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수서 동지로' 민주당 원팀 트라우마

2021.11.01 13:42:49 호수 1347호

아직 상처는 아물지 않았다

[일요시사 정치팀] 정인균 기자 =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가 지난달 25일 경기도지사직에서 사퇴했다. 그는 “5000만의 일꾼이 되겠다”며 대선 행보를 본궤도에 올려놨다. 하루 뒤인 26일엔 문재인 대통령을 예방해 대선 승리를 약속하기도 했다. 승리를 위해선 이 후보가 해야 할 일이 하나 더 남아 있다. 바로 민주당 ‘원팀’ 구성이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와 과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달 24일 종로구 안국동의 한 찻집에서 만났다. 경선이 끝나고 꼭 2주 만의 회동이었다. 경선 과정에서 깊게 대립하던 두 사람이 만난다는 소식을 듣고, 회동 현장엔 수십 명의 취재진이 몰렸다. 

갈라졌다

‘저렇게 싸워서 원팀이 가능하겠나’란 세간의 우려를 비웃기라도 하듯, 둘은 각자의 발언을 끝마치고 뜨겁게 껴안았다. 명낙대전의 종식과 동시에 민주당 원팀의 출발을 알리는 포옹이었다.

이 전 대표는 이날 미리 준비해온 연설문을 통해 “문재인정부의 성공과 정권 재창출을 위해서 작은 힘이나마 보태겠다”며 “제 지지자분들도 민주당의 정신과 가치를 지키고 이어가야 한다는 대의를 버리지 마시길 호소한다”고 말했다.

그가 말한 “민주당의 정신과 가치”는 경선이 끝난 뒤 ‘원팀’이 되는 일종의 ‘민주당식 선거 관례’를 말한다. 지난 몇 년간 민주당 후보들은 경선 과정에서 아무리 다투었더라도, 최종 후보가 확정되면 한 팀이 되어 당선을 도왔다.


경쟁했던 모든 후보가 선거 캠프에 들어가 대선 운동을 함께하는 것이다. 사실 민주당은 이런 아름다운(?) 전통을 만들어내기까지 수많은 부침을 겪었다.

2002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은 지금의 ‘원팀 정신’을 만들어내는 데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당시 경선도 올해의 ‘명낙대전’ 만큼이나 치열했는데, 이때의 갈등은 경선 후에도 이어지며 대선까지 민주당에 악재로 작용했다. 

그때도 양강구도였다. ‘전통 강호’ 이인제 후보와 ‘다크호스’ 노무현 후보의 대결로, 두 후보는 경선 초중반까지 접전을 펼쳤다.

과거 실패한 시도들 보니…
매번 대선까지 악재로 작용

그러나 훌륭한 연설 솜씨와 막강한 팬덤을 등에 업은 노 후보가 점차 우세해지더니 후반에는 호남 경선을 가져오며 낙승하는 분위기가 됐다.

문제는 전남 경선 직후. 역전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한 이 후보가 경선을 포기했고, 곧바로 당시 상대 대선후보였던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아무리 대선 경선 때 상처를 받았더라도, 패배 후 상대 당의 대선후보를 지지하는 것은 상식 밖의 일이었다. 이는 노 후보 진영에 큰 충격을 주었고, 대권후보로 첫 발을 떼는 노 후보의 시작에 초를 치는 결과를 낳았다.

민주당의 ‘원팀 정신’은 2012년 대선 때도 제대로 발휘되지 못했다. 당시 문재인 대선후보와 극한의 대립하던 손학규, 김두관 후보는 경선 직후 비교적 빠른 시일에 문재인 선대위에 합류하긴 했다.

그러나, 그들은 문 캠프에 적극적인 도움은 주지 않았다. 특히, 손 후보는 두 달간 칩거에 들어갔다가 대선 막판이 돼서야 나타나는 등 미온적인 태도로 일관했다.

또, 문 후보와 단일화에 합의했던 안철수 당시 후보도 대선 운동에 소극적인 행보만 보여줄 뿐, 전체적인 대선 형국에 큰 도움이 되진 못했다.


이 전 대표의 이재명 대선 선거대책위원회 합류는 이 같은 전철을 밟지 않을 수 있을까? 벌써부터 의심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온다.

이-이 일단 손잡는 모양새
선대위원장 아닌 고문으로?

의심의 가장 큰 이유는 이 전 대표가 선대위에서 맡은 직책 때문이다. 다수의 언론들은 당초 이 전 대표가 선대위의 ‘공동 선대위원장’을 맡을 것이라 예상했지만, 그는 ‘상임 고문직’을 맡았다.

선대위 전면에 나서는 선대위원장보다 다소 소극적인 자리가 아니냐는 세간의 평가가 이어졌다. 이에 대해 이 전 대표 측의 오영훈 의원은 CBS와의 인터뷰에서 “이 전 대표가 당 중심, 후보 중심의 선대위가 구성돼야 효율적으로 운영될 수 있다고 판단해 상임 고문직이 적절하다는 판단을 하신 것 같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해명은 미흡했고, 그의 저의를 의심하는 시선은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이 전 대표는 지난달 24일 ‘명낙회동’ 당시 “마음에 남은 상처가 아물도록 당과 지도자들이 앞장서서 노력했으면 한다”고 연설문 끝에 덧붙였다.

이는 마음에 남은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았다는 말로 해석된다.

이 전 대표는 지난달 14일 해단식에서도 비슷한 말을 내놨다. 그는 “제 마음에 조금 맺힌 것이 있었다”며 “동지에게 상처를 주지 마시라”고 언급한 바 있다.

이 전 대표는 당시 이 말을 전하는 주체를 불분명하게 했지만, 사실상 이 후보와 그의 지지자들, 그리고 민주당 지도부에게 하는 소리와 다름없었다.

이 전 대표의 입장이 어떻든 이 후보는 거침없이 원팀을 꾸려나가고 있다. 그는 지난달 27일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을 만나 약 2시간 동안 회동했다. 애당초 계획했던 ‘1시간’보다 1시간이 더 긴 시간이었다. 추 전 장관은 이날 선대위에서 ‘명예선대위원장’으로 일할 것을 약속했다.


명예선대위원장은 중진 다수가 맡을 것으로 예상되는 ‘공동선대위원장’보다는 높고, 민주당 송영길 대표가 맡을 것으로 알려진 ‘상임선대위원장’보다는 아래의 자리다.

추 전 장관 측은 이름만 올려놓는 통상의 공동선대위원장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하겠다는 의지가 담았다.

또 사회대전환 위원회도 실질적으로 운영하고 활동하겠다는 생각이 강하다는 입장도 표명했다. 이 전 대표와 사뭇 다른 적극적인 행보다.

2017년 대선 때 민주당은 ‘원팀 정신’을 유권자들에게 제대로 보여준 바 있다. 경선 승리를 확정 지은 당시 문재인 후보는 경선 직후, 경쟁자였던 안희정 후보와 이재명 후보를 차례대로 만났고, 지지를 요청했다. 안 후보와 이 후보는 당시 기관장 신분이라 선대위 합류는 불가능했지만, ‘원팀’ 정신에는 모두 동의했다.

흩어졌다

한 팀으로 똘똘 뭉친 민주당은 결국 ‘정권교체’라는 대의를 이루어냈다. 이재명 선대위는 이때의 ‘원팀 정신’을 다시 이루기 위해 지금도 바쁘게 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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