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 바뀐’ 재계 지도 막전막후

2023.05.04 13:50:29 호수 1425호

못 보던 기업이 순위권에 포진

[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매년 이맘때면 재계의 시선은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하는 대기업 명단에 쏠린다. 기업의 외형을 가늠하는 수단이자 재계 서열을 구분 짓는 잣대라는 점에서 공정위의 발표에는 관심요소가 다분하다. 또 재계 서열에서 균열의 조짐이 커질수록 관심은 증폭된다. 건실한 성장과 확연한 뒷걸음질 사이에는 온도 차가 명확하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매년 5월1일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및 공시대상기업집단’을 발표해왔다. 1987년 재벌에 의한 시장경쟁 저해를 막는다는 취지로 도입된 것으로, 초창기에는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이라는 이름으로 자산총액 4000억원을 기준으로 삼았다. 이후 자산총액 기준은 2002년 2조원, 2009년 5조원으로 상향 조정됐다. 

뒤바뀐
서열

대기업집단을 구분 짓는 기준은 문재인정부 출범 직후 또 한 번 바뀌었다. 2017년 7월 자산 5조원 이상인 공시대상기업집단의 지정을 위한 세부기준이 담긴 ‘공정거래법 시행령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한 데 따른 것이었다. 

개정안에 따라 자산총액 5조원 이상 기업집단은 ‘공시대상기업집단(자산총액 5조원 이상)’과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자산총액 10조원 이상)’으로 나뉘었다. 공시대상기업집단은 공시의무와 특수관계인에 대한 부당한 이익 제공 금지를 적용받았다.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은 공시대상기업집단의 적용사항 이외에 추가적으로 상호·순환출자금지, 채무 보증금지, 금융·보험사 의결권 제한 등이 적용된다.


공시대상기업집단에 포함되는 기업집단의 수는 최근 들어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2020년 64개였던 공시대상기업집단은 이듬해 71곳으로 늘었고, 지난해에는 76개가 해당 명단에 포함됐다.

올해 역시 비슷한 흐름이 목격됐다. 공정위가 발표한 ‘2023년 공시대상기업집단 지정 현황’에 따르면 공시대상기업집단은 82개로 전년 대비 6개 늘었다. 이들 집단에 소속된 회사는 3076개로, 전년 대비 190개 증가하면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공시대상기업집단 가운데 상위 48개 기업집단(소속회사 2169개)은 자산총액 10조원을 넘기면서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에 지정됐다. 올해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수는 전년(47개) 대비 1개 늘었고, 집단에 속한 회사 수는 같은 기간 61개 증가했다. 

큰 틀에서 공시대상기업집단에 이름에 올렸다는 건 공식적으로 ‘대기업’으로 분류됐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자산총액 규모는 대기업 서열을 나누는 척도로 쓰인다.

올해는 최상위권에서 지각변동이 두드러졌다. 십수년간 자산 기준 상위 5대 기업집단은 ▲삼성 ▲현대자동차 ▲SK ▲LG ▲롯데 순으로 굳어진 양상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SK와 현대자동차의 자리바꿈을 계기로 이 같은 구도에 균열이 생겼고, 올해는 포스코가 롯데를 대신해 다섯 번째 순번으로 올라섰다. 

공정위는 “포스코는 물적 분할 이후 포스코홀딩스가 보유한 포스코 주식 가치 약 30조원이 자산으로 추가 산정돼 자산이 늘었다”고 설명했다. 포스코는 5대 기업 중 유일하게 ‘총수 없는’ 기업집단이다.

덩치 불린
복병 출현

올해 공시대상기업집단에 신규 지정된 기업집단은 총 8곳이다. 이 항목에는 ▲LX ▲에코프로 ▲고려에이치씨 ▲글로벌세아 ▲DN ▲한솔 ▲삼표 ▲BGF(CU편의점) 등이 포함된다. 

2차전지 소재 등을 생산하는 에코프로와 전기자동차용 방진 부품 등을 생산하는 DN은 자산이 1년 전보다 각각 59%, 76% 급증한 것으로 집계됐다. 에코프로는 상장 3사(에코프로·에코프로비엠·에코프로에이치엔) 자산 증가에 힘입에 대기업으로 지정됐고, DN은 자산총액이 2021년 말 3조3100억원에서 지난해 말 5조8200억원으로 확대됐다.

고려에이치씨는 주력 계열회사의 순이익 증가에 따라 자산이 늘었고, 글로벌세아는 쌍용건설 인수로 자산총액 5조원을 넘겼다. 삼표는 지난해 에스피앤모빌리티와 에스피케이인크를 계열사로 추가하면서 재계 순위 80위로 진입했다. 


한솔은 반도체 관련 기업 한솔아이원스 인수 등으로 자산총액이 5조원을 넘어서며 대기업집단에 들었다. BGF는 편의점 사업 관련 영업이익 증가에 따라 자산이 늘어나 맨 마지막 순번으로 진입했다.

반면 현대해상과 일진은 대기업에서 제외됐다. 현대해상은 지난해 금리 상승에 따른 매도가능채권 가치 하락 영향으로 자산총액이 5조원 이하로 주저앉았다. 일진은 주력 계열회사인 일진머티리얼즈를 롯데케미칼에 매각하면서 자산규모가 급감했다.

롯데 녹인 포스코 용광로 열기 
멈춘 적 없는 진격의 에코프로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은 1개 늘었다. 기존 공시대상기업집단이었던 장금상선과 쿠팡은 자산증가에 힘입어 해당 명단에 포함됐다. 장금상선은 신조선박 도입 및 환율 상승으로 이익이 늘어난 효과였고, 쿠팡은 매출 증가 및 신규 자회사 설립 등에 따른 것이다.

공시대상기업집단에 이름을 올린 LX는 자산 10조원을 넘기면서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에도 포함됐다. 대기업 지정과 함께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에 포함된 건 지난해 두나무에 이어 두 번째다.

LX는 LX홀딩스 등 12개사를 지난해 6월 LG그룹에서 친족분리해 별개의 기업집단으로 독립했으며, 자산총액 기준 재계 순위는 44위다. 지정자료 제출 의무를 지는 동일인으로는 구본준 회장이 지정됐다.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소속이었던 교보생명보험과 두나무는 공시대상기업집단으로 변경됐다. 교보생명의 자산총액은 지난해 말 기준 8조9000억원으로, 전년(13조8000억원) 대비 35.5% 감소했으며, 기존 32위였던 재계 순위는 53위로 21계단 하락했다. 

두나무는 1년 새 자산총액이 10조8000억원에서 7조4000억원으로 줄면서 공시대상기업집단으로 전환됐다. 고객예치금이 5조8112억원에서 2조8684억원으로 대폭 감소한 여파였다. 재계 순위는 44위에서 61위로 밀렸다.

기존 대기업 가운데 자산 변동이 두드러진 곳도 제법 보인다. KG는 쌍용자동차를 인수하면서 재계 순위가 71위에서 55위로 급상승했다. 카카오는 에스엠엔터테인먼트를 인수하면서 자산총액이 1조8000억원가량 증가했다. 지난해 재계 순위 25위를 기록했던 HMM은 자산총액이 25조원으로 늘면서 순위를 여섯 단계 끌어올렸다.


올해 대기업 진입이 유력했던 하이브는 에스엠엔터테인먼트 인수 포기의 여파로 자산총액(4조8100억원)이 기준선을 밑돌면서 공시대상기업집단 지정을 피했다. 금호아시아나와 대우조선해양은 진행 중인 기업결합(M&A)이 종료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내년부터 해당 명단에서 제외될 것으로 예상된다. 

예고된
순위 변화

총수 일가 중에서는 약 40명이 외국인인 것으로 나타났다. 친족 범위가 혈족 4촌·인척 3촌 이내로 축소되면서 친족 수는 3325명으로 49.3% 줄었고, 14개 대기업집단 소속 총 40개사가 임원 독립경영 인정 요건을 충족하는 사외이사 지배회사로 기업집단에서 제외됐다

공정위가 올해 처음으로 총수 일가 국적 현황을 파악한 결과 7명의 배우자가 외국 국적을 보유하고 있었다. 동일인 2세가 외국 국적이나 이중국적인 경우도 16개 집단 31명으로 집계됐다. OCI 동일인인 이우현 회장은 외국인(미국인)으로 확인됐다. 

이우현 회장이 외국인임에도 동일인으로 등록된 것과 달리, 김범석 쿠팡 의장은 올해 역시 동일인 지정을 피했다. 쿠팡의 동일인은 2021년 이후 3년째 쿠팡 법인으로 지정됐다. 쿠팡은 김범석 의장의 국내 개인회사, 국내 친족 회사가 없다는 점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공정위는 외국인이면서 동일인으로 지정된 이우현 회장의 사례를 김범석 쿠팡 의장과 다르게 해석했다. 쿠팡의 의사결정 최상단에 있는 쿠팡INC.는 미국 법인이지만, OCI는 최상단 회사가 국내 법인이라는 차이도 감안했다.

다만 공정위는 외국인 동일인 지정 기준이 마련돼야 한다며 통상마찰 가능성을 최소화하고자 관계 부처와 충분히 협의한 뒤 시행령 개정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곳곳서
희비 교차

한편 개정 공정거래법에 따라 내년부터는 ‘자산 10조원 이상’이 아닌 ‘명목 국내총생산(GDP)의 0.5% 이상’인 집단이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으로 지정될 가능성이 크다. 공정위는 자산 5조원 이상인 공시집단 기준도 상향하거나 GDP에 연동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관련 연구용역 결과는 9월경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heaty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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