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칼로 벤 듯한 고통 속에 살아가는 복합부위통증증후군(CRPS) 환자들의 일상생활이 가능하다고 볼 수 있을까? 보건복지부가 장애로 인정했으나, CRPS 환자들은 끊임없는 재판정을 통해 ‘꾀병’이 아님을 증명해야 한다. 의료용 마약 진통제로 버티며 생사를 오가는 이들은 ‘마약 중독자’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 목소리를 내고 있다.
CRPS는 외상을 입거나 수술을 마친 후 비정상적으로 극심한 통증이 나타나는 질환이다. 신경 경로가 정상서 일탈해 통증이 과도하고 불규칙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드물게는 염좌, 베임 등 비교적 가벼운 손상에도 발생할 수 있다. 만성적인 통증질환으로 진행되는 발병기전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아 치료에 어려움이 따른다.
3명 중 2명
일상이 고통
통증은 환자마다 조금씩 다르게 느낀다. 절단한 신체가 있는 것 같다거나, 감전된 듯 찌릿하다고 표현한다. 어떤 환자는 땀이 과도하게 나고, 감각이 예민해져서 사회·경제적 활동에 지장을 받는다. 미세한 바람에도 심한 통증을 호소한다. 외관상 피부의 색이나 질감이 변하는 등 근육과 관절의 경직도가 증가하는 양상을 보이기도 한다.
CRPS 치료를 위해서는 마약성 진통제와 향정신성 약물을 활용한 약물치료, 신경치료, 척수 자극기 수술법, 기능 회복을 위한 재활치료가 있다.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할 만큼 고통스러운 이들은 펜타닐 패치를 처방받기도 한다. 다만, 용량에 따라 식약처서 문제가 제기된다. 펜타닐은 말기 암 환자 등 극심한 통증에 시달리는 환자에게만 제한적으로 사용되는 강력한 마약성 진통제다.
1인 치사량은 0.002g으로, 2021년 미국서만 7만명 넘는 사람이 펜타닐 중독으로 숨진 것으로 조사됐다.
몸에 붙이는 패치 형태로 제작된 펜타닐 패치는 다른 마약류와 달리 의사 처방에 따라 합법적 구매가 가능하고 몸에 붙이기만 해도 빠른 속도로 약효가 나타난다.
보통 비 암성 통증(만성 통증)일 때 건강보험서 허용하는 펜타닐 패치의 최대 용량이 37.5 mcg/h다. CRPS 환자는 이를 준수하기 위해 2장의 펜타닐 패치(12.5mcg/h 1장과 25mcg/h 1장)를 처방받을 수밖에 없다. 다만, 식약처는 이에 대해 지적하고 있다.
주로 펜타닐 패치 처방은 3일에 1장이기에 CRPS 환자가 과량 처방받고 있다고 해석한다.
또, 신경치료는 건강보험 횟수 제한으로 충분한 치료가 어렵다. 특히, 보건복지부 기준 CRPS가 ‘심하지 않은 장애’로 분류되는 점도 문제다. 이에 따라 CRPS 재활치료는 건강보험서 인정받지 못해 회당 5만~15만원을 지불해야 한다.
이용우 CRPS 환우회 회장은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서 장애 인정 관련 문제점을 언급했다. 이 회장은 “CRPS 환자를 심하지 않은 장애로 인정하는 점과 2년마다 재심사, 진단 후 2년 이상의 진료기록을 요구하는 점에서 (다른 질환과 비교해)형평성에 맞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이어 “장애 등록도 지체장애를 잣대로 보기 때문에 통증만 겪는 환자는 장애 진단서 배제된다”며 “CRPS 환자는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통증이 심한 데도 장애 진단을 받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극심한 고통에 못 이겨 자살을 시도하기도 한다. CRPS 환자 10명 중 8명은 자살 충동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상 어려운데 재활치료비도 본인이?
‘중독자 오명’ 오남용 제도 개선 시급
매년 국내서 1000명 이상의 환자가 새로 발생하는 것을 고려했을 때 시급한 지원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2019년 7월~8월까지 전국 37개 수련병원서 치료받고 있는 CRPS 환자 251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주부, 학생 등을 제외한 응답자 75% 이상이 발병 전 사회·경제적 활동을 했지만, 발병 이후에는 3분의 2가 경제활동을 하지 못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그 원인으로는 통증점수(10점 기준) 7점 이상의 극심한 통증과 이로 인한 수면장애 및 신경정신과적인 문제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발병 이후 시간이 지날수록 통증 부위가 확대됐다’는 응답이 다수를 차지했다.
CRPS 환자들의 고통과 불편은 일반인들이 짐작하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응답자 80%가 ‘자살 충동을 느꼈던 경험이 있다’고 대답했으며, ‘가벼운 일상활동서도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한 상태’라고 응답한 비율도 절반을 넘었다. 또 응답자 전체의 평균 수면 시간은 4.9시간에 불과했다.
특히 응답자 중 45%는 하루에 고작 4시간도 수면을 취하지 못했다.
CRPS는 희귀난치성 질환으로 약물치료, 신경치료, 약물펌프 수술법, 재활치료 등으로 치료를 진행하지만 정확한 기전은 밝혀지지 않았다. 이런 상황서 이미 만성이 된 CRPS 환자들은 재활치료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CRPS 전문 재활클리닉은 국내 분당서울대병원이 유일하다. 분당서울대병원 재활의학과 임재영 교수는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서 “CRPS 재활치료는 1대1로 환자와 치료사가 치료를 30분 이상을 해야 한다”며 “의료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라 하루에 최대 15만원까지 환자가 부담해야하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그는 “CRPS 환자를 대상으로 재활치료를 할 수 있는 병원은 한정돼있고 병원 입장서도 건강보험 규정상 환자에게 할 수 있는 치료는 한정돼있다”며 “이마저도 거절하는 병원이 많다. 극심한 고통을 호소하는 CRPS 환자를 적극적으로 도울 수 있는 병원이 많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아주대병원 마취통증의학과 최종범 교수도 “CRPS로 재활치료를 처방하고 치료 보장을 받는 것은 쉽지 않다”며 CRPS 재활치료에 대한 제도적인 지원체계의 부재를 지적했다.
10명 중 8명
“자살 생각”
CRPS 환자들은 건강보험 처리에 어려움을 겪는 모양새다. CRPS 환자의 경우 마약성 진통제의 양이 한정돼있고 이를 넘어가면 전부 본인이 부담하게 된다는 것이다. 건강보험이 안 될 경우,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된다. 고통이 심해도 경제적 어려움이 발생해 보험이 되는 약으로만 버티지만, 한계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최 교수는 CRPS 치료를 위한 신경치료의 건강보험 횟수 제한 등 유연하지 못한 보험 제도를 지적했다.
그는 “건강보험 급여 항목인 신경차단술이나 마약진통제 같은 경우 암 환자는 무한정 보험이 적용되지만 CRPS 환자는 용량·횟수 제한이 있다”며 “전혀 다른 중증도와 질환임에도 횟수 제한을 똑같이 규제하는 것은 문제”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CRPS 환자가 펜타닐 패치를 오남용한다는 왜곡된 시선도 있다. 문제는 CRPS 환자들이 건강상 문제가 없는 마약 투약범으로 치부될 수 있다는 것이다. CRPS 환자는 갑자기 찾아오는 돌발통 때문에 마약성 진통제를 소지하고 다니면서 일상생활을 하는 경우가 많다.
약이 없으면 언제 통증이 찾아올 지 모르는 불안감에 일상생활은 마비가 된다. 겪어보지 않은 사람에겐 쉽게 와 닿지 않는 경우다. 일부 CRPS 환자는 펜타닐 패치 오남용 이슈로 인해 기존에 처방받던 용량만큼도 못 받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마약성 진통제를 기준치 이상 복용해야 하는 CRPS 환자들은 “마약 중독자”라는 싸늘한 시선을 받기도 한다. 정부와 경찰의 마약 단속에 발맞춰 의료계가 마약 근절과 인식 개선을 위해 노력해야 할 때가 왔다.
지난 8월2일, 서울 압구정역 앞에서 롤스로이스 차량으로 행인을 들이받은 이른바 ‘롤스로이스’ 사건은 향정신성의약품(향정약) 오남용 사례를 전적으로 보여준다. 가해자 신모씨가 인근 성형외과서 미다졸람·디아제팜 등 향정신성의약품(향정약)을 투약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지난 9월11일에는 무면허 상태로 주차하다 시민을 흉기로 위협한 ‘람보르기니’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의 가해자 홍씨도 필로폰·엑스터시·케타민 등의 양성 반응을 보였다. 사건 직전 그는 서울 논현동 피부과를 방문한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은 롤스로이스 사건 가해자와 연루된 병원 10곳 이상을 압수수색했다. 조사 결과 사건 당일 신씨에게 마약류를 처방한 A 의원에서는 수상한 정황이 포착됐다.
식품의약품안전처 의료용 마약류 안전 사용 기준에 따르면 간단한 시술 및 진단을 위한 프로포폴 투약 횟수는 월 1회를 초과하지 않아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다. 그러나 A 의원에서 지난 2년 새 향정신성의약품 처방이 2배 급증했다. 2020년 790명이었던 이곳의 향정약 처방 환자가 지난해 1593명으로 2배 증가했다.
해당 병원서 연도별 향정신성의약품을 가장 많이 처방받은 상위 20명을 분석한 결과, 한 명은 지난해 13건에 걸쳐 총 47개 프로포폴을 처방받았다. 최근 5년간 사망자 명의로 처방된 마약류는 4만여개에 달한다. 이른바 ‘유령 처방’이 의료기관서 횡행하고 있는 것이다.
마약 범죄
오해 대상
국민의힘 최영희 의원이 식약처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사망자 명의 의료용 마약 처방량은 3만8778개였다.
최근에는 의사들이 직접 허위로 수술한 것처럼 꾸민 뒤 프로포폴을 대량으로 빼돌려 유통한 혐의로 경찰 수사선상에 올랐다. 이에 대한의사협회는 해당 회원들을 중앙윤리위원회에 징계 심의를 부의, 대검찰청에 고발장을 제출했다.
이에 따라 프로포폴·펜타닐·졸피뎀 등 의료용 마약류 유통망에 구멍이 뚫렸다는 지적이 연일 제기되고 있다. 수면제 및 진통제 처방이라는 명목하에 오남용 사례는 매년 증가하고 있다. 환자들의 오남용을 1차적으로 잡아낼 수 있는 것은 의료진이지만 한계가 존재한다.
환자의 개인정보인 의료기록을 들여다보기 어렵기에 마약성 진통제를 얼마나 사용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병원 내 ‘약물 쇼핑’을 감시할 법적 제도가 미비해 정부 차원의 대응이 시급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관계부처가 제시하는 의약품안전사용서비스 혹은 DUR(Drug Utilization Review) 제도의 도입도 거론되고 있다. DUR은 의약품 처방·조제 시 의약품 안전성 관련 정보를 실시간으로 제공해 부적절한 약물 사용을 사전에 점검할 수 있도록 의사 및 약사에게 의약품 안전정보를 제공하는 제도다.
강력한 예방책으로 제시됐으나, 실효성의 한계는 존재한다. 과거에 오남용 이력이 있는 환자를 판별하기 때문에 ‘병원 뺑뺑이’를 처음 시도하는 환자는 걸러낼 방법이 없다.
이에 따라 마약류 진통제가 꼭 필요한 CRPS 환자들은 고스란히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마약성 진통제 처방 행위가 자칫 범죄 행위로 간주되면 CRPS 환자조차 의료인이 처방을 꺼릴 수 있다. 마약성 진통제 등이 꼭 필요한 환자가 쓰지 못하는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 회장은 DUR 제도를 보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마약성 진통제 처방 시, 환자에게 설명 및 동의서를 의무화하고, 정기적인 혈중 마약농도 검사를 통해 부적절한 환자를 배제하고,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을 통한 마약성 진통제 사용 적정성 평가를 구체적으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불평등한 제도로 인한 피해자는 실제로 존재했다. 한 CRPS 환자는 “통증으로 주사를 맞고 싶어도 횟수 제한 때문에 참는 경우가 많다”고 토로했다.
희귀난치성질환인 CRPS는 산재 승인 과정도 쉽지 않다.
눈에 보이지 않는 증상
“안 겪어본 사람은 몰라”
서울근로복지공단 관계자는 “최초 접수 후 산재 범위에 들어오면 그 다음부터 요양 기간을 연장할 시 진료계획서를 제출해야 한다”며 “공단에선 의학 전문가에게 자문해야 하고 의무기록을 모아야 하므로 기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과정서 신경외과나 정형외과는 빠른 자문이 가능하지만, 정신건강의학과, 마취통증의학과 등의 경우 온라인 자문이 없어 시간이 소요된다.
눈에 띄지 않는 증상으로 인해 환자가 직접 검사를 받으러 가야만 하는 번거로움도 있다. 스치기만 해도 아픈 CRPS 환자가 산재 승인 과정에 필요한 의사 면담을 위해 직접 옷을 벗고 확인받아야 하는 것이다.
지난 2021년 4월 장애인정을 비롯한 꾸준한 개선이 있었지만, 여전히 장애인정 기준과 대상, 잦은 재판정 등으로 환자의 불편이 따른다는 지적이다.
CRPS 환우회와 대한통증학회 전문가들은 “CRPS에 대한 재판정 빈도에 있어 1회 재평가 후 재진단하지 않는 통상적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며 “진단 후 2년 이상의 진료기록의 요구는 미국 AMA서 규정한 ‘1년 이상’의 기준에 준해 1년으로 수정됐으면 한다”는 입장이다.
장애 인정 문턱도 높다. CRPS 진단 후 2년 이상 지속 치료에도 골스캔 검사, 단순 방사선 검사, CT 검사 등 결과 근위축, 관절구축이 뚜렷한 경우 혹은 팔 또는 다리 전체에 마비가 있는 경우에 한정된다. 이 중에서 근위축 등 가동성 감소는 CRPS로 인한 필연적 증상이 아니다.
환자의 상당수는 통증 자체만을 갖고 있는데, 이로 인해 사회적 활동 자체가 어려운 수준의 고통을 겪고 있다. 객관화, 시각화할 수 있는 기준이 매우 제한적이라는 것이다. 향후 상당수 CRPS 환자들이 통증만 가졌다는 이유로 장애 인정 대상서 원천 배제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지난 4월11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서 열린 환자 중심 CRPS 정책 개발과 시행을 위한 정책토론회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아주대학교 마취통증의학과 최종범 교수는 “CRPS 환자의 장애 인정 기준의 경우 정형외과, 재활의학과, 외상 수술 등과 관련된 지체장애에 해당하는 환자만 장애 대상으로 포함된다는 점이 모순적인 부분”이라며 “CRPS 환자에 맞는 통증 장애진단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어렵게 장애 판정을 받은 CRPS 환자들이 잦은 재판정 등으로 불편이 크며 실제 혜택 대상서 제외되는 등의 위험에 처해 있다”며 ”현재 복지부 지침에 따라 2년마다 다시 판정하도록 하는 동시에 2년 이상의 진료기록을 요구하는 부분은 앞으로 개선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뽕쟁이 아냐?
범죄자 취급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 장애인정책국 최경일 과장은 “장애 진단 후 재판정 기간을 현행 2년서 3년 혹은 4년으로 연장하는 것과 최근 2년 간의 진료기록 제출 기한을 단축할 수 있도록 완화하는 부분은 검토해볼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장애정책이 빠르게 바뀔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 만큼 많은 토론이 있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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