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추어 대통령과 정치 신인 집권여당 대표의 콜라보

2024.09.26 10:18:08 호수 0호

‘독대 여부’가 민생보다 중요한가?

[일요시사 정치팀] 박 일 기자 = 며칠 전부터 윤석열 대통령과 집권여당인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의 독대 기사가 연일 언론 지면을 수놓고 있다. 대통령과 집권여당은 국정 파트너로서 정부 정책 결정은 물론 야당의 거센 공격을 막아내야 하는 한 배를 탄 공동체라고 할 수 있는데, 작금의 당정관계는 왠지 불안불안한 게 사실이다.



분명한 것은 대통령과 국민의힘 지도부와의 만찬이 한 대표와의 단독 회동과는 성격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대통령과 지도부와의 만찬은 여러 의견들이 오가고 배석자가 많은 만큼 깊이 있는 주제가 오갈 가능성은 아무래도 낮다.

반면, 두 사람만의 독대는 그렇지 않다.

한 대표 입장에선 이른바 이 같은 ‘깊이 있는’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던 것이고, 윤 대통령 입장에선 한 대표의 ‘언론플레이’를 내심 마뜩지 않게 생각했던 게 아닐까 싶다. 한 대표와 심도 있는 얘기를 허심탄회하게 나눌 경우, 대부분의 독대 의제들이 마치 번개처럼 기사화되는 것을 우려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해석마저 나온다.

결국 한 대표의 입을 경계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한 대표는 지난 25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서 윤 대통령과 만찬 회동에 대해 “현안 관련 얘기가 나올만한 자리가 아니었다”면서도 “일도양단으로 (성과가)있다, 없다고 말씀하실 게 아니라 소통의 과정이라고 길게 봐주시면 어떨까 싶다”고 말했다. 다만 “대통령님과 중요한 문제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정치는 민생을 위해 대화하고 좋은 해답을 찾는 것이고, 그 과정”이라고 힘줘 말했다.


지난 24일, 윤 대통령과 한 대표, 추경호 원내대표, 인요한·김재원 최고위원 등 국민의힘 지도부는 약 90분간 저녁 만찬을 가졌으나 대통령과 한 대표와의 독대 자리는 끝내 마련되지 않았다.

그러자 한 대표는 만찬 직후 대통령실에 독대를 요청하면서 언론에 공개하겠다고 알렸다. 이는 자신의 독대 요청이 앞서 만찬 전에 공개됐던 논란을 의식한 것이라는 분석에 무게가 실린다.

각종 매체서도 국민의힘 친윤(친 윤석열)계 인사들이 한 대표의 언론플레이를 지적하는 기사가 쏟아지고 있다.

김재원 최고위원은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 인터뷰서 “독대 요청을 언론에 알려서 잘 안 받아주면 대통령이 한동훈 대표를 불신한다는 것, 나아가 대통령이 시중의 여론을 전달하려고 하는데 귀를 닫고 있다고 비판받을 소지를 공개적으로 만들어 놓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김 최고위원은 “한 대표께서도 대통령을 마주 보고 이야기하면서 이야기를 꺼낼 기회는 충분히 있었다. 말도 못하게 막는 분위기였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며 “(새 지도부)출범을 축하하는 정도의 자리였기 때문에 (한 대표가)불편하게 만들지 않으려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발언하려고 하면 충분히 할 수 있었는데 한 대표 스스로가 ‘이 자리에선 이야기하지 않겠다’고 생각한 게 아닌가”라고도 했다.

그는 “만약 (독대를)수용했더라면 윤 대통령이 한 대표에게 굴복했다는 프레임을 씌울 수가 있다. 대통령실 입장에선 상당히 어려운 국면으로 대통령을 궁지에 몰아넣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고 해석하기도 했다.

친한계인 김종혁 최고위원은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한동훈 대표가 6시가 되지 않아, 다른 분들보다 20여분 일찍 (만찬장에)도착했는데 대통령이 일찍 오셔서 ‘한 대표, 나하고 잠깐 얘기합시다’라는 상황이 있지 않을까 기대했던 것 같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김 최고위원은 “대통령이 모두발언하고 난 다음에 ‘요즘 어떻습니까?’라고 의견이라도 물어보셨다면 한 대표도 무슨 말을 좀 하려고 했을 것 같다”며 “그런 게 없어 현안에 관해서 얘기할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한 대표에게 발언권이 주어지지 않았던 상황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셈이다.

다른 친한계인 장동혁 최고위원도 “국민들은 여러 현안에 대해 대통령과 당 대표가 만나서 이 문제를 해결해 줬으면 하는 열망이 있는데 그런 형식 때문에 중요한 내용이 묻혀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언론을 통해 ‘독대 여부’에만 관심이 쏠려 중요 현안이 외면돼선 안 된다는 취지의 발언이다.


장 최고위원은 “형식이 내용보다 앞서가서 결국은 독대가 무산되거나 하는 것은 좀 안타깝다”고 아쉬워했다.

다른 친한계 인사인 신지호 전략기획부총장도 채널A 유튜브 방송에 출연해 “실제 만찬 분위기는 썰렁했는데 대통령실이 화기애애했다고 해서 화기애애한 것으로 되지는 않을 것”이라며 “애당초 만찬에서 현안에 대해 심도 있는 논의와 의미 있는 결정을 하기가 힘든 상황이었기 때문에 한 대표가 별도로 독대 요청을 했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독대 논란’에 대해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은 이날 자신의 SNS(페이스북)에 “포용하고 경청할 줄 모르는 대통령이나 독대를 두고 언론플레이만 하는 당 대표나 둘 다 치졸하고 한심하다”고 싸잡아 비판했다.

그는 “(이번 당정 만찬에서)의료 사태의 ‘의’자도, 연금개혁의 ‘연’자도 나오지 않았다. 검사 출신 두 사람의 한심한 정치”라며 “대통령과 당 지도부가 만나 ‘우리 한 대표가 좋아하는 소고기, 돼지고기’만 먹고 헤어졌다”고 질타했다.

이어 “자영업자의 비참한 몰락, 미친 집값과 가계부채 같은 민생 문제도 없었다. 대화와 합의의 정치를 마비시키는 김건희 특검법, 채 상병 특검법도, 대통령과 당에 대한 민심이반도 거론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럴 거면 왜 만났느냐? 국민들만 불행하다. 최소한 의료 대란을 해결할 당정의 일치된 해법만큼은 꼭 나와야 했던 거 아니냐?”고 직격하기도 했다.

아울러 “당과 대통령실의 책임자들 수십명이 모인 자리서 어느 한 사람도 지금의 국정 실패와 민심이반에 대해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니, 정부여당으로서 최소한의 책임도 직업윤리도 영혼도 없었다”며 “배가 가라앉고 다 망해봐야 정신을 차릴 건가? 그때는 뒤늦게 후회해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고 질타했다.

유 전 의원의 지적처럼 이번 당정 회동이 ‘응급실 뺑뺑이’로 요약되는 의료 대란 문제 등 시급한 현안을 뒤로 한 채 단순히 ‘소고기 회동’으로 마무리됐다는 점은 못내 아쉽다. 이를 두고 정치권 일각에선 아마추어 컬래버레이션의 극치라는 비판도 나온다.

‘정치 아마추어’인 대통령을 선출한 유권자들과 ‘정치 신인’인 한 대표를 선출한 국민의힘 당원들이 짊어져야 할 짐이 아닌가 싶다. 대통령이 노련한 정치력을 바탕으로 국정운영을 원활히 한다거나 집권여당 대표가 특유의 리더십과 정치력으로 당정관계를 이끌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있는 형국이다.


국정운영 지지도 및 정당 지지도 관련 각종 여론조사 지표는 불편한 진실을 여지 없이 드러내고 있다. 편차가 존재하기는 하지만, 긍정 평가가 20% 후반에서 30% 초반 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안 그래도 어려운 여소야대 국면에서 당정관계가 회복되지 못하고 야당의 ‘탄핵·특검’ 공세가 이어질 경우, 향후 여권 전체의 위기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 목소리도 제기되고 있다.

한 수도권 중진 의원은 “윤 대통령과 한 대표의 대화가 마치 대통령과 야당 대표가 만나는 영수회담 같다”며 “조용히 만나서 해결해야 할 문제를 이렇게 동네방네 떠들고 다니면 어떻게 정치를 하나. 둘 사이의 신뢰 회복이 우선”이라고 말했다.

다른 영남권 중진 의원은 “지금 독대하느냐 마느냐를 가지고 감정싸움을 할 상황이 아니다”라며 “대통령과 여당 대표는 민생회복을 위해 할 일을 하는 게 의무다. 이를 내팽개치고 있는데, 두 분다 공과 사는 구분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지적했다.

당정 그 자체인 대통령과 집권여당 대표 모두가 스스로 아마추어임을 입증해 보이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는 자조섞인 얘기마저 나온다.

하지만, 변화를 위한 시간이 늦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실제로 윤석열정부 임기는 이제 갓 반환점을 돈데다, 한 대표의 취임도 이제 두 달이 조금 더 지났을 뿐이기 때문이다. 아직 시간은 많이 남아 있다.

<park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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