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지난 1일, 이동관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사의를 표했다. 더불어민주당이 탄핵안을 밀어붙이자 이를 피하기 위한 결정으로 풀이된다. 닷새 후 윤석열 대통령이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자에 특수통 검사 출신인 김홍일 국민권익위원장을 지명했다. 언론장악 ‘기술자’가 가고 나니 언론 말살 ‘칼잡이’가 왔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지난 6일, 김대기 대통령 비서실장은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 위원장 인선을 발표했다. 김 실장은 김홍일 후보에 관해 “어린 시절 부모를 여읜 후에 소년가장으로 농사일을 하면서도 세 동생의 생계와 진학을 홀로 책임지고 뒤늦게 대학에 진학한 후 법조인이 되신 입지전적인 인물”이라고 소개했다.
또 검사
어려운 삶의 경험을 바탕으로 ‘공명정대’하면서도 ‘따뜻한 법조인’으로 국민을 위해 헌신할 준비가 돼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법과 원칙에 확고한 소신이 있는 만큼 방통위의 독립성과 공정성을 지켜낼 적임자라는 설명이다.
지명 배경으로 자수성가한 인생 경험과 수사업무 경력만 내세웠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방송·통신 분야의 경력이 전무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김 후보는 지난 27년간 대검찰청 마약조직범죄부장, 중앙수사부장 등을 역임했던 만큼 당초 법무부 장관 후보로 검토됐던 인물이다. 중앙수사부장을 지낼 때 당시 검사였던 윤석열 대통령의 직속상관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국민의힘 대선캠프서 정치공작 진상규명 특별위원장을 맡았으며 지난 7월부터 국민권익위원장으로 재임 중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즉각 반발했다. 윤 대통령을 필두로 한 ‘검찰판 하나회’ 선배를 방송·통신 분야의 권력자로 앉히려는 속셈이 뻔하다는 것이다. 특히 수사기관이 언론사를 대상으로 대대적인 압수수색을 벌이는 현재 시점서 검사 출신이 방통위원장으로 내정된 만큼 총선을 앞두고 또다시 ‘언론 장악’에 들어갔다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
민주당은 기자회견을 열고 “방송장악의 꿈을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선언”이라고 비판했다. 관련 경력이나 전문성이 없는 검사가 미디어 산업의 미래를 이끄는 것은 어불성설일뿐더러 방통위의 독립성을 해친다는 지적이다. 정부·여당에 유리한 미디어 환경이 조성될 우려도 제기된다.
민주당 검찰독재정치탄압대책위원회(이하 위원회)도 “정부 요직 곳곳을 검사 출신으로 채워 넣고도 도무지 성이 차질 않는 모양”이라고 소리 높였다. 위원회는 “사정 업무와 관련 없는 방통위원장 자리에 ‘친윤(친 윤석열) 검사’를 앉혔다”며 “업무 관련성이라곤 눈 씻고 찾아봐도 없는 자리들까지 국가기관을 검사 출신들이 장악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총선 앞두고 들이민 검사 인사
‘방통위’ 간판 달고 검찰 하청?
민주당이 이 전 위원장을 대상으로 탄핵안을 발의했던 만큼 김 후보 역시 강도 높은 인사청문회를 거칠 것으로 예상된다. ▲대통령과의 친분 ▲BBK 부실 수사 ▲재산 증식 등이 표적이 될 전망이다.
김 후보는 서울중앙지검 3차장 시절 이명박 전 대통령의 BBK 주가조작 사건과 도곡동 땅 차명 보유 의혹 수사를 담당했던 바 있다. 당시 김 후보는 대선을 2주 앞두고 BBK 사건 관련 “증거가 없다”면서 무혐의 처리했다. 이 전 대통령 취임 두 달 후 김 후보가 훈장을 받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BBK 면죄부 수사에 따른 보상을 받은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김 후보는 ‘부산저축은행 사건 무마’ 의혹도 받는다. 그는 2011년 대검 중수부장으로 재직할 때 대장동 의혹과 관련된 부산저축은행 비리 수사를 지휘했다. 당시 수사팀 실무를 지휘한 주임검사는 중수2과장이었던 윤 대통령이었다.
<뉴스타파> 보도에 따르면 대장동 사건의 피의자 중 한 명인 남욱 변호사는 검찰 조사에서 “김만배가 당시 중수부장이던 김홍일 검사장에게 ‘조우형이 사건에 협조할 테니 잘 좀 봐달라는 취지로 부탁을 했다’고 한다”고 진술했다.
이와 관련해 위원회는 “김 후보는 검찰서 퇴직한 이후인 2015년 수사를 받던 조우형을 ‘몰래 변호’한 의혹을 받고 있다”고 꼬집었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이하 과방위) 소속 민주당 의원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국민권익위원장 자리를 내려놓지 않은 상태서 지명된 것 역시 지적할만한 부분”이라고 밝혔다. 이어 “김 후보는 권익위원장 시절에도 무리하게 언론 관계자들을 조사했던 사람”이라며 “방송문화진흥회나 KBS 이사장을 날린 것도 김홍일”이라고 강조했다.
언론사 압수수색 시 수사기관이 얻을 수 있는 정보와 방통위가 확인할 수 있는 정보에 차이가 있는 만큼 검찰의 ‘캐비넷’으로 전락할 우려도 제기된다.
BBK 부실 수사부터 재산 증식까지
연말 국회에 떨어진 폭탄 처리는?
민주당 의원은 “역대 어느 정부서도 언론인과 대표를 압수수색하고 강제수사했던 역사는 없었다”며 “김 후보가 (윤석열정부와)똑같은 생각인지는 인사청문회를 통해 밝혀낼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자산 증식 의혹 역시 인사청문회의 뇌관이 될 전망이다. 김 후보의 재산은 검찰 퇴직 후 10년 만에 5배 불어난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 김두관 의원실에 따르면 김 후보가 지명된 이후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에 신고한 재산은 총 61억5158만원이다. 부산고검장를 지내던 2013년 관보에 신고한 재산 12억153만원보다 49억원 늘어났다. 이에 민주당은 “각 기업과 대형로펌으로부터 발생한 부적절한 전관예우에 따른 재산 증식인지 따져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후보는 관련한 모든 의혹에 성실히 해명하겠다는 입장이다. 앞서 민주당 과방위원들은 김 후보가 국민권익위원장직을 유지하고 있는 것을 두고 “양손에 떡 쥐고 국민을 기만하는 행태”라고 비판했다.
이에 김 후보는 지난 13일 정부과천청사 인근에 마련된 청문준비단 사무실에 출근하면서 “오늘 (권익위에)휴가를 냈다”며 “적절한 시기에 정리하겠다”고 답했다.
‘직무 적합성을 비롯해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에 관해서는 “그런 우려를 잘 듣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동안 법조계와 공직을 거치면서 쌓아온 법률 지식이나 규제와 관련된 여러 경험들을 토대로 맡겨진 직분을 성실하게 수행하겠다”며 “그런 우려를 불식시키도록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을 향해 협조를 요구했다. 방통위원장의 자리를 무한정 공석으로 둬서는 안 되는 만큼 이른 시일 내에 자리를 채워야 한다는 주장이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의회 폭거로 국회의 시계가 멈췄고, 방송통신위원장 사퇴까지 초래됐다”며 “공영방송 정상화를 위해 이번만큼은 민주당의 대승적 협조를 당부한다”고 말했다.
검증의 날
어느 때보다도 격렬한 인사청문회가 예상된다. 김 후보가 임명된다면 ‘검사 인사’ ‘언론장악’ 등 내년 총선까지 정부·여당을 겨냥한 공격 소재로 활용될 가능성도 있다.
한 민주당 의원은 “아직 간사 간 합의가 이뤄지지 않아 인사청문회 시점을 특정하기는 어렵다”면서도 “인사청문회를 통해 밝힐 점이 한둘이 아니다. 이동관 전 위원장 때보다 더 힘든 싸움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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