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구동환 기자 = 막장드라마 줄거리보다 더한 사건 전모가 드러났다. 경북 구미의 한 빈집에 6개월 동안 방치됐다가 숨진 3세 여아의 친모가 최초 발견자였던 외할머니로 밝혀졌다. 정작 당사자는 DNA 검사 결과를 부인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친모가 자신이 낳은 딸과 비슷한 시기에 출산 외손녀를 바꿔치기했다는 의혹마저 나오고 있다.
지난 2월10일 경북 구미시 한 빌라에서 끔찍한 사건이 발생했다. 3세 여자아이인 보람양이 숨져 있는 것을 건물 아래층에 있는 외할머니인 석모씨가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집주인은 보람양의 어머니인 김모씨와 연락이 되지 않자 석모씨에게 집 방문을 요청했다. 집을 찾아간 석모씨는 숨진 지 오래된 외손녀 보람양을 발견한 것이다.
3세 여아
반미라 상태
사건이 벌어지기 약 6개월 전 김모씨는 딸을 두고 혼자 8월경에 이사했다. 이후 홀로 버려진 아이가 사망한 것으로 드러났다. 건조하고 밀폐된 곳이었기 때문에 시신이 완전히 부패하지 않아서 반미라 상태로 발견됐다고 보도됐지만, 사실 형태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심하게 부패한 상태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딸과 함께 살았던 김모씨는 몇 달 전 먹을 것도 남기지 않고, 아이만을 집에 내버려 둔 채 다른 곳으로 떠났다. 수사당국은 전기도 끊긴 상황에서 혼자 남겨진 아이가 아사하고, 그로부터 수개월이 지난 뒤 발견된 것으로 추정됐다.
이에 지난달 19일 경찰은 김모씨를 살인, 아동복지법· 아동수당법·영유아보호법 위반 등 4개 혐의를 적용해 구속했다.
김모씨는 진술을 통해 “이사 후 빈집에 아이를 두고 왔다. 아마 죽었을 것”이라며 “전 남편의 아이라 보기 싫었다”고 말했다.
아이가 방치돼 반미라 상태가 될 때까지 몰랐던 것은 석모씨와 김모씨가 서로 왕래를 하지 않은 까닭으로 전해진다. 또 보람양의 울음소리도 들리지 않았기 때문에 석모씨도 아이의 죽음을 몰랐다고 주장하고 있다.
인근 주민들도 아이의 울음소리를 듣지 못했다고 한다. 일각에선 아이가 질병이나 폭행, 상해, 학대 등으로 이미 기력을 잃은 상태였을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있다.
김모씨는 남편과 어린 나이에 아이를 갖고 결혼했다. 지인들에 의하면, 김모씨의 외도로 지난해 4월 이혼했다. 남편과 떨어져 살게 된 김모씨가 아이를 양육하게 된 것이다. 또 김모씨는 지난해 8월 초 딸을 빌라에 남겨둔 채 혼자 재혼할 남성 집으로 이사했다.
당시 한전의 단전 조치로 집에 전기가 공급되지 않았다. 한국전력공사 구미지점에 따르면 A씨가 전기요금 5개월치를 내지 않아 지난해 5월20일 단전 조치를 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김모씨는 혼자 집을 나선 8월 초까지 2개월 반 동안 전기 없이 딸과 함께 생활한 것이다.
지난해 8월 딸만 두고 이사
2개월 동안 전기 없이 생활
빌라 아래층에 친정 부모가 살고 있었지만, 왕래를 전혀 하지 않아 열악한 환경 속에서 생활한 것으로 보인다. 보람양은 제대로 씻지 못하고 영양 공급도 받지 못해 아사 직전의 비참한 모습이었다는 게 경찰 관계자의 설명이다.
지난달 25일 한국전력공사 경북본부에 따르면 지난해 5월경 김씨와 3세 딸아이가 함께 살던 빌라에 전기요금이 3개월간 체납돼 전류제한기를 설치했다. 빌라는 가구당 월평균 1만2000원정도 전기를 사용하는 미니 투룸 형태다.
전류제한기는 사회적 약자를 위해 주택용 전기에 한해, 최소한의 전기를 사용할 수 있도록 660와트(W)의 전기를 제공하는 조치로 흔히 ‘단전’으로 알려져 있다. 한전은 전류제한기 설치 후 곧바로 보건복지부 복지사각지대 발굴시스템에 단전 사실을 알렸으며, 이후 6월과 7월 두 차례 더 연속해서 단전 사실을 전했다.
복지 사각지대 발굴관리시스템은 단전, 단수 등 공공·민관 기관의 빅데이터를 수집, 분석해 복지 지원이 필요할 것으로 예측되는 사회 취약계층을 선제적으로 발굴하고 복지 지원을 돕는 장치다.
하지만 보건복지부에서는 한전이 단전 사실을 알린 지 4개월이 지난 9월에야 해당 자치단체인 구미시에 이런 사실을 ‘행복이음시스템’으로 전달했다. 보건복지부는 2개월에 한 번꼴로 단전 등의 자료를 수집해 해당 지자체에 복지 사각지대 대상자들을 통보하고 있다.
구미시가 김모씨의 가정을 위기 가구로 지정하려고 했지만, 김모씨의 거짓말로 무산됐다. 구미시가 해당 절차에 따라 통보받고 동사무소로 통지했다. 동사무소 공무원이 실태조사를 위해 김모씨 집으로 찾아갔지만 사람이 없어 안내문을 현관문에 붙인 뒤 돌아왔다.
안내문을 본 김모씨는 동사무소에 연락해 “나는 현재 근로소득으로 생활하고 있고 남편도 소득이 있기 때문에 큰 어려움이 없다”고 했다. 이 말을 들은 동사무소 직원들은 간단한 안내만 한 뒤 조사를 마무리했다. 김모씨의 거짓말로 인해 동사무소 직원들이 아이의 상태를 확인하지 않은 것이다.
960만원
수당 챙겨
주위 증언에 따르면 김모씨는 딸이 숨진 채 발견되기 전까지 가족 및 주변인에게 아이와 함께 생활한 것처럼 행동했다고 한다. 그는 최근까지 숨진 딸의 명의로 구미시가 매달 지급하는 양육·아동수당을 받아왔다. 시는 김모씨에게 약 960만원을 지급한 것으로 확인됐다.
또 김모씨의 이상한 행동은 SNS 계정에서도 나왔다. 김모씨가 이사한 지 석 달 후 SNS에 아이 사진을 올린 뒤 “사랑해, 말 좀 잘 들어줘. 제발”이라고 적었다. 신기한 점은 이사한 날 SNS에 게재한 딸 아이 사진을 모두 없앴다가 3개월 뒤에 다시 올렸다는 점이다.
딸을 숨지게 한 혐의로 김모씨와 이를 공모한 석모씨가 경찰에 검거된 후 경찰 조사 과정에서 상황이 상황이 바뀌었다. 외할머니로 알고 있던 석모씨가 보람양의 친모로 밝혀진 것이다.
보람양과 김모씨는 자매지간인 셈이 된 것이다. 이 같은 사실은 숨진 보람양과 구속된 석모씨의 DNA를 검사하는 과정에서 드러났다. 수사당국은 DNA 검사를 주변 인물까지 확대해 숨진 아이와 석모씨 사이에 친자관계가 성립되는 것을 확인했다.
경찰은 애초 외할머니로 알려졌지만 DNA 검사 결과 아이의 친모로 밝혀진 석모씨에 대해 사체유기 미수 혐의를 추가해 검찰에 송치하기로 했다. 석모씨는 끝까지 출산을 부인했지만,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하 국과수)은 석씨가 친모일 확률은 100%에 수렴한다고 밝혔다.
석모씨는 지난 17일 오후 검찰로 넘겨지는 과정에서 ‘숨진 아이가 본인의 딸이 맞느냐’는 질문에 아니다라고 답했다.
석모씨는 ‘DNA 검사 결과가 잘못됐다고 보느냐’는 물음에 기자의 손을 붙잡으며 “제가 아니라고 얘기할 땐, 제발 제 진심을 좀 믿어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저는 아이를 낳은 적이 없다”며 “진짜 낳은 적이 없다”고 강조했다. ‘이 사건에서 잘못한 점이 없느냐’는 물음에도 “네, 없다”며 “정말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와 관련해 국과수는 “유전자 검사 정확도는 케이스마다 조금씩 차이가 날 수 있다”면서도 “이번 경우에는 친자관계 확률이 99.9999% 이상”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국과수는 숨진 여아, 김모씨, 김모씨의 전 남편 등의 유전자 검사에서 친자 관계가 성립하지 않음을 확인했다.
“낳은 적
정말 없다”
국과수는 결과가 너무 황당해서 여러 번 반복 검사를 하고 경찰에 이 같은 사실을 통보했다고 한다. 이에 경찰은 김모씨의 친정어머니인 석씨에게까지 유전자 검사를 확대한 결과, 석모씨가 3세 여아의 친모인 것으로 확인했다. 모근과 구강상피세포 등을 이용하는 DNA 검사 정확도는 99.9%로 알려져 있다.
“아이를 낳은 적이 없다”는 석모씨의 주장이 거짓일 가능성이 높은 이유다.
경찰 관계자는 “정상적 가족 관계가 아니었고, 가족 간 주고받은 휴대전화 문자메시지 등 여러 사안에서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이 많았다”며 “유전자 검사로 결과를 남겨 놓자는 취지에서(석모씨를) 검사했는데 외할머니가 친모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경찰은 석모씨가 보람양의 친모일 것으로 거의 확신하고 있으며 석모씨와 김모씨의 임신과 출산 시기가 비슷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경찰은 석모씨가 자신의 출산 사실을 남편 등에게 감추기 위해 숨진 아이를 손녀로 바꿔치기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숨진 아이의 생물학적 아버지가 누구인지에 대한 궁금증도 커지고 있다.
당초 숨진 아이의 ‘외할아버지’로 알려진 석모씨의 남편은 친부가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석모씨의 출산 경위와 아이를 손녀로 둔갑시킨 이유 등을 조사하면서 숨진 아이의 친부도 찾고 있다. 보람양의 친부를 찾기 위해 친모 석모씨와 관련된 주변 인물 100여명의 DNA 검사에 경찰이 나섰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김모씨가 출산한 아이의 행방은 오리무중이다. 일각에선 또 다른 강력범죄의 가능성마저 제기하고 있다. 자신의 출산 사실을 감추고 숨진 아이를 손녀로 둔갑하는 과정에서 진짜 손녀가 감쪽같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석모씨의 딸 김모씨는 2018년 1월 딸을 출산했다. 경찰은 비슷한 시기 석모씨도 출산한 것으로 보고 있다. 당시 그의 나이 만 48세였다. 전문가들은 폐경기에 가까울수록 출산율이 낮지만, 임신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김동석 대한산부인과의사회장은 “보통 폐경기는 50대 전후지만 생리를 하고 난자가 나올 경우 임신은 가능하다”고 말했다. 산부인과 전문의인 박경동 효성병원 이사장도 “난소 기능만 정상적으로 작동한다면 50세가 넘어서도 임신과 출산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DNA 검사…외할머니가 친모
친모가 딸 바꿔치기 가능성?
석모씨와 남편은 구미시 상모사곡동 빌라에서 함께 살고 있었다. 김모씨가 살던 빌라 위층 집에서 보람양의 시신을 발견했을 때도 두 사람이 함께 갔다.
석씨는 DNA 결과가 나온 뒤에도 “나는 출산한 사실이 없다”며 출산 자체를 부인하고 있다. 하지만 과연 함께 사는 남편에게 과연 9개월 이상 임신과 출산 사실을 숨기는 게 가능한지 의문이 남는다. 물론 남편이 석씨의 임신 사실을 알고 있었는데도 모르는 체 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만약 석모씨가 혼외임신을 했기 때문에 임신·출산 사실을 숨겼다면 남편과의 부부관계를 파탄내지 않으려는 의지가 강했다는 의미다. 그렇더라도 몰래 출산한 아이를 자신의 외손녀와 바꿔치기했다는 것은 이해가 잘 가지 않는 부분이다.
석모씨의 딸 김모씨가 2018년 1월 출산한 사실은 병원 기록과 담당 의사의 증언으로도 확인된다. 그러나 석모씨의 임신·출산과 관련한 병원 기록은 어디서도 확인되지 않았다. 경찰은 아직 석모씨의 병원 기록을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석모씨가 조산원이나 집에서 출산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임신·출산의 전 과정에서 단 한 번도 병원을 이용하지 않는 게 가능할까 하는 의문점도 남는다.
경찰 관계자도 “DNA는 일치하는데 병원 진료기록이 없다니 귀신이 곡할 노릇”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남편이 아닌 남성과의 사이에서 얻은 자식임을 알고 있을 석모씨가 다른 사람 명의의 건강보험으로 병원을 이용했을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김모씨와 그의 전남편이 모두 보람양과 친딸을 구분하지 못했다는 점도 의문이다. 김모씨가 전남편과 헤어진 시점은 지난해 4월쯤으로, 출산 전후인 2018년 1월에는 두 사람이 함께 살았던 때다. 경찰에 따르면 김모씨와 전남편 모두 3세 여아가 숨진 이후에도 자신의 친딸로 알고 있었다.
김모씨의 전 남편은 지난 11일 언론 보도를 보고서야 자신이 ‘처제’를 키웠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으로 전해졌다. 부모가 모두 친자식을 알아보지 못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석모씨는 어떻게 딸을 바꿔치기 했을까. 이에 대해 경찰은 “수사 중인 사안이라서 말할 수 없다”고 밝혔다.
국과수가 진행한 총 4번의 검사에서는 모두 석씨가 보람양 친모라는 결과가 나왔다. 그러나 석모씨의 남편은 친부가 아니었다. 물론 김모씨의 전 남편도 아니었다. 경찰은 석모씨의 내연남으로 추정되는 남성 2명의 DNA도 검사했지만 두 사람 모두 보람양 친부가 아니었다. DNA 검사로는 A양 친모가 석모씨라는 사실만 확인됐을 뿐 친부는 누구인지 아직 확인하지 못했다.
남편도
몰랐을까?
전문가들은 석모씨가 딸을 바꿔치기했다면 그 행동이 일반적인 범죄 심리와 거리감이 있다고 분석했다. 출산 직후 자신의 치욕을 은폐하기 위해 그 아이를 숨지게 하는 사례가 대부분이지, 아이를 바꿔치기하며 상황을 복잡하게 만들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석모씨와 김모씨 두 모녀 모두 일을 저지르고 수습하지 못하는 특성을 보였다”며 “석모씨는 보람양이 친딸이란 사실이 알려진다는 결과 자체를 생각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