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 쑥갓, 가지… 소박한 우리네 밥상의 주인공이자 <식재료 이력서>의 주역들이다. 심심한 맛에 투박한 외모를 가진 이들에게 무슨 이력이 있다는 것일까. 여러 방면의 책을 집필하고 칼럼을 기고해 온 황천우 작가의 남다른 호기심으로 탄생한 작품 <식재료 이력서>엔 ‘사람들이 식품을 그저 맛으로만 먹게 하지 말고 각 식품들의 이면을 들춰내 이야깃거리를 만들어 나름 의미를 주자’는 작가의 발상이 담겨있다. 작가는 이 작품으로 인해 인간이 식품과의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상추
이응희의 작품이다.
萵苣(와거)
상추
萵苣名旣著(와거명기저)
상추 이름 이미 알려져
葱蒜品相齊(총산품상제)
파 마늘과 함께 하네
露葉敷新圃(로엽부신포)
이슬 머금은 잎 새 정원에 퍼졌고
風莖長夏畦(풍경장하휴)
바람에 여름 밭에 줄기 자라네
饁彼盈筐採(엽피영광채)
들밥에 저 광주리에 뜯어 채우고
供賓滿掬携(공빈만국휴)
손님 접대 시 가득 뜯는다네
蒙君能少睡(몽군능소수)
상추로 인해 잠 줄일 수 있으니
耕種趁晨鷄(경종진신계)
파종은 새벽 닭 쫓아야하네
위 작품을 살피면 아이러니한 부분이 있다.
‘蒙君能少睡(몽군능소수)’라는 부분으로, 상추로 인해 잠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이유가 걸작이다. 바로 뒤에 이어진다.
새벽에 파종해야 하기 때문이란다.
그런데 필자도 그렇지만 다수의 사람들은 상추를 먹게 되면 졸음을 느낀다.
그런 이유로 필자는 점심 식사의 경우 야채 특히 상추를 기피한다.
밀려드는 졸음 때문에 그렇다.
그런데 필자만 그런 게 아닌 모양이다.
정약용의 시 중 일부다.
萵苣雖多眠(와거수다면)
상추는 비록 잠 불러오지만
食譜斯有取(식보사유취)
채소류에서 빼놓을 수 없네
졸음을 불러오는 상추와 관련하여 이익의 ‘한거잡영’(閒居雜詠, 한가로이 지내며 여러 가지 사물을 읊은 시가) 중에 등장하는 상추 관련 글을 인용한다.
曾聞麗俗近陶匏(증문려속근도포)
일찍이 고려 풍속 보잘 것 없다 들었는데
生菜旋將熟飯包(생채선장숙반포)
생채로 밥을 싸 먹는 일이었네
萵苣葉圓鹽豉紫(와가엽원염시자)
상추 잎은 둥글고 된장은 자주빛인데
盤需容易出邨庖(반수용이출촌포)
반찬 거리 시골 부엌에서 쉬이 나오네
보잘 것 없는 고려 풍속이라는 부분은 이익의 다른 기록에 의하면 중국 사람들의 말로, 중국 사람들은 상추로 밥 싸먹는 일을 보잘 것 없게 여겼다고 한다.
여하튼 이번에는 한치윤의 <해동역사>에 실려 있는 글을 인용한다.
「고려국의 사신이 오면 수(隋)나라 사람들이 채소의 종자를 구하면서 대가를 몹시 후하게 주었으므로, 이로 인하여 이름을 천금채(千金菜)라고 하였는데, 지금의 상추이다.」
이익과 한치윤의 기록을 살피면 상추가 중국을 통해 전래됐다는 말은 쉽사리 납득하기 힘들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서는 이와 관련해 중국을 통해 전래된 상추가 이 땅에서 개량돼 역 전래됐다고 덧붙이고 있는데 입증할 만한 단서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먹으면 잠 오지만, 정력 강화에 도움
비대하지 않지만 단단… 해독의 제왕
숙주
숙주는 녹두를 시루 같은 그릇에 담아 물을 주어 싹을 낸 나물이다. 숙주나물이나 녹두나물이라 부르기도 한다.
허균의 <성소부부고>를 살펴 보면 숙주나물(豆芽菜, 두아채)과 관련하여 ‘녹두(菉豆)를 좋은 것으로 가려 이틀 밤을 물에 담가 불을 때를 기다려서 새 물로 일어서 말린 다음, 갈자리(蘆席, 노석)에 물을 뿌려 적셔서 땅에 깔고는 그 위에 이 녹두를 가져다 놓고서 젖은 거적으로 덮어두면 그 싹이 저절로 자란다’라고 기록돼 있다.
아울러 숙주나물의 재료인 녹두에 대해 살펴본다. 녹두하면 은연중에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동학난을 주도했던 녹두 장군 전봉준이다.
체격은 비대하지 않았만 녹두처럼 단단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그와 관련된 노래를 감상해보자.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 마라
녹두꽃이 사라지면
청포장수 울고 간다
이 가사에서 새, 파랑새는 왜군을, 녹두밭은 동학농민군을, 청포장수는 백성들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단번에 알 수 있는데, 청포에 대해 잠시 언급해 보자면, 청포(淸泡)는 녹두로 쓴 묵을 의미한다.
그러나 다수의 사람들이 청포를 푸른 색의 도포 혹은 푸른 베로 오해하고 있다.
내친 김에 이응희 작품 녹두(菉豆) 감상해보자.
品物誠微細(품물성미세)
녹두란 품종 너무 작아
難居五穀門(난거오곡문)
오곡 중에 끼기 어렵네
霜中垂玄殼(상중수현각)
서리 내리면 검은 껍질 드리우고
風凄綻綠璠(풍처탄녹번)
바람 차면 녹색 구슬 터지네
烹饅凝白雪(팽만의백설)
만두로 삶으면 흰 눈 의심되고
煎粥擾黃雲(전죽우황운)
죽 끓이면 누런 구름 움직이네
不得爲恒食(부득위항식)
매일 먹는 음식 못되지만
治丹獨樹勳(치단독수훈)
단 다스림에 가장 뛰어나네
마지막 부분에 녹두의 진실이 드러난다.
‘治丹’(치단)으로 말 그대로 ‘단을 다스린다’라는 뜻이다.
돌려 이야기하면 독을 제거하는데 가장 뛰어나다는 말이다.
아마도 이런 이유로 현대의학서 녹두를 해독의 제왕이라 부르는 모양이다.
여하튼 이제 숙주나물로 넘어가보자.
녹두나물을 지칭해 숙주나물이라 칭하는데 이 부분과 관련 조선조 세조 시절 문신인 신숙주(申叔舟)가 거론되기도 한다.
상왕으로 물러난 단종의 복위 과정에서 발생한 사육신 사건 당시 신숙주가 그들을 배신했고, 백성들이 그를 미워하여 나물 이름을 숙주라 했다는 이야기다.
아울러 숙주나물로 만두소를 만들 때 짓이겨서 하기 때문에 신숙주를 이 나물 짓이기듯이 하라는 뜻이 담겨 있다는 이야기다.
완벽하게 와전된 이야기다. 사육신 사건을 사전에 세조에게 고변한 인물은 정창손의 사위 김질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나물 이름을 숙주로 지칭했을까.
필자는 이 대목서 녹두서 발아됐기에 즉 녹두를 숙주(宿主)로 해 탄생한 나물이라 숙주란 명칭이 생겨난 게 아닌가 하는 추측을 해본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