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옥지훈 기자 = 나라 곳간이 빚더미에 가득하다는데 교육청 현실은 달랐다. 학령인구가 급격히 감소하고 있는 가운데 교육현장과는 달리 지방교육재정교부금(교부금)은 쌓여가고 있다. 세금 증가에 따른 내국세의 20.79%가 수요와 무관하게 교부금으로 자동 배정된다. 지방교육청 예산은 기금을 통해 쌓여가고 있지만, 현행법 조항상 중앙정부는 지방교육청에 매년 교육예산을 보내야 한다. 일부 지역에선 교육감이 재선을 노리면서 ‘4차 산업혁명 시대’를 필두로 한 포퓰리즘 정책을 남발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업이 ‘그린스마트 미래학교’다.
전국 17개 시·도 교육청이 예산을 집행할 사용처를 찾지 못해 적립한 기금 규모만 지난해 말 기준 21조원이 훌쩍 넘는다. 지난해 5조4041억원 대비 4배로 증가한 규모다. 교육청은 매년 내국세 20.79%를 교부금으로 받는다. 올해 책정한 교부금은 80조1134억원이다.
문재인정부의 뉴딜 사업 핵심 중 하나인 그린스마트 미래학교 사업은 최근 5년간 20조3000억원이 투입됐다. 그러나 지난해에도 사업 운영비의 예산 집행률이 절반도 되지 않아 예산을 과다 집행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일었다. 교부금 기금이 큰 폭으로 상승한 것에는 그린스마트 사업이 한몫했다는 평가다.
선심성 정책
전국 시·도 교육청서 지방교육제정을 방만하게 사용한 정황이 드러났다. 기금 규모가 커진 만큼 여유가 생긴 교육청이 선심성 정책을 펼치는 모양새다. 국무조정실 정부합동 부패예방추진단이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5월까지 교육부와 지방교육재정 운영 실태를 점검한 결과 총 97건에 달하는 위법 사례가 발생했다.
액수는 282억원 규모로 밝혀졌다.
그린스마트 미래학교 전환사업 운영비 예산 중 목적과 전혀 다른 지출이 발생해 논란이 일었다. 전국 노후 학교 건물을 개·보수한다는 기존 목적과는 다르게 서울과 충남의 한 중학교서 뮤지컬 관람비로 각각 700만원, 400만원을 지출했다. 경기도 소재의 한 고등학교 교직원은 바리스타 취득 연수를 위해 220만원을 집행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인천 한 고교에선 야식으로 치킨 21만원어치를 시켜 먹었고, 경남의 한 고교에선 음파전동칫솔 구입비로 290만원을 썼다. 목적성이 다른 지출을 포함하면 총3억7000만원이 지출됐다.
교부금으로 운영되는 남북교육협력기금은 북한에 물품들을 제공하는 과정서 증빙자료가 불충분한 상태로 사업이 종료됐다. 기금이 설치된 8개의 교육청은 최근 3년간 기금 122억원을 적립하고 44억원만 집행해 36.4%에 달했다. 모 교육청은 대북 인도적 지원 물품 반출에 용역계약을 체결할 당시 특정단체와 반복적으로 1인 수의계약을 체결한 정황이 드러났다.
서울시교육청은 2021년 287억원의 예산을 들여 서울 지역 중학교 1학년 교실에 전자칠판을 설치했다. 그러나 전자칠판 설치를 두고 예산 낭비라는 지적이 나왔다. 새로 개교한 학교나 시설을 교체한 지 얼마 안 된 학교에도 예산을 집행한 데다, 전자칠판이 아니더라도 기존 빔프로젝트와 컴퓨터를 이용한 디지털 자료를 수업에 활용할 수 있었던 탓이다.
예산 넘치는데 사용처가 없어서?
건물 개·보수하랬더니 웬 뮤지컬?
논란이 커지자 서울시의회는 지난해 말 서울교육청 예산 심의서 전자칠판 예산을 전액 삭감했다.
경북도교육청은 그린스마트 미래학교 사업 추진과 관련해 중복투자 문제가 심해 예산 낭비 지적을 받았다. 기존 노후 학교시설을 리모델링, 소방시설 개선, 냉난방시설 개선, 석면 해체 등을 신청해 공사를 진행한 후 개축 대상에 선정되면 완전히 철거하는 경우가 발생했다.
경북 울릉군 소재 모 학교는 최근 5년간 7건의 개선 공사로 약 9억3000만원을 들여놓고 곧 철거를 앞둔 상황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해당 도교육청 관계자는 “석면 해체공사의 경우 철거가 결정되더라도 똑같은 비용이 들기 때문에 중복이 아니지만 시설 개선 후 그린스마트스쿨 사업 선정 시 일어난 개축의 문제점을 인정한다”며 “대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민간단체 보조금에 이어 교부금에도 전 정부 시절 예산 관리·감독 문제를 향한 공세를 이어갔다. 그린스마트 미래학교 사업의 경우 집행 세부지침을 정비하고 사업 이행계획서를 의무적으로 제출하는 근거가 마련될 예정이다.
국무조정실 관계자는 점검 결과에 대해 “예산의 편법적 사용과 낭비적 집행사례가 다수 발견돼 제도개선 방안을 적극 이행하고 점검해나갈 것”이라며 “관련 부처와 함께 관리·감독도 강화해나가겠다”고 밝혔다. 이어 위법한 사례에 대해선 수사 의뢰를 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방교육재정교부금 합동 점검에도 대규모 위법, 부당사례가 적발됐다”며 “학령인구는 줄어드는데 세수는 증가해 교부금이 증가한 사례서도 보조금과 관련한 남발 검증과 관리가 이뤄지지 않아 부정과 비리의 토양이 됐다”고 말했다.
돈 넘치나? 개정 시급한데...
총선 앞두고 몸 사리는 정부
그러면서 “혈세가 포퓰리즘의 먹잇감이 되고 지난 정부서만 400조원의 국가채무가 쌓였는데 이는 납세자에 대한 사기이자 미래세대에 대한 착취”라고 지적했다.
윤석열정부는 유아교육·보육 관리체계 통합(유보통합)을 국정과제로 삼고 2025년 시행을 목표로 삼았다. 이에 정부는 초·중·고 교육에만 배정된 교부금을 대학에 이어 어린이집에도 지원하려고 하자 교육감들이 일제히 반대하고 나섰다. 어린이집은 보건복지부 소관인 데다, 필요한 재원은 별도의 재원 확보 계획을 수립해 나서야 된다는 것이다.
윤정부는 출범 당시에도 교부금을 개편하겠다며 의지를 피력했던 바 있다. 초·중·고 교육비로만 사용할 수 있는 교부금을 대학과 평생교육으로 확대하겠다는 것이었다. 정부는 지난해 7월 재정전략회의서 교부금의 일부인 3조6000억원을 고등·평생교육 지원특별회계를 신설하겠다고 했지만, 국회 심의 과정서 1조5000억원으로 삭감됐다.
교육감들은 이마저도 반발하고 나섰다. 교육감협의회장인 조희연 서울교육감은 “지난해 이미 예산 1조5000억원을 대학생 형과 언니들에게 양보했던 초·중등 학생들에게 이번에는 동생한테까지 양보하라는 건 가혹하다”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은 내국세를 떼어 교육청에 지급하도록 의무화한 교부금법 개정이 시급하다고 지적했지만, 이번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선 논의되지 않았다. 이번 회의서 국가재정의 방향성을 담은 ‘재정비전 2050’ 발표는 관계 부처와 이해관계자의 의견수렴이 필요하다며 시기를 미뤘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지방교부세와 지방교육재정교부금 등 지방교부금 제도를 손질하는 방안도 있었지만 거센 반발을 우려해 최근 삭제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정치권 눈치만
재정전략회의는 내년 예산안과 향후 5년간 재정운용 방향을 설정하는 회의체다. 올해 변수는 대규모 ‘세수 펑크’로 인한 내년도 지출 증가율 방향성 설정이다. 총선 악재 우려 속에서도 윤정부 출범 당시 강조한 건전재정 기조를 유지하겠다고 밝혔으며 교부금 개정 논의는 미뤄졌다.
지출 감소는 복지 축소와 그린스마트 사업과 같은 인프라 사업 지연으로 이어질 수 있어 내년 22대 총선서 복지 선거전략 등 힘을 받아야 할 여당 의원들의 우려가 나온다. 일각에선 총선을 앞둔 정치권이 교육계의 반발을 핑계로 묵묵부답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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