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공든 호남탑’ 딜레마

2023.03.21 08:27:22 호수 1419호

다시 영남으로 핸들 돌리나

[일요시사 정치팀] 차철우 기자 = 역시 말뿐인 챙기기였던 모양새다. 그토록 탄탄히 쌓아온 성을 아주 쉽게 부숴버린 형국이다. 김재원 수석최고위원과 김광동 진실화해위원장의 발언으로 인해 보수당의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과거 발언들까지 소환되면서 호남 표심이 제대로 흔들리고 있다. 지도부가 다급하게 진화에 나서고 있지만 늦은 듯 보인다. 당내에서는 이미 불안함이 감지된다. 



국민의힘 김재원 수석최고위원이 전광훈 목사의 예배에 참석해 내뱉은 말의 후폭풍이 거세다. 소위 전라도를 배척하려는 태도가 강해서다. 전 목사는 김 위원에게 “헌법에 5·18 정신을 넣겠다고 하는데 그런다고 전라도 표가 나오지 않는다. 전라도는 영원히 10%다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또다시
극우로?

김 최고위원은 “불가능하고, 반대”라며 “표 얻으려고 하면 조상묘도 파는 게 정치인”이라고 답변했다. 5·18 정신을 헌법에 수록할 수 없다는 취지의 발언이었다. 해당 발언은 이틀 만에 언론과 미디어를 통해서 보도됐고, 파장이 일었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김 최고위원은 즉시 “죄송하다”며 SNS를 통해 사과하겠다며 고개를 숙였다. 

신임 지도부는 김 최고위원의 발언이 일파만파 커지자 재빨리 진화에 나섰다. 김기현 대표는 진지한 자리가 아니지만 적절한 발언이 아니었다고 꼬집었다. 성일종 정책위원장 역시 당과 관련 없는 이야기라고 선을 그으면서도 개헌이 되지 않기 때문에 한 이야기지만 적절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논란은 여전히 쉽게 잦아들지 않고 있다. 다만 지도부는 본인이 반성했기 때문에 별도의 징계는 하지 않을 예정이다. 문제는 김 최고위원뿐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최근 임명된 김광동 진실화해위원장의 과거 인터뷰도 다시 재조명됐다. 


앞서 김 위원장은 임명에 앞서 왜곡된 역사 인식으로 자격 논란을 불러 일으켰던 인물이다. 그는 공개 석상서 다시 한번 5·18민주화운동에 북한이 개입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지난 13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서 민주당 의원이 김 위원장의 과거 인터뷰를 근거로 질의하자 “그렇다”고 대답하면서 “북한군이라는 표현이 아니라 북한이 개입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2020년 열린 한 정책 심포지엄 발표한 논문서도 5·18 헬기 사격은 허위라고 언급한 이력도 있다. 얼마 전 개정된 교육과정에서는 5·18민주화운동이라는 단어가 일제히 삭제된 사건까지 발생했다. 

교육부는 급히 해명에 나섰다. 교육과정 대강화 취지에 따라 교사의 교육 자율권 보장을 위한 조치라고 해명했지만, 5·18 단체를 중심으로 역사 지우기라는 뭇매를 맞을 수밖에 없었다.

결국 다시 명시하도록 전면 공고했지만, 최근에는 이런 과거 논란까지 다시금 떠오르는 형국이다. 이처럼 여당 지도부 핵심 인사와 윤석열정부 인사들의 발언을 두고 더불어민주당은 공격모드에 들어섰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두 인물이 5·18 정신을 훼손했고, 반국가적 발언을 했다며 해임을 요구했다. 윤석열 대통령도 함께 끌어들였다. 두 인물과 결별하지 않으면 한 편이라고 규정했기 때문이다. 해당 여파는 쉽게 가라앉을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국민의힘이 지금껏 다져온 호남 기반이 와르르 무너지는 모양새다. 즉시 윤 대통령에게까지 악영향을 끼치는 중이다.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의 5·18 정신 헌법 수록 입장은 확고하다”고 밝히며 해명에 진땀을 뺐다. 그러면서 “김 위원의 발언은 당론이 아니며, 대통령실과 연결지으면 안 된다”고 선을 그었다. 

그럼에도 여러 단체들은 일제히 비판 목소리를 냈다. 참여연대를 비롯해 전국 18개 시민사회단체가 꾸린 참여자치지역운동연대는 지난 15일 성명을 내고 망언을 규탄했다. 이날 해당 단체는 “윤 대통령의 5·18 정신 헌법 전문 수록 공약을 득표를 위한 공수표 공약으로 폄훼했다”고 비판했다. 

말 한마디에 호남 표심 추풍낙엽
물거품 된 윤석열 대통령의 노력

호남 정치권도 부글부글 끓고 있다. 일각에서는 두 인물을 향한 사퇴 압박까지 가하는 상황이다.


과거에도 국민의힘은 자유한국당, 미래통합당 시절을 거치면서 5·18 민주화운동 관련 논란이 끊임없이 터졌던 바 있다. 문재인정부에 대한 반발이 컸지만, 이 때문에 반사이익을 얻어내지 못했을 정도다. 

이런 상황을 깨고자, 대선 기간 윤 대통령은 호남을 집중적으로 공략해왔다. 후보 시절 무려 일곱 차례나 호남권을 찾으면서 지지를 호소했던 바 있다. 오프라인 홍보물도 모두 호남에 올인해 호남 230만가구에 손편지까지 발송한 적도 있다.

그 결과 박근혜 전 대통령의 득표율을 뛰어넘는 기록을 세웠다. 보수정당이 호남서 거둔 가장 높은 득표율이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윤 대통령은 당선 이후에도 이른바 ‘호남 챙기기’에 나섰다. 이를 계기로 보수당의 새로운 변화라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5·18 광주민주화 기념식은 윤 대통령의 요청으로 여당 의원이 전원 참석했는데 이는 보수당 대통령으로서 헌정사상 유례없던 일이었다. 현직 대통령이 민주의문을 통과한 것도 보수정당 출신의 현직 대통령 중 처음이기도 했다. 기념식서도 윤 대통령은 자유를 여러 차례 강조했다. 

덕분에 윤 대통령의 지지율도 동반 상승했다.

분명 윤 대통령도 “42년 전 자유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를 피로 지켜낸 전 광주·호남 시민의 5월 항거를 기억한다”며 “5월 정신은 자유민주주의 헌법정신 그 자체”라고 추켜세웠다. 이 같은 행보는 여야 정치권서도 상당히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정책적인 부문에서도 호남 챙기기는 빠지지 않았다. 지속적으로 호남 민심을 잡기 위해 두드려왔다. 대선 기간에도 호남 정책을 제시했다. 꾸준히 힘들여온 덕에 지방선거에서도 효과를 거뒀다. 광역단체장 선거에 승리한 후보는 없지만 모두 15% 이상의 득표율을 기록할 정도였다. 

모두 다
물거품

이 덕에 호남 후보들은 선거비를 보전받을 수 있게 됐고, 보수 열풍이라는 새 기록도 세웠다. 지속적인 호남 포용 효과가 빛을 발한 셈이다. 

광주광역시의회 비례대표 선거에서는 국민의힘 김용님 후보가 시의원에 당선돼 파란을 일으켰다. 광주서 보수정당 시의원이 탄생하는 성과를 거뒀다. 보수정당서 시의원이 당선된 것은 무려 27년 만이다. 


호남 일부 지역에서는 국민의힘 후보의 득표율이 민주당 후보를 앞지르기도 했다. 이처럼 국민의힘은 기존처럼 호남을 배제하려 하지 않았다. 또 보수당이 광주와 전남, 전북서 민주당에 이어 제2당으로 올라서는 쾌거도 이뤘다.

국민의힘 이준석 전 대표 역시 호남에 공들여온 인물 중 한 명이다. 이 전 대표 체제하에서는 일찌감치 호남에 상당한 힘을 쏟아부었다. 미리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이 친호남 기조를 닦았고, 호남 공략을 위한 내실화에 이 전 대표가 힘을 보탰다. 과거에 대한 반성을 선언한 뒤, 본격 지원하겠다는 노선을 깔았다. 

심지어 이 전 대표는 호남 민심을 잡기 위해 흑산도까지 방문했다.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기간 호남을 찾았다. 이른바 서진정책을 펼치기 위한 움직임이었던 셈이다. 

대선이 끝난 뒤에도 이 전 대표는 호남을 찾아 새벽까지 시민 한 명 한 명을 만나 감사 인사를 전하기도 했다. 윤리위 징계를 받은 뒤 장외 여론전을 펼칠 때도 호남은 이 전 대표가 빠짐없이 찾았던 지역으로 유명하다. 무등산을 등반하고 진도, 광주, 순천 등 호남의 여러 지역을 돌아다녔다. 

이처럼 이 전 대표의 호남 방문으로 호남 당원도 크게 증가한 측면이 있다. 이번 3·8 전당대회서도 이전과 다른 분위기가 느껴졌다. 호남서도 국민의힘에 대한 기대감이 상당히 높아졌다. 

없어진
공략점

현장서 준비한 800석의 좌석보다 2배 가까운 1500명의 당원이 몰리는 등 말 그대로 대성황을 이뤘다. 호남서 달라진 보수정당의 위상을 한껏 보여줬던 셈이다. 호남서 김 최고위원은 국민의힘 당원으로 활동하고, 국민의힘을 돕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안다고 연설했던 바 있다. 

그는 “다른 지역서 노력하는 것에 100배, 1000배 노력을 기울여야 비슷한 결과가 온다”며 “한 표를 주면 반드시 보답하겠다”고 호소했다. 앞서 김 최고위원의 망언 논란은 지금껏 쌓아올린 포인트를 한 번에 무너뜨린 측면이 있다. 

이번 3·8 전대를 통해 새로 꾸려진 지도부서 호남 세력은 찾을 수 없다. 최고위원에 출마했던 민영삼 홍보본부장이 전라도 출신이긴 하지만 역부족이라는 평가가 내려진다. 민 본부장은 스스로를 호남의 강을 건너온 귀순용사라고 밝혔다.

최고위원들 중에서는 조수진 최고위원이 유일하게 호남 출신으로 정계 입문 당시 보수당으로 발을 들였다. 호남의 딸이라며 외연 확장에 자신감을 보이고는 있지만, 혼자서는 호남 표심을 다지기에 어려움이 따를 것으로 분석된다. 과거에는 호남을 제외하더라도 영남 지역의 인구가 더 많아 비교적 어렵지 않게 선거를 치를 수 있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서울에만 호남 출신 유권자가 34%를 넘어섰다. 국민의힘이 자꾸 호남을 배척하는 그림을 연출한다면 차기 총선서 수도권 승리는 요원할 수밖에 없다. 

사실상 힘들어진 외연 확장
이대로라면 총선 망가질 판

그나마 있던 호남 표심이 이탈하려는 모습을 보이자 지도부는 급하게 전주 현장 최고위원회의 개최라는 해결책을 내놨다. 전주는 국회의원 보궐선거가 열리는 지역이기도 하다. 이와 함께 다시 한번 5월에 개최될 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소속 의원 전원 참석 방안도 모색 중이다. 

이번 전주 보궐선거는 국민의힘에 대한 호남 민심을 가늠할 시험대다. 이번에 득표율 15%를 넘기지 못하면 과거와 달라진 양상이 펼쳐질 수 있어서다. 이런 탓에 국민의힘 외연 확장에도 빨간불이 함께 켜질 수 있다. 양당의 지지율이 크게 차이나지 않는 상황서 불리한 쪽은 국민의힘이다.

대선도 외연 확장으로 선거전략을 꾸려온 마당에 그마나 끌어온 호남을 잃는다면, 어려운 싸움이 될 수밖에 없다. 현재 여당과 정부가 점차 우클릭 중이라는 것은 정치권 안팎에서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문제는 윤정부 출범 이후 정부 주요 부처 등에도 호남 인사가 극소수란 점으로 대통령실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앞으로도 호남 표심을 다져야 하는데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악재 속에서 호남 민심이 점차 식어가고 있는 가운데, 호남과의 연결통로를 반드시 마련해야 할 숙제가 생겼다. 사업이 진척되고 있긴 하지만, 윤 대통령이 직접 챙기는 모습보다는 공약 이행 차원이나 특별법을 발의해 진전시킨 사례가 많다. 기대를 모았던 광주 최초의 복합 쇼핑몰, 고속철도 등의 대선공약 사업도 예산에서 줄줄이 누락됐다.

김 전 위원장이 과거 광주서 무릎을 꿇기까지 했던 이유는 보수당에 대한 호남의 긍정적 이미지를 끌어올리기 위함이었고, 외연 확장의 필요성을 너무나도 잘 알았기 때문이다. 

재 뿌린
중앙당

두 인사의 망언을 두고 천하람 전남 순천갑 당협위원장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서 “호남서 뛰는 사람이 백날, 천날 뛰어도 중앙에서 재를 뿌린다”고 작심 비판했다. 정치권에서는 과거 총선 패배 트라우마가 벌써부터 불거지는 모양새다. 총선이 1년 남짓 남은 상황에서 다시 한번 같은 이유로 패배할까 하는 우려에서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국민의힘이 (이번 3·8 전대처럼)당원으로만 총선을 치른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 같다”며 “공든 탑을 한꺼번에 부셔버렸다”고 언급했다. 

<ckcjfdo@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김기현도 전광훈 찬양?

국민의힘 김재원 수석최고위원의 발언과 함께 김기현 당 대표의 과거 발언도 함께 주목받는 모양새다.

김 대표는 극우로 평가되는 전광훈 목사를 과거 메시아라고 칭했던 점이 다시 수면으로 떠올랐다.

김 대표는 당시 울산시장이었다.

과거 전 목사가 주최한 집회에서 “패악한 (문재인)정권, 독재 정권을 향해 외치는 이사야 같은 선지자가 전광훈 목사”라고 했던 과거 이력 때문이다.

이런 탓에 당 내부에서도 벌써부터 총선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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