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이태원 참사’를 수사 중인 특별수사본부가 사고 책임과 관련해 윗선에 칼날을 겨눴다. 지금까지 수사 대상에 오른 인물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과 김광호 서울경찰청장 등이다. 최근에는 국가공무원노동조합소방청지부가 이 장관을 고발했고 특수본은 해당 고발 건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통보했다. 그러나 수사 결과가 불 보듯 뻔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공수처의 수사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넘어 이 장관의 혐의 입증이 힘들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지 한 달이 다 돼간다. 유가족들은 윤석열 대통령의 사과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 특별수사본부(특수본)의 수사가 현재진행형이지만 윗선을 향한 적극적인 수사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 점도 문제다. 특수본은 최근 이 장관에 대한 고발 사건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 통보했다. 하지만 공수처를 바라보는 법조계의 시선은 딱히 희망적이지 않다.
혐의 입증
대한민국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 국가공무원노동조합소방청지부(소방노조)는 지난 14일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을 직무유기·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로 특별수사본부(특수본)에 고발했다. 재난및안전관리기본법상 관련 업무를 총괄 조정하는 이 장관에게 이태원 참사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특수본은 이 고발 사건을 공수처에 지난 17일 통보했다.
공수처법에 따르면 이 장관의 직무유기 혐의는 이 법에 규정된 ‘고위공직자 범죄’로 공수처의 수사 대상이다. 공수처는 특수본에서 통보받은 날로부터 60일 이내에 수사 개시 여부를 회신해야 한다. 다만 이 장관에 대한 수사 권한은 공수처의 전속 권한은 아니어서 경찰도 수사할 수 있다.
이 장관에 대한 직무유기 혐의 입증은 어려울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이는 특수본의 수사만 봐도 알 수 있다. 먼저 특수본이 가장 주목하고 있는 진실공방은 인파 관리에 책임이 있는 용산경찰서와 서울경찰청에 대한 내용이다.
최근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된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은 참사 당일 보고를 늦게 받았고, 서울청 주무 부서에 기동대 지원을 요청했다고 주장하는 상황이다. 특수본도 참사 전 용산서 내부 회의에서 한 직원이 기동대 투입의 어려움을 호소하자, 그가 “그래도 노력해봐라”고 발언했다는 용산서 직원의 진술을 확보한 상태다.
하지만 서울청은 핼러윈과 관련해 기동대를 요청받은 사실이 없다는 입장이다.
서울청 정보부장이 참사 이후 용산경찰서 내부 문건을 삭제 지시했다는 의혹도 있다. 박성민 전 서울청 공공안녕정보외사부장은 인파 밀집에 따른 안전사고를 우려한 정보보고서를 “압수수색에 대비해 규정대로 삭제하라”는 지시를 한 의혹을 받고 있다. 특수본은 이번주 내로 박 전 부장을 소환하기 위한 일정을 조율 중이다.
참사 당일 현장을 이탈하고, 행적을 속인 의혹을 받는 박희영 용산구청장에 대한 수사도 진행 중이다. 다만 특수본은 행적을 속였다 해도 그 자체로 법적인 책임을 물을 수 없고, 국회에서 거짓으로 증언했을 경우 국회증언감정법상 위증에 대한 혐의를 적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수본은 참사 당일 부실대응으로 일관했던 기관이 여러 곳이기에 결정적인 참사 원인을 제공했다고 보여지는 기관이 없어 수사에 어려움을 겪는모양새다.
소방노조 고발 후 특수본 ‘고위공직자 범죄’ 분류
두 달 내 수사 개시 여부 판단…내년 초 결론 나와
특수본 관계자는 “한 기관의 조치로(이태원 참사가) 발생했다고 보진 않기 때문에 각 기관의 주요 피의자에 대한 조사가 어느 정도 일단락되면 신병을 판단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법조계에서도 공수처가 이 장관에 대한 수사 개시 이후 형식적인 수사를 하거나 혐의 입증에 난관에 봉착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부장검사 출신인 한 변호사는 “특수본도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공수처가 수사 개시에 나서지 않을 가능성도 크다”며 “직무유기라고 한다면 일부러 대응하지 않았거나 예상이 가능한 사건이었음에도 나서지 않았을 때 적용할 수 있다. 이태원 참사같은 경우 부실 대응 기관이 한두 곳이 아니라 혐의 적용이 가능한지에서부터 골치가 아플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다른 변호사도 “공수처가 수사 개시를 판단하는 시간만 한 달 반이 넘게 남았다. 이 장관에 대한 수사가 이뤄지더라도 소환하는 데는 내년 초가 될 것으로 보인다”며 “유가족분들의 눈높이에 맞는 수사를 보여주려 노력하겠지만 공수처가 특수본의 동향을 살피며 움직이지 않겠냐”고 말했다.
이 장관은 직무유기 외에도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를 받는다. 문제는 직무유기보다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 입증이 더욱 어렵다는 것이다. 우선 공수처는 법리적으로 이 장관의 사고 예방과 사고 대응에 구체적 지휘 의무가 있는지 들여다보고 있다.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과 정부조직법 등에 행안부 장관으로서 맡아야 할 추상적인 의무는 다수 명기돼있지만, 정부가 관리하는 41종의 위기상황 매뉴얼에서 다중인파 밀집에 따른 압사사고는 없다.
과거 판례에서도 법원은 법령상 책임과 함께 구체적인 구조 매뉴얼상 임무를 근거로 직무 수행의 적절성을 판단했다. 통상적으로 재판부는 업무 과실 이후 사고의 예견 가능성부터 따진다. 특히 업무 과실과 사고 결과의 인과성이 있는지가 핵심이다.
공수처도 참사 당일 이 장관의 적절치 못한 직무수행으로 수백여명의 사상자가 났다는 인과관계 연결고리를 알아보는 중이다. 하지만 과거 세월호 침몰 사고 때 구조 실패 비판을 받았던 김석균 전 해양경찰청장 등 해경 수뇌부가 1심에서 업무상 과실치사·업무상 과실치사 혐의에 대해 무죄 판단을 받은 판례가 있다.
재판부는 당시 “해경 조직이 대형 인명사고에 대비한 물적·인적 역량이 부족하고 체계가 제대로 정비되지 않다는 사정을 들어 해경 지휘부에 관리 책임에 관한 질책을 하는 것을 넘어서, 구체적인 구조 업무와 관련해 형사 책임을 묻는 업무상 과실의 근거로 삼기는 어렵다”고 판시했다.
사건 인지 후 행적·지시에 유무죄 갈려
법조계 “무죄 가능성 크다” 의견 많아
법원은 업무 과실은 인정했지만 사고 피해 결과를 예상하고 그 결과를 피하기 위해 주의의무를 다했는지에 대해서는 당시 무전 혼선과 정확한 사고 상황이 전파되지 않았다는 점 등을 이유로 “요구할 수 없다”고 했다. 특히 업무 과실이 구조 실패로 이어졌다는 인과도 성립할 수 없다고 봤다.
이 장관이 참사 당일 사고 사실을 처음 전파받은 시점은 오후 11시20분이다. 오후 10시15분 119 최초 신고 접수를 기준으로 1시간이 지난 뒤에야 상황을 인지한 것이다.
자택에 머물던 이 장관은 오후 11시31분 행안부 중앙재난 안전상황실장과의 통화에서 상황 보고를 받았다. 이 장관이 사고 발생을 최초 인지한 시간은 소방 대응 2단계(오후 11시13분)가 발령된 직후로 서울소방재난본부장이 현장을 지휘하고 있었다. 이 장관은 정부서울청사로 이동한 뒤 참사 다음 날 오전 1시5분에 사고 현장을 방문했다.
이 장관이 구조와 사고 대응에 충실했는지는 사고 발생을 인지한 시점 이후 행적과 지시 내용을 토대로 판단될 것으로 보인다.
재판부는 세월호 사고와 관련한 해경 지도부의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 적용을 판단할 당시 사고 당일 해경 지도부가 현장을 지휘할 수 있는 구조 세력의 도착 시간(오전 9시25분)부터 구조 가능성이 상당하던 오전 9시50분까지의 25분 동안 구조활동을 기준으로 삼았다.
이 장관이 상황을 인지했을 때 이미 현장은 심폐소생술(CPR)이 필요한 환자가 속출하고 있었다.
산 넘어 산
서울중앙지법 현직 판사는 “이 장관이 참사를 인지한 시간 이후부터 어떻게 지시했고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가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며 “사건 인지를 했음에도 특별한 지시를 하지 않았다면 유죄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고 판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