 시작하면서 인간은 동료 생물들과 다른 길을 택했다.



인류의 조상은 물을 활용하고 재배치하는 정교한 기술을 도입해 인간의 시간·공간·사회적 우선순위에 맞춰 물을 길들이기 시작했다. 

댐과 인공 저수지를 건설하고, 제방과 둑을 쌓고, 운하를 파서 물을 격리하고 사유화하고 상품화했다. 이렇게 수권을 굴복시키자 잉여 식량이 대폭 증가했고 논밭에 필요한 일손이 줄어들면서 상대적으로 밀집한 지역으로 인구가 이동했다.

도시 지역이 확장하고 이전에 없던 경제생활이라는 현상이 나타났다. 농부들을 동원하는 것부터 곡물 운송·저장·분배, 상거래 관리, 세금 징수, 운하 청소, 국경 방어를 위한 군대 유지까지 생산과 행정을 관리할 고도로 중앙집권화된 정치적 통제와 전문 직무에 종사하는 전문 노동자가 탄생했다. 도시 수력 문명의 시작이었다.

수력 인프라에 묶인 인류의 거대 도시가 앞으로도 대기천과 홍수, 가뭄, 폭염, 산불, 허리케인을 극복하는 서식지로 남을지는 미지수다. 높은 인구밀도가 특징인 도시 수력 문명은 과거의 온화하고 예측 가능한 기후에는 적합할지 모르지만, 오늘날 급속히 온난화하는 지구에는 적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규모 기후 이주는 이미 시작됐다.


유엔난민기구는 지난 14년 동안 기후 기상 이변으로 연평균 2100만명이 강제 이주했으며 2050년이면 기후 난민이 12억명에 이를 수 있다고 추정한다. 인구통계학 연구들은 향후 45년 동안 미국인 12명 중 1명은 가뭄과 폭염, 화재에 취약한 미국 남부를 벗어나 서부 산간지대와 북서부로 이동할 것으로 예상한다.

세계 인구 상당수가 기후 위험 지역서 벗어나 살기 좋은 온화한 기후를 찾아 움직이며 새로운 유목 시대의 도래를 알리고 있다.

모든 사람이 평생 주권국가의 보호 아래 하나의 고정된 지리적 공간에 소속되는 세상은 점차 과거의 이야기가 될 것이다. 글로벌 기후 여권 발급에 대한 논의가 탄력을 받고, 기후 조건과 지역 생태계가 밀접하게 연계되는 생태 지역 거버넌스가 확대될 것이다.

진보의 시대가 종언을 고하고 거주 불능 지구에 대한 암울한 전망이 넘치지만 희망이 없지는 않다. 키워드는 회복력과 적응성이다.

호모 사피엔스와 그 조상들은 빙하기와 간빙기를 오가는 급격한 기후 변화 속에서 살아남은, 지구상에서 가장 적응력이 뛰어난 종에 속한다. 뛰어난 두뇌와 언어 능력, 도구를 만들고 사용하는 능력, 지식을 공유하고 미래 세대에 전수하는 능력, 집단 협력을 장려하는 공감 충동 덕분에 인류는 기후의 극적인 변화 속에서 살아남고 번성할 수 있었다. 

이런 적응성과 성숙한 생명애 의식이 예측 불가능한 변화를 겪고 있는 물의 행성서 새로운 방식으로 살아가는 법을 배우도록 도울 것이다. 지금까지 해 온 방식대로 자연을 고갈시키고 굴복시킬 것인가, 아니면 생명의 원천인 수권에 우리 인간 종을 다시 적응시키고 생명 공동체에 합류할 것인가? 미래는 우리에게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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