꺼지지 않는 ‘ELS 불판’ 논란

2023.12.22 08:25:15 호수 1458호

“국민 상대로 앵벌이 꼴”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일반투자자에게 파생상품 판매를 금지한 국가도 있다. 마트서 총을 판 격.” 최근 5대 시중은행의 홍콩항생중국기업지수(H지수) 연계 ELS(파생결합증권) 불완전판매 의혹에 관해 홍콩 증권사 출신 관계자가 한 말이다. 실제로 지난 2008년 노르웨이 금융당국은 파생상품 등 복잡한 구조의 상품을 일반투자자에게 팔 수 없도록 하는 규정을 채택했다.



홍콩 H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한 ELS서 내년 상반기에만 3조원가량의 손실 가능성이 제기됐다. ELS는 기초자산 가격이 만기 때까지 계약시점을 기준으로 일정 범위서 움직이면 약속한 수익을 주는 파생상품이다. ELS의 만기는 통상 3년으로, 2021년 저금리 당시 은행예금보다 연 2%가량 높은 수익률을 보장하는 안정적인 상품으로 통했다. 

알고도…

반대로 정해진 기준을 벗어나면 원금손실이 발생한다는 함정이 존재한다. 2021년 상반기 1만2000선을 넘었던 H지수는 지난 1일 기준 5761.73까지 떨어진 상태다. ELS는 기초자산으로 삼은 지수 등에 연계돼 투자수익이 결정된다. H지수는 지난 2021년 2월 1만2000선을 넘어섰으나 그해 말 8000대까지 떨어졌다. 현재 6000대서 횡보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말에는 5000대가 무너지기도 했다. 

최근 중국 경기 둔화와 미·중 분쟁 등의 영향으로 2년 전과 비교해 절반 아래로 급락했다. 만기 도래를 코앞에 두고 손실이 가시화되자, 투자자들은 원금손실 가능성 등을 제대로 설명받지 못했다며 민원을 제기했다.

투자자들은 “홍콩이 망하지 않는 한 수익이 보장되는 상품”이라는 긍정적인 설명만 들었다고 주장한다. 강형구 금융소비자연맹 부회장은 언론을 통해 “예금만큼 안전하다고 해서 노후자금을 ELS에 넣었는데, 현재 상품 평가액이 원금의 절반에 불과하다는 통보를 받고 망연자실한 투자자들의 민원이 빗발치고 있다”고 대변했다.


불완전판매 가능성이 언급되자 금융당국은 전수조사에 나섰다. 금융감독원은 지난달 20일부터 지난 8일까지 최대 판매기관인 KB국민은행을 포함한 시중 5대은행(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을 조사했다. 

금감원에 따르면 H지수 연계 ELS 관련 상품 전체 판매액 중 거의 절반이 60대 이상 고령층에게 판매된 것으로 드러났다. 이 중엔 90대 이상 초고령자에게 판매된 91억원도 섞여 있다. “고령층에 H지수 연계 ELS 관련 상품을 판매하면서 초고위험 투자상품임을 100% 설명하지 않았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판매 잔액은 수십조에 달했다. 지난 13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오기형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금감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5대 은행의 H지수 연계 ELS 판매 잔액은 11월 말 기준 13조5790억원이다. 이 중 60대 이상 고객에게 판매된 것이 6조4541억원으로 47.5%를 차지했다.

금소법 만들면 뭐해? 
탓하기 바쁜 금융권

60대(60~69세) 고객은 전체 연령대 중 홍콩H지수 연계 ELS를 가장 많이 보유(32.1%)하고 있었다. 그 다음이 50대(30.8%), 40대(14.1%), 70대(13.8%), 30대(4.8%) 순이었다.

이 중 고령층인 80대(80~89세)는 2083억8000만원, 90대 이상은 90억8000만원, 도합 2174억6000만원인 것으로 집계됐다. 80대 이상 고령층에게 H지수 연계 파생상품을 가장 많이 판매한 곳은 하나은행(817억9000만원)이었다. 이어 ▲농협은행 645억4000만원 ▲국민은행 385억4000만원 ▲신한은행 316억원 ▲우리은행 16억2000만원 순으로 이어졌다.

90대 이상 초고령자에 대해서는 하나은행이 74억1000만원 규모로 가장 많이 팔았다. 이어 ▲NH농협은행(9억3000만원) ▲KB국민은행(6억6000만원) ▲신한은행(8000만원) 순이었다. 우리은행은 90대 이상 고객에게 해당 상품을 판매하지 않았다. 

은행들은 ELS를 사모·공모를 통해 펀드(ELF)와 신탁(ELT) 형태로 판매해왔다. ELT는 H지수를 포함 ‘닛케이 225’ ‘S&P500’ ‘유로스톡스50’ 등 각국 대표 지수 3개 정도를 연계한 상품이다. 

일각에서는 예견된 사태였다는 분석도 나온다. H지수 연계 ELS가 2021년 초에 판매됐다는 걸 감안할 때 금감원은 이번 사태를 예방할 수도 있었다. 실제로 지난 2018년 금감원은 ‘ELS 등 파생결합증권 투자현황 및 보호방안’이라는 자료를 발표하면서 예방책을 논의했다. 

자료에 따르면 당시 개인투자자들은 ELS를 포함한 파생결합증권에 47조원가량을 투자했다. 이 중 42%가 60대 이상 고령층인 것으로 분석됐다. 해당 자료는 결론을 통해 “은행 창구 직원의 적극적인 투자권유로 발생할 소지가 높은 불완전판매를 사전에 예방할 필요가 있다”고 경고했다.


금감원이 ELS 불완전판매 행태를 사전에 인지하고 있었다는 정황도 있다. 금감원 조사원이 고객으로 가장해 금융회사의 상품 판매절차를 평가하는 ‘미스터리쇼핑’을 통해 분석한 것으로 드러났다.

금감원은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3월까지 시중 5대 은행을 포함한 7개 은행을 대상으로 판매 현장을 점검했다. 외부 전문업체의 조사원이 영업점을 방문·점검해 상품 판매 과정서 ▲적합성 원칙 ▲설명의무 ▲녹취의무 ▲숙려제도 ▲고령투자자 보호 등 준수 여부를 평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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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과정서 우수-양호-보통-미흡-저조 등 5단계로 등급을 부여한다. 이 과정서 우수-양호-보통-미흡-저조 등 5단계로 등급을 부여한다. 현장 점검한 결과, NH농협, 우리은행 등 일부 은행만이 80점대를 받으며 ‘양호’ 등급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앞서 정부는 고위험 상품에 대한 불완전판매 등 관리·감독 문제가 제기되자 투자자보호 제도를 대대적으로 정비해왔다. 그 결과 2021년 3월 금융소비자보호법(금소법)이 시행됐다. 금소법은 금융투자상품 판매 시 ▲설명의무 ▲적합·적정성 ▲부당권유행위 금지 ▲허위·과장광고 금지 등을 의무 규정으로 명시하고 있다.

금소법 시행에도 불완전판매 의혹은 꺼지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금소법이 실질적인 투자자 보호와 금융권의 판매 관행 개선에는 미흡한 부분이 많다고 지적했다.

금감원에 따르면, 최근 5년간 펀드·신탁, 보험 등의 불완전판매 금액만도 6조원에 달한다. 특히 2018년부터 지난 8월까지 은행권의 불완전판매 금액은 3조6270억원으로 피해자는 1만9692명에 이른다. 사모펀드 불완전판매와 설명의무위반 등이 주된 제재 사례로 꼽혔다.

은행의 고위험 파생상품 판매 금지 등의 규제도 언급됐다. 지난 2019년 라임·옵티머스 사태 이후 당국은 시중은행의 고위험 투자상품 판매를 금지하는 대책을 마련했지만 “40조원 이상 규모의 신탁 시장을 잃게 된다”는 은행 측의 반발에 따라 제한적 판매를 허용했다.

H지수의 위험성을 예의주시해온 한 금융전문가는 이번 사태에 관해 다소 충격적이라는 입장이다.


홍콩의 종합금융사 캐시파이낸셜서비스그룹 파생상품 운용역을 맡았던 조용래씨는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서 “국제적인 시각서 은행이 파생상품을 일반투자자에게 무분별하게 판매한 것은 앵벌이나 다름없는 행위”라며 “유럽에선 이미 복잡한 구조화 상품의 위험성을 경험하고 일반투자자에게 판매를 금지한 경우도 있다. 방관한 정부의 책임이 은행보다 크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예견된 사태

실제로 노르웨이 금융당국은 전문투자자가 아닌 투자자에게 복잡한 구조화 상품을 팔 수 없도록 하는 규정을 2008년 채택했다. 벨기에도 2011년 지나치게 복잡한 구조화상품을 개인투자자에게 판매하는 것을 중지시켰다. 이는 노르웨이가 1990년대 후반부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까지 15만명가량의 일반투자자가 70억달러 이상의 구조화 상품에 투자해 손실을 입은 사건을 겪으면서 도입됐다.

<smk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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