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일요시사 대기획> 법의학으로 본 죽음의 격차 ⑪죽어도 모르는 소외된 자들의 한

2022.11.08 10:22:10 호수 1400호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는 ‘투명인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한 법의학자는 ‘죽음의 격차’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분명히 존재하지만 잘 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너무 흔해서 격차의 존재를 인식조차 못했을 수도 있다. 부검대 위에 올라오는 사체 자체가 사회의 가장 낮은 곳에서 살아가던 이들일 수 있으니…. 



니시오 하지메 일본 효고의과대학 법의학교실 주임교수는 저서 <죽음의 격차>에서 “법의학 현장에 있다 보면 ‘도시의 일상 공간에서 발생하는 동사’는 결코 진기한 죽음이 아니라는 것을 실감한다”고 말했다. 집에서도 사람이 얼어 죽는다. 에어컨이 없는 경우 집에서 열사병으로 사망하기도 한다. 2020년 기준 저소득층의 에어컨 보급률은 0.18대에 불과하다. 

마지막까지
외면당한다

니시오 교수는 “책 출간 제안을 받고 과거 부검 사례를 되돌아보니 지금까지 부검해온 사람이 대체로 사회적 약자의 위치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니시오 교수에 따르면 효고의대 법의학교실에서 부검한 전체 사체의 약 50%가 독거자이고 약 20%가 생활보호수급자(한국의 기초생활수급자), 10%가량이 극단적 선택을 한 사람들이다. 신원 미상의 사체는 전체의 10%에 달했다. 

그는 “이 숫자를 보는 것만으로도 ‘변사체’가 되는 죽음 자체가 일본 사회의 음지에 속해 있다는 것은 명백하다. 매일 사인을 밝히는 사명에 집중하다 보니 그들이 놓인 사회적 상황에 둔감해졌는지도 모른다. 부검을 받아야 하는 변사체와 격차는 늘 가까운 곳에 있었는데 말이다”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낮은 부검률로 인해 놓치고 지나간 범죄, 감춰진 사건을 생각하면 등골이 서늘하다고 했다. 한국은 3만명 전후의 변사자 가운데 한 해 평균 8500건을 부검한다. 부검률은 전체 사망자 수로 따지면 3%, 변사자 수로 보면 23~24%에 이른다.


문제는 부검대에 오를 확률이 높은 사회적 약자가 마지막에 이르러 끝내 외면당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지난 9월29일 서울 구로의 고아권익연대 사무실에서 만난 조윤환 대표는 이미 몇 명의 ‘고아’를 잃었다. 한 달에 한 번씩 만나 밥을 사주고 고민을 나누던 아이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져 실종신고했더니 이미 사망해 ‘처리’했다는 말이 돌아왔다.

조 대표는 “사인도 알려주지 않았다. 그냥 외롭게 죽었다는 사실 하나만 남기고 떠났다”고 말했다.

폐쇄된 고아원에 홀로 살던 ‘고아 선배’도 홀연히 사라졌다. 조 대표는 “산속에 있는 고아원이 문을 닫았다. 선배는 그냥 거기서 살았던 것 같다. 나중에 가봤더니 사람이 산 흔적은 있는데 선배만 없어졌다. 어디 가서 목숨을 끊었는지 산짐승한테 잡아먹혔는지 알 수 없다. 실종신고도, 사망신고도 안 됐으니 아직 선배는 ‘살아 있는 사람’이다. 고아는 그런 식으로 사회에서 지워진다”고 한탄했다. 

18세부터 국가 보호 끝
연고 없어 ‘처리’ 쉽다

실제 조 대표가 고아권익연대 대표로 활동하면서 겪은 죽음 중 부검을 한 경우는 거의 없다. 사망자 가운데 생명보험에 가입된 사람이 있어 사인을 알기 위해 부검한 게 처음이자 마지막이라고 했다. 그가 고아원에 살 무렵 옆에서 자던 친구가 갑자기 죽었을 때도, 22세 때 친구가 사망했을 때도 상황은 다르지 않았다. 

고아원 시절부터 성폭행을 당했던 한 여성은 집창촌을 전전하다 38세 나이로 사망했다. 조 대표는 그녀가 죽기 7~8개월 전에 만나 한 남성과 동거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게 끝이었다. 연락이 닿지 않아 실종신고를 했더니 사망했다는 답이 돌아왔다.

조 대표에 따르면 그녀는 극단적 선택으로 처리됐다. 조 대표는 아직도 그녀의 사체가 어떻게 됐는지 모른다.

조 대표는 “그 친구의 사망 소식을 들었을 때 경찰에게 적극적인 수사를 부탁했다. 살해됐는지 극단적 선택을 했는지 확인할 길이 없었으니까. 당시 경찰은 더 이상은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했다. 그 친구에게 가족이 있었다면 사인 규명, 진상규명을 외쳤을 거다. 하지만 고아는 그렇게 해줄 사람도 없고 국가도 관심 없다. 경찰이 임의로 판단하기 참 좋은 케이스”라고 했다. 

고아는 국가의 보호 아래서 살다가 18세가 되면 ‘보호종료’ 딱지를 달고 사회로 나간다. 자립정착금, 정부지원금이 들어있는 디딤돌씨앗통장, 옷가지 몇 벌 정도가 아이가 챙겨 나올 수 있는 전부다. 이때부터는 혼자 살아가야 한다. 조 대표는 “고아는 18세가 돼서 사회에 나온 순간 국가의 관심에서 멀어진다”고 강조했다. 


지난 8월21일 보육원 출신 18세 유모군이 광주 광산구의 한 대학교 건물 주변 농장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유군이 건물로 올라간 날짜는 같은 달 18일로 그는 사흘 만에 발견됐다.

조 대표는 “3일 동안 유군을 찾은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고아의 죽음은 이렇다. 지나가는 누군가가 발견해야만 그나마 위로받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동 절반
죽고 싶다

8월24일에는 광주 광산구의 한 아파트에서 임모양이 숨져 있는 것을 주민이 발견해 신고했다. 임양은 어린 시절 보육원에서 생활하다 지난해 장애가 있는 아버지가 사는 임대아파트로 거처를 옮겨 생활하고 있었다. 불과 엿새 사이에 일어난 보육원 출신 10대의 잇따른 죽음은 금세 잊혔다.

2020년 12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내놓은 <보호종료 아동 자립실태 및 욕구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보호종료 아동의 50%가 죽고 싶다고 생각해본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이 수치는 일반 가구원 조사 결과인 2.61%, 저소득 가구원 조사 결과인 3.29%(2019년 한국복지패널조사)와 비교했을 때 매우 높은 수준이다. 

조 대표는 “고아권익연대를 만들고 활동하면서 느낀 고아와 일반인 사이의 격차는 애도에서 극명하게 나타난다. 외롭게 혼자 떠나는지 아니면 짧은 시간이라도 같이 애도해주고 아파해주는 사람이 있는지에서 생기는 격차”라며 “고인은 화려한 장례보다 위로받는 장례를 원할 것 같다. 고아는 그런 정서적인 애도가 떠날 때도 너무 차이난다”고 안타까워했다. 

이른바 애도의 격차다. 조 대표는 유군의 장례 상황을 떠올렸다. 그는 “처음에 보육원에서는 ‘자기들끼리 조용히 보내겠다’는 뜻을 전해왔다. 그래서 안 된다. 친구들이 장례식에 갈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그래서 교수님과 친구들이 찾아간 걸로 안다. 그래도 친했던 친구들이 마지막을 지켜줘서 유군도 좋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고아의 사망 소식을 들을 때마다 장례를 치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한국은 연고자만이 장례를 치를 수 있다. 장사 등에 관한 법률(이하 장사법) 제2조(정의) 제16항에 따르면 연고자는 ▲가. 배우자 ▲나. 자녀 ▲다. 부모 ▲라. 자녀 외의 직계비속 ▲마. 부모 외의 직계존속 ▲바. 형제·자매 ▲사. 사망하기 전에 치료·보호 또는 관리하고 있었던 행정기관 또는 치료·보호기관의 장으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람 ▲아. 가목부터 사목까지에 해당하지 않는 자로서 시신이나 유골을 사실상 관리하는 자로 한정돼있다. 

사실혼 관계나 조카, 사위, 친구 등은 장례를 치를 수 있는 권한이 없다. 조 대표는 고아의 죽음을 들을 때마다 경찰을 찾아가 장례를 치를 수 있도록 해달라고 사정한다. 그나마 2020년 보건복지부의 ‘2020 장사업무안내’에 따라 개인적인 친분이나 사회적 연대에 따라 장례 주관을 희망하는 개인이나 단체가 있는 경우 장례를 진행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장사법 제2조 제16호 아목에 따른 연고자로 인정받거나 무연고 사망자에 대한 장례주관자로서 장례를 치를 수 있다는 것. 

영하 16도
난방 안 돼

조 대표는 “고아는 국가가 입양한 자식인 만큼 사망했을 때 지자체장이 와서 애도해주고 아파했으면 한다. 또 고아의 죽음이 석연치 않은 경우에는 철저한 수사를 진행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고아에게 유일한 가족은 국가다. 죽을 때만큼은 눈물 흘리면서 가지 않도록, 헛된 죽음이 되지 않도록, 위안받고 하늘에 갈 수 있도록 제도와 인식이 변했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고아가 보호종료와 동시에 사회에서 지워지는 처지라면 이주노동자는 일할 때는 어디에나 있지만 사고가 나면 어디에도 없는 포지션이다. 한국에 체류 중인 외국인은 200만명에 이른다. 이주노동자는 일손이 부족한 제조업이나 농업 분야에서 노동력을 제공하고 있다.

일부 지방에서는 이주노동자가 없으면 일이 진행되지 않을 정도다. 

2020년 12월20일 경기도 포천에서 캄보디아 여성 이주노동자 속헹씨가 자신이 일하던 농장 기숙사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포천이주노동자센터 대표인 김달성 목사는 “속헹씨가 사망하기 이틀 전부터 숙소에 난방이 안 됐다고 한다”고 전했다.

포천도시공사에 따르면 당시 포천의 기온은 영하 14.2도였다. 속헹씨가 사망한 농장이 위치한 일동면은 영하 16도에 달했다. 

속헹씨와 동료들은 농장 한가운데 있는 가건물에서 먹고 잤다. 김 목사에 따르면 속헹씨 등은 해당 가건물에 살면서 매달 15만원씩 냈다고 한다. 2016년 비전문취업(E9) 비자로 한국에 들어온 속헹씨는 4년10개월 만기를 앞두고 비행기 표를 끊어놓은 상태였다.

하지만 그는 고향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타지 못하고 차가운 부검대에 올랐다. 

부검 결과 ‘간경화로 인한 혈관 파열과 합병증’이 사인으로 지목됐다. 김 목사는 ‘이주노동자 기숙사 산재사망 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를 꾸리고 대정부 투쟁에 나섰다. 대책위는 열악한 주거환경이 속헹씨의 병을 악화시켜 죽음에 이르게 했다고 주장했다.

산재 사망 내국인 3배
죽어야만 바뀌는 환경

지난 5월2일 속헹씨에 대한 산재 승인이 결정됐다. 속헹씨 사망 499일 만이었다. 

김 목사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한국에서 취업 활동을 하다가 캄보디아로 돌아간 노동자들이 현지에서 많이 도와줬다. 차로 몇 시간이나 들어가야 하는 시골에 가서 유가족을 만나 산재보험에 대해 설명하고 설득해서 위임받아 간신히 신청했다”며 “농업 이주노동자가 직업성 질환으로 산재 인정을 받은 경우는 아주 드물다. 그런 의미에서 큰 사건”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속헹씨의 죽음 이후 이주노동자의 주거환경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농지법은 농지에 주거목적인 건축물을 지을 수 없게 규정하고 있다. 건축법 역시 가설건축물을 상시주거시설로 제공할 수 없다고 명시했다.

지난해 6월 경기연구원이 내놓은 <경기도 농어촌 외국인 노동자 주거모델 개발을 위한 정책 연구>에 따르면 전체 사업장의 48.4%(896개소)가 농지법 또는 건축법 혹은 둘 다를 위반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 전체 건축물 중 신고돼있는 등기건축물은 44.6%(826개소)로 절반도 되지 않았다. 등기건축물 중 주택이 아닌 가설건축물을 제공하는 경우와 미등기 건축물까지 포함하면 전체의 80.5%(1490개)가 가설건축물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제2, 제3의 속헹씨가 나올 수 있는 환경이라는 의미다.

지난 3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2021년 산업재해 사고사망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발생한 산재 사망자 828명 가운데 외국인은 102명(12.3%)으로 나타났다. 통계청이 발표한 지난해 전체 임금 근로자(2099만2000여명) 가운데 외국인(81만1000여명) 비율이 3.8%인 것을 고려하면 이주노동자 산재 사망자는 내국인과 비교해 3배 이상 많은 셈이다. 

김 목사는 ‘산재 은폐율’에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2월 한국노동연구원에 실린 <노동조합은 산업재해 발생과 은폐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논문에서 한국에서 발생하는 산재 3건 중 2건은 은폐되고 있다는 내용이 나왔다. 1인당 산재 발생 대비 은폐율이 66.6%로 나타난 것이다. 

김 목사는 “해당 논문은 30인 이상 사업장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다. 이주노동자는 주로 30인 이하 사업장에서 근무한다. 전체 노동자로 따져도 30인 이하 사업장의 산재 은폐율은 최소 66.6% 이상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주노동자의 산재 은폐율은 70% 이상이라고 본다”며 “경험으로 볼 때 이주노동자의 산재 신고 비율은 20% 내외”라고 말했다. 

문제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불법체류자)는 노동 조건과 환경이 합법적 이주노동자에 비해 더 낮다는 점이다. 미등록 이주노동자도 산재를 당하면 합법적 이주노동자와 똑같이 산재보상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미등록 이주노동자는 합법적 이주노동자에 비해 산재 신청 비율이 떨어진다. 스스로 기피하는 경우도 상당하다고 한다.

불법체류자
더 바닥이다

김 목사는 “속헹씨의 희생으로 이주노동자의 주거환경에 대한 조사가 이뤄지는 등 변화된 게 많다. 누군가가 죽어야 변하는 시늉이라도 한다는 뜻이다. 속헹씨 사건에 수십개 단체가 달라붙어 떠들었는데도 산재 인정까지 1년 반이나 걸렸다”며 “내가 늘 하는 말인데 ‘위험의 이주화’ ‘죽음의 이주화’를 국가가 개입해 조직적으로 전개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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