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를 만나다> 탈영병 잡는 정해인

2021.09.06 14:56:25 호수 1339호

“재입대한 기분, PTSD 느꼈어요”

[일요시사 취재2팀] 함상범 기자 = 말끔한 외모와 부드러운 이미지를 가진 배우 정해인의 무기는 멜로다. 배우 손예진, 한지민 등과 같은 여배우들 사이에서 연하남으로 사랑을 이뤘다. 대중은 그가 만들어낸 멜로를 즐겼다. 그런 정해인이 향한 곳은 여자는커녕 일반인도 찾아보기 힘든 군대다. 넷플릭스 드라마 <D.P.>에서 탈영병을 잡는 헌병대 소속 군무 이탈 체포조 안준호를 연기한다. 계급은 인권 최하위라 할만한 이등병이다. 



국내 군대 영화로 손꼽히는 작품이 윤종빈 감독의 <용서받지 못한 자>다. 윤 감독이 어머니에게 1000만원을 투자받고, 중앙대학교 연극영화과 학생들과 만든 졸업작품이다. 군대를 다녀온 사람이라면 100% 공감되는 대사와 분위기, 군 내 부조리는 수백만 예비역 장병의 심금을 울렸다. 극도의 리얼리즘과 높은 완성도로 칸 영화제로부터 초청을 받기도 했다.

리얼리즘

군 소재 관련 영화 중 탑티어인 <용서받지 못한 자>를 넘을 만한 작품이 나왔다. 넷플릭스 드라마 <D.P.>다. <용서받지 못한 자>에 뒤지지 않는 리얼리즘이 전달된다. 

군 출신이라 하더라도 소수만 경험하는 보직인 헌병대 소속 군무 이탈 체포조(Deserter Pursuit)에 대한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군대 내 익숙함과 생경함이 고루 배합돼있다. 

<D.P.>는 탈영병을 소재로 군 내 부조리를 고발한다. 고발하려는 의지가 보이지는 않지만, 워낙 사실적으로 그려내 더 강하게 와닿는다. 


바닥에다 머리를 박아도 힘겨운데 방탄 헬멧에 머리를 박게 하고, 별것도 아닌 이유로 생트집을 잡아 얼차려를 주는 것은 물론, 폭력도 일상적이다. 못에 머리를 부딪쳐 피가 나야지만 구타를 멈춘다. 때론 성폭력에 가까운 희롱도 서슴지 않는다. 후임을 잡아먹지 못해 한이 서린 귀신이 들린 것 같은 선임의 모든 대사는 언어폭력이다. 

사회에서는 주위 모든 사람에게 인정받고, 사람을 존중할 줄 아는 선한 사람마저도 극도의 분노를 이끌어 광기에 이르게 하는 곳이 군대기도 하다. 이러한 폭력을 막아줄 수 있는 책임자들은 알면서도 모른 척 폭력을 방관한다.

이를 참다 참다 자살을 하거나, 동지들에게 총기를 난사한 사건도 있었다. <D.P.> 내에서 군대의 부조리를 몸소 겪는 이등병 안준호를 정해인이 연기했다. 

“첫 촬영에서 ‘이병 안준호’를 ‘이병 정해인’이라고 했어요. 완벽하게 구현된 내무실 세트와 리얼한 선임들의 연기에 훅 나오더라고요.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라고 해야 하나요. 연기하는 내내 군 생활 때의 모습이 많이 생각났어요. 이등병으로 훈련소 촬영을 할 때도 많은 생각이 들었고요.”

넷플릭스 <D.P.> 주연…세계서 뜨거운 반응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이등병에 집중했어요”

드라마 내내 안준호는 무표정으로 일관한다. 공포가 가득한 내무반에서는 물론 비교적 후임을 편하게 대해주는 한호열(구교환 분) 상병과 체포를 하러 다니는 동안에도 표정 변화가 없다. 자칫 표정 변화로 마음이 읽히면, 각종 가혹행위로 이어지는 것에 대한 방어이기도 하고, 폭력적인 아버지에게서 자라 늘 불편함을 안고 사는 안준호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 무표정이 실제 군인처럼 자연스럽다. 

“연기할 때 이등병이라는 부분에 중점을 뒀어요. 자발적으로 할 수 있는 게 없잖아요. 하는 대답도 정해져 있고요. 사실 재입대가 가장 끔찍하다고 하는데 <D.P.>를 촬영하면서 실제 다시 군 생활을 하는 기분이었어요. 제 기억으로는 이등병 때 저는 많이 긴장했었고 모든 촉각과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는데 그 기억을 계속 돌아봤어요. 그리고 주변 자극이나 새로운 환경, 선임들의 말과 표정을 기민하게 캐치하고 리액션하는 데 더 집중했어요.”

모든 면에서 절제하는 안준호의 캐릭터가 세팅되면서 <D.P.>는 현실성이 높아진다. 작품의 화자인 그가 현실적인 면에서 중심을 잡아주니 리얼리즘이 살아나고, 비교적 색감이 짙은 한호열, 황장수(신승호 분), 조석봉(조현철 분) 등 다른 배우들의 매력도 더 높아졌다.

정해인의 희생이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고, 다른 배우들에게는 소위 ‘따 먹는 배역’을 만들어준 셈이다.

“안준호라는 인물이 이 작품에선 돋보이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저와 한호열의 이야기가 아니라 탈영병들의 이야기잖아요. 어떻게 하면 최대한 표현을 절제하면서 이 인물을 표현할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어요.”


<D.P.>의 배경은 2014년이지만, 군대 부조리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부대 내 폭력 및 가혹행위를 없애고자 하는 노력이 있긴 하나, 완전히 근절되지는 않았다. 지금도 군대를 이탈하는 군인들이 나오고 있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한 번은 갔다 올 수 있어도, 두 번은 절대 갈 수 없는 끔찍한 공간이다. 

군 내 현실을 완벽하게 그려낸 덕분에 요즘 커뮤니티에는 <D.P.> 관련 글로 가득하다. 특히 남성 시청자들은 물론 여성 시청자들의 마음도 훔쳤다. 그뿐만 아니라 해외 팬들 역시 이 드라마를 두고 뜨거운 반응이 나오고 있다. 

후유증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했기 때문에 그런 반응이 나오는 것 같아요. 저도 공개 날짜에 집에서 봤는데 정말 머리가 띵했어요. 목이 메고 답답해서 한숨을 계속 쉬면서 봤어요. 마지막 에피소드는 안타깝고 아프고 여운이 길었고요. 작품을 마치고 후유증이 컸어요. 그래도 많은 분이 좋아해주셔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감독님은 시즌2 대본 집필에 돌입하셨다고 해요. 기쁜 마음으로 대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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