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각지대’ 공동주택단지 교통사고 딜레마

2024.03.25 14:22:15 호수 1471호

사고 내도 괜찮다고?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JTBC <한문철의 블랙박스 리뷰>로 단지 내 교통사고가 주목받고 있다. 도로교통법상 도로에 해당하지 않아 형사처벌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보행자 보호 의무가 모든 도로에 적용됐지만 제재할 수단은 없다. 매년 늘어나는 단지 내 교통사고를 <일요시사>가 들여다봤다.



아파트 단지 내에서 일어난 교통사고는 형사처벌을 받지 않는다. 도로교통법상 도로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 12일 JTBC <한문철의 블랙박스 리뷰>에서는 개학 시즌을 맞아 아이들이 겪을 수 있는 교통사고들을 소개했다.

특례법 허점

이날 한문철 변호사는 아파트 단지 내에서 발생한 차량 사고 영상을 공개했다. 해당 영상에는 아파트 단지 내에서 후진하던 차량이 갑작스레 좌회전으로 돌진해 지나가던 초등학생을 덮친 사고 장면이 담겼다.

이 사고로 피해 학생은 성장판 손상까지 염려되는 전치 10주 진단을 받았지만 사망 등의 중상해가 아닌 아파트 단지 내 사고는 도로교통법상 도로에 해당하지 않아 가해자가 형사처벌을 면했다.

구 도로교통법상 도로에는 도로법에 의한 도로, 유로도로법에 의한 도로, 그 밖의 일반 교통에 사용되는 모든 곳이 포함된다. 여기서 일반 교통에 사용되는 모든 곳은 현실적으로 불특정의 사람이나 차량의 통행을 위해 공개된 장소로서 교통질서 유지 등을 목적으로 하는 일반 교통경찰권이 미치는 공공성이 있는 곳을 의미한다. 


다만 특정인들 또는 그들과 관련된 특정한 용건이 있는 자들만이 사용할 수 있고 자주적으로 관리되는 장소는 일반 교통에 사용되는 모든 곳에 포함되지 않는다. 즉 주민들이 자주적으로 관리하는 아파트 구내, 대학교 구내, 주차구획선 내의 주차 구역, 대형건물 부설 주차장 등이 도로에 포함되지 않아 형사처벌이 불가능한 것이다.

도로교통법이 지난 2010년 도로 외의 곳에서도 예외적으로 처벌받을 수 있도록 개정됐다. 구체적으로 ▲음주운전과 음주측정 거부 ▲약물운전 ▲사고 후 미조치 ▲주정차 차량 손괴 후 인적사항 미제공이다.

2022년에도 보행자 보호 의무와 관련해 도로를 불문하도록 법이 개정됐지만 여전히 형사처벌 대상이 되진 않았다. 단지 보행자가 다치는 경우 과실 유무 판단의 기준이 되도록 개정됐다. 여전히 사고 예방을 위한 경찰 활동이나 단속, 범칙금이나 벌금 부과를 할 수 없는 셈이다, 

공동주택단지 내 교통사고는 매년 증가세를 보여왔다. 경찰청이 국회에 제출한 통계자료에 따르면, 2020년과 2021년 공동주택단지 내에서 발생한 교통사고는 각각 2728건, 2861건이었으며 사상자는 7101명에 달했다. 하지만 단지 내에서 운전을 하다 12대 중과실사고를 내도 형사처벌이 불가능하다. 

20년 2728건·21년 2861건
도로교통법상 도로서 제외

12대 중과실 사고는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제3조에 규정돼있는 것으로 ▲신호위반 ▲중앙선 침범 ▲제한 속도보다 20km 초과해 과속 ▲앞지르기 방법, 금지 시기, 금지 장소 또는 끼어들기 금지 위반 ▲철길건널목 통과 방법 위반 ▲횡단보도서의 보행자 보호의무 위반 ▲무면허 운전 ▲음주운전 ▲보도 침범 ▲승객 추락 방지 의무 위반 ▲어린이보호구역 안전운전의무 위반 ▲자동차 화물이 떨어지지 않도록 필요한 조치를 하지 않고 운전 등이 있다.

교통사고처리특례법에 따르면 12대 중과실 사고 위반에 대한 처벌은 5년 이하의 금고형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이다.

악덕 운전자들은 이를 악용하기도 한다. 예로 아파트 정문 쪽에서 직진 중인 차량과 중앙선을 넘어 좌회전하는 차량과 충돌이 일어났지만 경찰은 단지 내에서 발생한 사고이기 때문에 범칙금이나 벌금을 부과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또 2021년 서울 노원구 노원구 소재 아파트 단지 내 주차장서 음주운전에 단속돼 면허 취소처분을 받은 입주민 A씨는 “음주운전 장소는 단지 내 주차장으로 도로교통법상 도로에 해당하지 않으므로 면허취소처분은 위법하다”며 소를 제기했다.

항소심 끝에 A씨의 운전면허취소처분은 취소됐다. 현행법상 도로에 해당하지 않은 곳이라도 음주운전은 처벌 대상이지만 이에 대한 행정처분은 불가했기 때문이다.


지난 2019년에는 도로교통법상 도로에 해당하지 않는 곳에서는 무면허 운전을 해도 사고가 발생하지 않으면 처벌받지 않는다는 점을 이용해 아파트 단지 내에서 운전 연습을 하던 입주민 B씨가 보행자에게 중상을 입히고 차량 3대를 파손시킨 사건도 있었다.

법조계에서는 단지 내 도로서 사고는 중과실 적용 대상서 제외돼있는데 이로 인해 처벌이 약해 운전자들이 경각심을 갖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교통사고 전문 변호사는 “아파트 단지 도로는 일반도로보다도 보호 필요성이 더 큰 곳이지만 도로가 아닌 곳으로 분류되다 보니 단속이나 과실에 의한 사고가 났을 때 제재 조항이 미비한 상태”라면서 “도로가 아닌 곳에서도 경찰이 단속이나 예방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아파트 단지 내 사고도 12대 중과실에 포함해 운전자들이 경각심을 갖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12대 중과실 사고도 아냐
보행자 보호 의무만 있어

공동주택 내 도로에서의 안전을 위한 법적 보완도 이뤄져 왔다. 지난 2022년 11월 개정된 교통안전법령에 따르면, 단지 내 도로 설치·관리자에게는 자동차의 안전 운전과 보행자 안전을 위해 자동차 통행 방법을 정하고 안전시설물을 설치해야 하는 의무가 부여됐다.

이에 많은 아파트들이 ▲10㎞/h 속도 준수 ▲보행자 안전거리 유지 ▲보행자 우선통행 등이 적힌 표지나 현수막을 단지 내에 게시하고 있다. 하지만 단지 내에서 그보다 빠른 속도로 달리거나 보행자와 안전거리를 유지하지 않는 상황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으며 이를 제재할 수단은 미비한 상황이다.

국회에서는 단지 내 교통사고를 줄이기 위해 실태를 정확히 파악하기 위한 법 개정을 논의 중이다. 지난해 12월29일 지방자치단체장이 아파트 등 공동주택 단지 내 도로서 발생한 사고에 대해 관할 경찰서장에게 자료를 요청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는 내용이 포함된 교통안전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단지 내에서 중상 이상의 교통사고가 발생한 경우 단지 내 도로 설치·관리자는 이 같은 사실을 지자체장에게 통보해야 할 의무가 있다. 하지만 단지 내 도로 설치·관리자가 통보한 내용만으로 정확한 사고 현황을 파악하는 데 한계가 있으므로 해당 정보를 파악하고 있는 관할경찰서장에게 자료제공을 요청할 수 있는 권한을 준 것이다.

또 개정안에는 단지 내 도로 설치‧관리자가 지자체장에게 단지내 도로 관련 실태점검 실시를 요청할 수 있는 근거조항도 마련됐다. 현재는 지자체장이 실태 조사 범위에 포함되거나 중상 이상의 사고가 단지 내 도로서 발생할 경우에 해당 공무원에게 실태점검을 실시하도록 하는 권한이 있다.


대표로 발의한 더불어민주당 민홍철 의원은 “현행법으로는 결국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식의 대처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이번 개정안이 공동주택 단지 내 도로서 발생할 수 있는 사고를 사전에 예방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무법지대?

또 국회에서는 단지 내 교통사고에 대해 운전자가 중과실을 범한 경우에 공소를 제기하고 상응하는 책임을 부여하게 하려는 법 개정도 시도 중이다. 국민의힘 이종배 의원은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교통사고처리 특례법 개정안을 발의했으나 국회에 계류 중이다.

<kcj512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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