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억?' 현실판 산재의 세계

2021.10.05 13:51:38 호수 1343호

죽어도 1억 받을까 말까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서정 기자 = 한 야당 국회의원 아들이 퇴직금으로 보상금을 합한 50억원을 받았다. 대한민국의 평범한 근로자라면, 설사 일하다 죽더라도 받지 못할 돈이다. ‘아빠 찬스’로 두 눈이 실명되고, 팔다리가 잘린 근로자 13명분의 보상금을 합한 돈 만큼의 금액을 퇴직금으로 받은 특별한 1990년생 청년은 대다수 국민에게 분노를 넘어 씁쓸함을 안긴다.



국민의 뜻과 형편을 살피고, 공직사회 기강을 바로잡아야 하는 전직 민정수석들과 초유의 대통령 탄핵을 이끈 ‘정의의 사도’의 행태는 30대 대리의 퇴직금 액수보다 큰 허탈감을 주고 있다.

뿔난 민심

대장동 개발 사업의 실질적 시행사인 화천대유와 그 자회사가 적은 지분으로 수천억원대의 개발 이익을 올린 것을 두고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대장동 게이트가 열리며 정계를 넘어 법조계 인사까지 거론됐다.

그 와중에 화천대유에서 6년 차 대리로 근무하다 퇴직한 무소속 곽상도 의원 아들이 산재위로금 명목의 퇴직금 50억원을 수령받은 사실이 알려지자 코로나19에 지친 국민은 치솟은 집값만큼 열불이 치밀어 올랐다.

바쁘게 돌아가는 대선 일정에 대장동을 향한 여론의 시선이 쏠리자 여야는 연일 진영을 넘어 공세를 퍼부었다. 곽 의원이 물망에 올랐다.


2년 전 곽 의원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과 정경심 동양대 교수와 관련된 허위 또는 위조문서가 22건 이상이라고 주장했다. 곽 의원은 정 교수의 1심과 2심 판결문 및 조 전 장관에 대한 공소장을 근거로 이들 부부가 직접 위조 및 작성한 허위 문서가 22건 이상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조 전 장관의 딸 조민과 아들 조원의 한영외고 생활기록부에 허위 내용을 기재하기 위해 조국·정경심 부부가 직접 위조·허위문서를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이로 인해 여론의 뭇매를 맞은 것은 ‘아빠 찬스’를 쓴 딸 조민이었다.

당시 곽 의원은 “스펙 품앗이가 가능한 연줄과 인맥, 지위를 이용해 기초서류를 입수한 뒤 허위·위조문서를 만들었는데 대단한 문서 위조 실적”이라고 힐난했다. 특히 조민의 단국대 의과학연구소 체험활동 확인서는 아빠 찬스를 써 만들어낸 스펙에 의한 허위 내용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조민씨가 한영외고에 제출한 단국대 의과학연구소의 체험활동 확인서, 공주대 생명공학연구소의 체험활동 확인서, 서울대 공익인권법센터의 인턴십 확인서, 부산 아쿠아펠리스 호텔 실습 수료증 및 인턴십 확인서 등이 ‘허위 스펙’으로 드러났다.

곽상도 아들 위로금
청년들에 큰 허탈감

당시 조국 전 장관 임명을 둘러싼 화살은 ‘아빠 스펙’으로 혜택 본 그의 딸 조민을 향했다. 

서울대 고려대 학생들을 필두로 대한민국의 청년들이 학내 시위를 벌이며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당시 ‘나는 힘들게 들어온 대학을 왜 남은 쉽게 들어왔느냐’는 심리는 ‘공정’을 제1원칙으로 내세운 집권당에 대한 분노로 이어졌다.

과거 이 같은 ‘공정’ 원칙을 내세웠던 곽 의원에게 본인 아들에 대해 ‘남이 하면 불륜, 내가 하면 로맨스’식의 ‘아빠 스펙’을 활용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30대 그의 아들이 약 6년간 대리급 직원으로 일한 대가로 50억원을 받은 것이다.

지나친 퇴직금이라는 여론이 폭발했다. 뿔난 민심에 국민의힘 측은 서둘러 곽 의원과 선을 그었다. 

그러자 사측이 직접 해명에 나섰다. 김만배 화천대유자산관리 대주주는 지난달 27일 서울 용산경찰서에 출석하며 곽 의원 아들에 지급한 50억원 퇴직금에 산업 재해 위로금이 포함돼, 정당한 지급이었음을 주장했다.


화천대유 또한 그가 퇴직할 당시 이사회 의결을 거쳐 질병에 대한 위로금 성격으로 지급된 금액 등이 포함된 액수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곽 의원 아들이 근로복지공단에 산재 신청을 하지 않은 사실이 밝혀져 논란은 가중됐다. 

곽 의원 아들 측에 따르면 그는 지난 2015년 화천대유에 입사했다가 업무 스트레스로 인한 이명과 어지럼증으로 지난 3월에 사직했다. 퇴직금으로 받은 50억원은 회사가 큰 수익을 올리게 된 것과 산재에 따른 것이라고 사측과 같은 입장을 보였다. 

중대재해처벌법에 명시된 중대재해란 ▲사업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했거나 ▲이 사고로 2개월 이상의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가 복수로 발생한 경우 ▲급성중독 등 직업성 질병자가 1년 내 3명 이상 발생한 경우 등을 의미한다. 

월 200만~300만원 30대 직장인
두 눈 실명 시 최고 3억3000만원

전문가들도 기본 퇴직금 5억원에 산재 위로금 등을 감안하더라도 50억원은 과하다는 의견이다.

김광훈 노무법인 신영 HR 대표는 “산재 보상·위로금은 보통 노동 상실률과 정년까지 남은 기간을 고려해 산정된다”며 “노동자가 산재로 젊은 나이에 사망하더라도 몇 억원 수준밖에 나오지 않는다. 곽씨의 경우 현재 정상 생활이 가능한 상태로 보이고 회사 과실이 100%도 아닐 텐데 몇십억원 수준이 지급됐단 것은 일반적이지 않다”고 지적했다. 

실제 월급 200만~300만원을 받는 평범한 30대의 직장인이 근무 중에 양쪽 눈이 모두 다 실명되는 극단적인 경우(1급장해) 최고 3억3000만원 수준의 산업재해 보상금을 받는다. 팔다리가 절단된 상황일 때도 마찬가지다. 신경계나 장기가 완전히 손상돼 평생 간병을 받아야 하는 수준의 장해를 입었을 때도 동일하다.

실제로 곽씨가 받은 약 45억원의 위로금은 이런 수준의 장해를 입은 노동자 13명이 공단에서 받을 수 있는 돈을 모두 합친 것보다 많다.

뿐만 아니라 곽 의원의 아들과 사측은 산재 신고조차 하지 않았다. 지난달 29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임종성 의원이 중부지방고용노동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화천대유가 2015년 설립 이후 지방고용노동관서에 신고한 산재는 단 한 건도 없었다.


산업안전보건법은 사업주가 산재 발생 사실을 은폐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사흘 이상의 휴업이 필요한 산재 등이 발생한 경우 사업주는 한 달 안으로 관할 지방고용노동관서에 산재 신고를 해야 한다.

이에 그들의 주장대로 중대한 재해에 해당 하는 경우임에도 고용노동관서에 신고하지 않았다면 위법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근로복지공단에 따르면, 지난 2018년부터 최근 3년간 통틀어 산재로 장해 등급을 인정받은 근로자는 11만3741명. 그 가운데 1급 장해를 인정받은 사람은 386명으로, 전체 0.3%에 불과했다.

현실은…

임 의원은 “산재 발생 시 사업주의 법적 의무인 산재 신고조차 하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할 때 해당 금품의 성격에 대한 의혹은 더욱 커질 것”이라며 고용노동부의 조사를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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