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가상자산사업자가 벤처기업 인증 대상서 제외돼 시대착오적 규제라는 논란에 휩싸였다. 벤처기업 인증은 기술기업이 세제·금융·특허 및 정책자금·신용보증 등 혜택과 더불어 투자 생태계 조성을 위해 꼭 필요한 절차다. 가상자산업계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편견으로부터 비롯됐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지난 11일 벤처기업협회 및 가상자산업계에 따르면 벤처기업 중 가상자산사업자(VASP)로 신고된 5곳 업체에 대한 벤처인증취소 절차가 진행 중이다. 거래소뿐 아니라 디지털 월렛, 커스터디 사업(수탁사업) 등 사행성과 거리가 먼 신사업 추진 기업까지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벤처인증 기회조차 박탈당하고 있다.
시대착오적
중소벤처기업부는 벤처인증을 받은 가상자산사업자에 대한 인증심사도 진행하고 있다. 해당 기업들은 이미 취소됐거나 소명 절차를 거친 후 최종 취소 여부가 결정된다. 벤처기업 인증을 이미 받았지만, 가상자산사업자 자격을 부여받았다는 이유로 정부가 획일적으로 제외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
관련 기업들은 정부가 벤처인증까지 내주고 뒤늦게 가상자산사업자라는 모호한 규정을 적용해 피해를 보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 중 금융자산을 대신 보관 및 관리하는 서비스인 커스터디 사업의 규제가 가장 눈에 띈다. 기존에 금융사들이 제공했던 업무로 투자자 입장에서는 직접 자산을 관리할 필요가 없고, 외부 도난 등의 사고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보안 사업의 일종이다.
최근엔 디지털자산 산업이 발달하면서 가상자산 커스터디 서비스 영역도 커지고 있다.
해외에선 이미 관련 서비스들이 출시된 바 있다. 미국 자산운용사인 피델리티 인베스트먼트는 지난 2019년 기관투자자를 대상으로 비트코인 커스터디 서비스를 시작했다. 국내에선 국민은행이 최초로 디지털자산 커스터디 서비스를 출시했다.
국민은행의 합작법인 한국디지털에셋(Korea Digital Asset·KODA, 이하 코다)은 지난 2021년 5월3일 가상자산 커스터디 서비스를 공식 출시했다.
코다서 제공하는 가상자산 수탁 서비스는 고객들이 비트코인, 이더리움 등 가상자산을 외부 해킹이나 보안키 분실 같은 위험으로부터 안전하게 보관하고 가상자산 예치이자(스테이킹) 같은 탈중앙금융(디파이, De-Fi) 상품에 투자해 자산을 운용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법인 고객들이 가격 변동성 위험을 최소화하며 안전하게 디지털자산을 매매할 수 있다는 점도 특징이다. 법인 계좌의 원화 입출금이 불가능한 국내 4대 가상자산 거래소와 달리 코다는 장외거래를 중개한다. 제도권서 커스터디 서비스를 출시한 만큼, 기능적인 발전을 위해서라도 중소 경쟁사의 진입을 원활하게 해야 한다는 의견이 대다수다.
다만, 정부는 가상자산사업자를 ‘유흥업’과 견주어 벤처기업 인증의 자격을 박탈한 모양새다. 이는 지난달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법을 시행한 것과 상충한다는 지적도 있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지난 2018년 10월 블록체인 기반 암호화 자산 중개·매매업에 대해 도박장인 카지노, 유흥업종인 유흥주점 및 카바레와 함께 ‘벤처기업 지정 제외 업종’으로 하는 벤처기업육성특별법 시행령을 개정해 시행해 오고 있다.
“시중은행도 하는데···” 왜 빠졌나?
디지털 월렛, 커스터디 사업 물거품
정부가 지난달 19일부터 이용자 보호 및 불공정 거래 규제 중심의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법(1단계 가상자산법)을 시행하면서 본격적인 가상자산 제도화 시대에 진입했다. 앞서 국무총리실이 지난 2017년 12월13일 ‘조속한 시일 내 입법조치를 거쳐 투자자 보호, 거래 투명성 확보 조치 등의 요건을 갖추지 않고서는 가상통화 거래가 이뤄지지 않도록 하겠다’고 대국민 약속을 한 지 무려 6년7개월 만에 이뤄진 것이다.
하지만 가상자산 거래소가 벤처 업종 및 중소기업 자금 지원서 제외되면서 시대착오적 제도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지난 2022년, 한국디지털자산사업자연합회(KDA)는 “새 정부 출범 후 5개월이 지났음에도 가상자산 거래소에 대한 제도적 홀대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고 강조한 바 있다. 앞서 KDA는 국민권익위원회 및 중소벤처기업부에 새 정부 출범 이후 가상자산 거래소에 대한 벤처업종 제외 및 중소기업 자금 지원 제외 등 제도적 홀대를 개선해 주도록 요청한 바 있다.
당시 관계 당국에선 국민신문고를 통해 “특정금융정보법은 자금세탁 방지를 목적으로 하는 법률”이라며 “투자자 보호 강제 규정 등이 미비하다”고 아직 해당 제도를 개선하기는 어렵다고 답변했다.
특히 ‘벤처기업 지정 업종에 포함’ 요청에 대해 관계 당국에서는 특정금융정보법은 자금세탁 방지를 골자로 한 법이며, 투자자 피해 구제 수단을 강제하지 않는 점 등을 감안해 시기상조라는 입장이다. 중소기업 자금 지원 대상 포함 요청에 대해서는 “특정금융정보법 제2조 1항 하호에 의해 가상자산사업자가 '금융회사 등'에 포함돼있어서 수용할 수 없다”고 답했다.
중소기업 정책자금은 정책적 지원이 필요한 기술 및 사업성이 우수한 중소기업의 성장촉진을 위해 운영되고 있으나, ▲사행산업 등 국민정서에 의해 지원이 부적절한 업종과 ▲ 자금조달이 상대적으로 용이한 금융 및 보험업 등의 업종은 융자지원서 제외하고 있다.
이에 따라 가상자산 거래소는 신용보증기금 및 지자체 신용보증재단의 신용보증에 의한 중소기업 운영 및 시설자금 지원 대상서도 제외돼있다.
강성후 KDA 회장은 “2018년 당시와 확연히 달라진 정책환경을 애써 무시하는 처사”라며 “국민의힘 및 더불어민주당 디지털자산특위와 국회 관련 상임위원회, 금융위원회 금융규제혁신회의 및 디지털자산 민관합동 TF 등과의 협의를 거쳐 조속한 시일 내에 제도적인 홀대를 개선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혼란만 가중시킬 것”
‘공정 경쟁’ 사라지나
2년이 지났지만 제도 개선보다 규제만 늘었다. 현재 벤처기업협회 확인심의팀은 현행법에 따라 가상자산사업자를 벤처 등록 대상서 제외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현행법상 가상자산사업자는 벤처기업에 포함되지 않는 업종에 해당한다. 지난 2018년 10월 개정된 벤처기업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 시행령은 벤처기업에 포함되지 않는 업종(제2조의 4관련)에 블록체인 기반 암호화 자산 매매 및 중개업을 명시했다.
당시 투자과열·유사수신·자금세탁·해킹 등 불법행위 등이 사회적 문제로 불거지면서 가상자산 거래소들을 벤처기업으로 지정해 혜택을 주는 게 타당하지 않다는 판단에서다. 문제는 가상자산 사업 형태 및 규모와 제도권 진입 등이 이뤄진 현재에도 일률적인 규제가 이어져 오고 있다는 점이다.
시행령에 따르면 모든 가상자산사업자는 벤처인증을 받을 수 없다는 결론이다.
벤처기업 인증을 받으려다 포기한 가상자산업 대표는 “사행 기업이라는 과거 기준으로 가상자산사업을 판단하는 정부의 이 같은 행태는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처사”라며 “벤처기업 인증을 받으려고 했지만 오히려 이미 인증받은 기업까지 취소 통보하고 있어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중소벤처기업부 벤처 정책과 관계자는 “그간 가상자산에 대한 법적으로 명확한 규정이 없었기 때문에 정부 차원서 벤처 인증을 내주는 데 부담이 있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시행령 개정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다.
이민형 벤처기업협회 정책연구팀장은 “사행성이라든지 문제가 되는 부분은 벤처인증 심의 과정서 충분히 걸러낼 수 있다”면서 “가상자산사업이 비즈니스 모델로 자리 잡은 현시점서 벤처 예외 업종으로 지정해 일률적으로 규제할 필요는 없다”고 짚었다.
벤처기업 인증은 기술기업이 세제·금융·특허 및 정책자금·신용보증 등 혜택과 더불어 투자 생태계 조성을 위해 꼭 필요한 절차로 꼽힌다.
박성준 동국대 블록체인연구센터장은 “벤처인증 불허의 가장 큰 문제는 가상자산업 투자 생태계 조성을 못 한다는 것”이라며 “산업 육성을 위해선 벤처기업 제외 항목에 대한 시행령 개정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해 국제기구들은 ‘국제공동 가상자산법 권고안’을 발표하고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 130여개 회원국에게 입법을 독려하고 있다. 한국도 일부나마 이 대열에 동참하고 있는 것이다.
갈 길 멀다
지난해 국제통화기금(IMF)-금융안정위원회(FSB)는 9월에, 국제증권관리감독기구(IOSCO)는 11월에 각각 ‘국제공동 가상자산법 권고안’을 발표한 바 있다. 이는 지난 2022년 전 세계 투자자들에게 60조원 이상 피해를 유발한 테라·루나 토큰 사태와 같은 범죄를 예방하기 위함이다.
현재 신현성 테라폼랩스 공동 창업자 등에 대한 1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검찰이 밝힌 공소장에 따르면, 국내 가상자산 관련자들이 거래소서 자전거래 등을 통해 얻은 수익은 무려 6308억원에 달한다. 이는 검찰이 수사를 통해 입증한 금액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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