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정신을 반영하지 못하는 낡은 체제는 극단주의자와 표면적으로 충직한 민주주의자의 강력한 무기다. 미국서 헌법은 신성불가침의 영역이라 여겨진다. ‘건국의 아버지들’이 정교하게 설계한 헌법 덕분에 권력의 균형을 이루고, 자유민주주의가 작동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헌법의 기원을 살펴보면 이 같은 인식은 오해라는 걸 알 수 있다.
특히 의회 구성과 선거인단 제도는 노예 소유주들을 설득하기 위한 타협과 반다수결주의의 산물이다. 노예제 유지를 원했던 미국의 몇몇 주는 자신들의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면 연방서 탈퇴하겠다고 협박했고, 이는 미국을 외부의 공격에 취약하게 만들 위험이 있었다.
결국 노예제가 있는 주들은 투표를 할 수 없는 노예들까지 투표 인구로 인정받아 매사추세츠에 비해 투표 인구가 더 적은 버지니아가 매사추세츠보다 다섯석을 더 차지하게 됐다.
의회 의석수에 비례한 선거인단 제도로 대통령을 선출하게 되면서, 대선에 많은 영향력을 발휘하게 된 것은 물론이다. 인구수에 비례하지 않은 의석수, 간접선거나 다름없는 선거인단 제도는 지금까지 유지돼 오면서 남부와 백인의 표만으로 다수 의석과 대통령 자리를 차지할 수 있도록 만든다.
도널드 트럼프와 공화당이 여성과 유색인종에 대한 혐오를 남발하고도 권력을 쟁취할 수 있는 이유다. 실제로 2000년 조지 W. 부시, 2016년 도널드 트럼프는 경쟁자보다 더 적은 표를 얻고도 대통령에 당선됐다.
패자가 승자가 된 것이다. 민주적이라고 알려진 수많은 제도는 사실 사회적 소수자가 아닌 극단적 소수에게 혜택을 부여하며, 반동을 꿈꾸는 이들에게 힘을 실어준다.
민주주의서 다수의 힘을 제한하기 위한 장치는 반드시 필요하다. 특히 개인의 자유라는 영역서 더욱 그렇다. 선출된 정부라고 해서 우리가 특정 신에게 예배를 드리도록 강요할 수 없고, 어떤 책을 읽고, 어떤 영화를 보고, 대학서 무엇을 배워야 할지 판단해선 안 된다.
또 개인이 어떤 인종이나 성과 결혼해야 할지 결정해서도 안 된다.
그러나 적은 표를 얻은 이가 많은 표를 얻은 이 대신 공직에 오르고, 의회 다수가 결정한 법안이 소수의 의원에게 가로막히고, 소수의 극단적인 의견에 끊임없이 귀 기울여야 하는 상황 역시 민주주의의 제어 장치라고 말할 수 있을까?
저자들은 ‘소수를 보호하고 민주주의를 보전하는 제도’와 ‘특권을 가진 소수에게 부당한 이익을 제공하는 제도’를 엄연히 구분해야 한다고 이야기하며, 우리가 이를 관습적으로 따르고 찬양하는 것이 아니라 비판적인 시선으로 바라볼 것을 촉구한다.
선출되지 않은 권력의 횡포. 특정 집단을 과도하게 대표하는 선거. 선택적으로 규정되는 합법과 불법. 이 책은 우리가 신성하게 여겨왔던 정치체제가 실은 타협과 한계로 가득한 제도라는 것을, 때문에 반동을 꿈꾸는 이들의 무기가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다양한 구성원이 공존하는 민주주의 국가가 되느냐, 소수만이 권리를 누리는 독재 국가가 되느냐? 세계 인구의 절반이 투표소로 향할 슈퍼 선거의 해, 저자들은 민주주의의 운명이 바로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음을 강력하게 경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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