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불혹 신화’ 김강민 SSG랜더스 외야수

2022.11.14 11:27:07 호수 1401호

40세 형님의 대역전 가을 드라마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KBO 리그 SSG 랜더스의 외야수 김강민. 그가 지난 1일부터 시작된 SSG와 키움 히어로즈의 2022 신한은행 SOL KBO 리그 포스트시즌 한국시리즈에서 MVP를 수상했다. 김강민 스스로도 예상하지 못한 역대 최고령 기록으로, 팬들에게는 감사 표현과 함께 몸이 허락하는 한 뛰겠다는 약속을 했다.



불혹(40세)의 김강민에게 나이는 숫자에 불과했다. 2022 한국시리즈(KS)는 ‘김강민 시리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김강민은 지난 1일 인천 SSG 랜더스 파크에서 개최된 KS 1차전에서 9회 말 대타로 나와 동점 솔로포를 터뜨려 승부를 연장전으로 끌고 갔다. 비록 팀은 연장전에서 패했지만 김강민의 홈런은 팬들의 마음을 모두 사로잡았다. 

상상도 못한
막판 대활약 

김강민은 3차전에서 특급 대타로 활약했다. 2-1로 앞선 9회 초 1사 만루 찬스에서 최지훈 대신 타석에 들어갔다. 1차전 동점 홈런을 빼앗은 김재웅을 상대로 중전 적시타를 터뜨렸다. 김강민의 적시타는 기폭제가 돼 9회 초 6득점 빅이닝의 기폭제가 됐다.

5차전서도 김강민의 방망이는 불을 뿜었다. 2-4로 뒤진 9회 말, 대타로 나선 김강민은 무사 1, 3루 찬스에서 키움 구원투수 최원태의 144㎞짜리 슬라이더를 놓치지 않고 좌측 담장을 넘기는 3점 홈런으로 연결시키며 5-4 극적인 역전승을 일궈냈다.

KS 역사상 최초의 대타 끝내기 홈런이었다. 포스트시즌을 통틀어서도 1996년 플레이오프 1차전 쌍방울 박철우 이후 26년 만이다. 엿새 전 자신이 세운 포스트시즌 최고령 홈런 기록마저 갈아치웠다.


이 기록은 김강민 본인도 예상하지 못했다. 김강민은 경기가 끝난 뒤 인터뷰에서 “(우승하면)20대 때는 마냥 좋아서 웃기만 했는데, 40대 때는 눈물이 난다”며 감격했다. 이어 “시리즈 전만 해도 ‘어차피 조커로 기용될 거’라서 그렇게 준비했다. 큰 상은 바라지도 않고 우승만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너무 기쁘고 행복한 하루”라고 소감을 밝혔다.

우승 후 추신수와 함께 서로 축하를 했다. 김강민은 “추신수가 한국에 왔을 때 ‘우승하기 위해 왔다’고 했고, 내가 ‘너 반지 꼭 끼자’고 했다. 약속을 지킨 것 같아서 가슴이 벅차올랐고 눈물이 났다”고 전했다.

상대팀인 키움 히어로즈 선수들을 향해서는 “너무 잘해서 저희가 많이 힘들었다. (좋은 경기를 한)키움 선수들에게도 고맙다”고 말했다.

통합 우승을 이끈 김원형 감독은 “야구를 하면서 이렇게 영광스러운 자리에서 말하는 게 처음이다. 이런 영광을 시즌 시작부터 끝까지 만들어준 팬들과 선수들에게 감사드린다. 앞으로 더 노력하는 감독이 되겠다”며 “초보 감독인데 선배 선수들이 없었으면 힘든 시간이었을 것이다. 감독이 못하는 어려운 역할을 해줘서 팀이 잘 돌아갔다”고 감사를 표했다.

명승부를 펼친 키움에는 “홍원기 감독에게 시리즈 동안 고생 많았다고 전하고 싶다. 매 경기 긴장을 놓칠 수 없는 승부였고 상대에게 경의를 표한다”고 말했다.

“그저 우승만 하길 원했는데…”
KS 역사 최초 대타 끝내기 홈런

구단주인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도 이날 경기장을 방문해 팀을 격려했다. 정 부회장은 “SSG는 KBO 14개 부문 개인상 중 수상자가 단 한 명도 없는 우승 팀이지만, 인천 문학구장 홈 관중 동원 1위를 했다. 팬들 덕분에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은 물론 KS를 제패했다. 여러분의 성원과 선수들의 투혼이 오늘을 이뤘다”고 소감을 전했다.

그렇다면 김강민은 MVP 수상을 상상했을까. 대답은 “아니오”다. 그의 머리 속에는 최정 기록보다 오늘 하나 더 쳐서 빨리 점수가 많이 나서 이겼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처음부터 그의 목표는 주연이 아닌 ‘조연’이었다.

화려한 MVP는 생각도 없었으며, 주인공이 될 생각은 전혀 없었다는 것이 그의 답변. 동네 형처럼 후배들이 더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최고령 선수기 때문에 가지는 부담감도 있었다. 이번 경기에서 그의 역할은 후반, 대타였다. LG 트윈스가 올라오면 3차전에 나가야 했고, 요키시에 맞춰 나가야 했다. 컨디션도 좋지 않았다. 애당초 햄스트링 때문에 고민이 많았다. 김강민의 햄스트링 문제 때문에 한유섬이 더 경기에 출장해 뛰다가 다치기도 했다. 


한유섬과 경기를 번갈아가며 뛰는 작전을 세웠다. 마지막으로 나간 선수는 김강민이지만 그때도 정상적으로 뛸 수는 없었다. 맡은 바 충실히 하려고 노력한 것. 이런 노력이 김강민을 MVP로 이끈 것이다.

그렇다면 김강민의 향후 일정은 어떻게 될까. 김강민은 올 시즌 부상과 최고령 나이로 이미 은퇴를 고려하고 있었다. 그는 처음부터 “팀에 보탬이 안 된다면 언제든 은퇴할 것이다. 도움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그래서 조금이라도 더 그라운드에서 뛸 여력이 있는 것 같다. 난 이미 야구를 하고 싶은 만큼 했다”고 말했다.

투수서
외야로

이어 “은퇴해야 할 시기는 지났다. 언제든 팀에서 ‘네 자리가 없을 것 같다’고 하면 미련 없이 은퇴할 생각이다. 팀이 이기는 데 내가 필요한 존재인 이상 뛰고, 후배들이 잘해서 자리가 없어지면 웃으면서 그만둘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제는 SSG 팬들이 김강민 은퇴를 염려하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김강민은 직접 입을 열었다. 그는 “내년에도 이 유니폼을 입고 야구한다. 내 몸이 허락하는 데까지 야구를 할 것이다. 올해도 후배들과 함께 하는 것만으로 좋았고 행복했다”며 “그러면서 우승이라는 목표도 생기고 이렇게 이루기까지 했다. 몸 관리, 시즌 준비 잘해서 내년에도 후배들과 재밌게 한 시즌을 뛰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런 김강민이라고 하더라도 처음부터 순탄한 야구를 한 것은 아니다. 1982년 대구 출생인 김강민은 대구 본리초등학교, 대구중학교, 경북고등학교를 졸업했다. 현재는 한국을 대표하는 외야수지만, 고교 시절 그는 투수였다.

당시 경북고 팀에는 3루수가 없었는데, 투수였던 김강민이 그 포지션에 적합했다. 손경호 감독은 김강민을 투수에서 야수로 전향시켰다. 어깨와 타격 능력이 좋다는 판단 아래에서다.

그렇다고 김강민이 야수로 완벽하게 전향한 것은 아니었다. 경북고에 이어 김강민은 SSG의 전신 SK 와이번스가 쌍방울 선수단을 인수해 재창단한 뒤 2000년 6월 처음 신인 선수를 뽑을 때 입단했다. 고교 시절까지 투수와 내야수를 겸업하던 김강민은 SK 입단 후에도 투수와 내야수, 양쪽에서 가능성을 찾으면서 본격적으로 야수의 길로 선택하는 듯 보였다.

2002년 전업
찐 선수 인생


그가 투수로서 경력을 포기하게 된 것은 심각한 제구 불안 때문이다. 김강민은 2002년 외야수로 전업하면서 본격적으로 김강민의 야구 인생이 시작됐다.

2002년 1군에 처음 오른 김강민은 총 49경기를 소화했지만 큰 활약을 하진 못했다. 그가 두각을 나타낸 것은 2006년부터다. 투수였으나 외야수로 전향했던 채종범을 밀어내고 주전 외야수로 활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는 채종범의 병역 비리 사건도 한몫했다.

외야수 전향 후 조금씩 입지를 넓혀가던 김강민은 2007년 김성근 감독 부임 후 본격적으로 주전 외야수로 발돋움했다. 프로 데뷔 후 처음으로 1군 경기에 100경기 이상(124 경기) 출전했다. 빠른 발에 강한 어깨가 본격적으로 빛을 본 것이다.

2009년에는 2할대 타율, 12홈런, 42타점을, 2010년에는 3할대 타율, 127안타, 72타점을 기록했다. 이때의 성적으로 소속팀에서 주전 자리와 동시에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외야수로 대표팀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정작 아시안게임에서 김강민은 큰 활약을 하지 못했다. 3차전 파키스탄전에 출전해 5회 초 적시타 외에는 출전 기회도 적었다. 

김강민은 대표팀에 승선한 다른 외야수인 이용규, 이종욱, 추신수, 김현수 중 유일한 우투우타였다. 다른 팀에 좌완이 없어 출전 기회가 적었지만 백업으로 자리를 지켰다. 결국 한국이 우승해 금메달을 획득했다.

2014년 시즌에는 3할대 타율, 130안타, 82타점으로 데뷔 후 최다 타점을 기록했다. 같은 해에 FA 자격을 얻었고 4년 총액 56억원에 잔류했다. 그러나 FA 후 첫 시즌이었던 2015년에 부상과 부진이 겹쳐 2할대 타율을 기록하는 등 전체적으로 부진했다. 일각에선 그런 그를 두고 ‘먹튀’했다는 말까지 나왔다.

2016년에는 조동화에 이어 팀의 새로운 주장으로 선임됐다. 이때 김강민은 KIA 김기태 감독과 LG 최태원 코치 등을 롤모델로 삼았다. 

햄스트링 부상으로 힘들었던 훈련
“같은 유니폼 입고 내년에도 뛴다”

당시 그는 “모든 것을 정해놓고 가면 같이 가는 선수들도 힘들다. 나 또한 스트레스를 받을 것 같다. 예전에는 정말 ‘20(홈런)-20(도루)’가 하고 싶어서 그려놓고 시즌을 들어간 적 있다. 그런데 반밖에 못한 적도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도 못하게 되더라”며 팀을 꾸려나갈 각오를 하기도 했다.

2019년 시즌 후 FA 자격을 취득해 1+1년 총액 10억원에 잔류했다.

당시 SK 구단은 “김강민은 좋은 기량을 가진 선수다. 베테랑으로서 헌신하는 모습이 팀에 큰 도움을 줄 것이라고 판단했다”며 계약 소식을 알렸다. 김강민은 “FA 계약을 마무리해 홀가분하다. SK에서 선수 생활을 마무리할 수 있게 해준 구단에 감사하다. 일찍 마무리하고 싶었는데 생각보다 늦어져서 팬 여러분께 죄송하다”고 구단을 향한 마음을 표현했다.

이 같은 과정을 겪으며 김강민의 평가는 단단해졌다. ‘빠른 발과 뛰어난 판단력, 강한 어깨와 주자를 속일 수 있는 테크닉까지 외야수로서 수비면에서 갖춰야 할 모든 걸 갖추고 있는 선수’가 김강민이었다. 현역 감독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 ‘한국 최고의 외야 수비수’로 뽑히기도 했다.

불혹(40세)을 넘겨서도 외야 수비에서 틈을 보이지 않았고, 리그 최상위권의 수비를 보여주기에 타격이 저조하지도 않아 쓰임새가 좋다는 평가다.

김강민 수비를 두고 “나성범 어깨에 이종욱 수비 범위”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이런 김강민은 ‘짐승 강민’ ‘짐강민’ ‘김짐승’이라는 별명도 갖고 있다. 인간을 넘어선 짐승처럼 게임을 한다는 의미다. 

강한 어깨
빠른 판단

이번 한국시리즈를 본 김성근 전 SK 감독은 “(웃으며)김강민도 많이 늙었더라. 살도 많이 쪘더라. 김강민이 한국 나이로 41세다. 흥미로운 부분이다. 선수도 모자란데 우리나라도 그런 선수를 많이 남겨놔야 한다. 자꾸 바꾸니까 수준이 떨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 전 감독은 “지도자로 기분 좋은 순간이 별로 없었지만 가르쳤던 선수가 좋아지고, 성장했을 때 기분이 좋다. 어제 김강민의 홈런을 보고 기분이 좋았다. 그런 홈런은 쌩쌩할 때도 못 치던 홈런이다. 어제는 깔끔하게 잘 쳤다”고 흐뭇한 마음을 표현했다.
 

<alswn@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코로나19 전으로 회복한 야구 열기

코로나19 팬데믹은 사회 곳곳에 큰 타격을 줬다. 국내 최고 인기 스포츠로 꼽히는 프로야구도 예외는 아니었다.

사회적 거리두기에 일부 선수들의 방역수칙 위반, 국가대표팀 부진 등이 겹치며 많은 팬들이 등을 돌렸다. 

우려와 기대 속 3년 만에 정상적으로 열린 가을야구. 관중은 3년 전 수준으로 회복했고 시청률은 오히려 더 높게 나온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 8일 한국야구위원회(KBO) 자료를 보면 지난달 24일 잠실에서 열린 키움과 LG의 플레이오프 1차전부터 10경기 연속 매진을 기록했다.

이날 인천 SSG 랜더스 필드에서 열린 한국시리즈 6차전까지 올해 포스트시즌 16경기 누적 관중은 27만5883명이다.

이 같은 관중 규모는 코로나19 팬데믹 전인 2019년 포스트시즌을 뛰어넘는다.

2019년 포스트시즌은 총 12경기가 열렸고 누적 관중은 23만4799명이었다.

공교롭게도 2019년도 올해와 마찬가지로 키움이 준플레이오프부터 한국시리즈까지 진출한 해였다.

한 경기만 열린 와일드카드 결정전을 제외하면 가을야구를 치른 팀은 두산(2019년)과 KT(2022년)만 다르고 나머지 팀은 같다.

KT보다 두산이 더 많은 관중을 보유한 팀이지만, 올해는 2019년 수준을 넘어선 것이다.

TV 중계도 예년보다 더 높은 시청률을 기록 중이다.

지난 7일까지 지상파로 중계한 12경기 평균 시청률은 5.07%였다. 지난해(10경기) 4.82%, 2019년(11경기) 4.89%보다 높은 수치다.

당초 관중 동원에서 10개 팀 중 하위권에 속하는 키움과 KT가 가을야구에 진출해 흥행에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도 나왔다. 그러나 기우에 불과했다.

이처럼 코로나19 이전 수준으로 회복한 데는 준플레이오프에서 맞붙은 키움과 KT는 5차전까지 가는 명승부를 벌였고, ‘언더 도그’ 키움은 LG와의 플레이오프를 업셋하며 야구를 넘어 스포츠 팬들의 이목을 집중시켰기 때문으로 보인다. <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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