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건국대 ‘임대보증금 임의 사용’ 문제가 국민권익위원회를 거쳐 검찰로 넘어갔다. 2017년 감사원이 교육부 기관운영 감사에서 건국대의 임대보증금 미예치 문제를 지적한 지 3년 만이다.
건국대 임대보증금 임의 사용 문제는 2017년 3월 감사원의 교육부 기관운영 감사를 통해 드러났다. 당시 교육부는 학교법인이 운영하는 수익용 기본재산의 임대보증금에 대한 현황 파악이나 관리를 전혀 하지 않고 있는 상태였다. 그 사이 학교법인들은 교육부의 허가 없이 임대보증금을 마구잡이로 사용했다.
보관용 돈
펑펑 썼다
2010년 6월 교육과학기술부(현 교육부)가 학교법인에 통보한 ‘학교법인 기본재산 관리 안내’(교육부 지침)에 따르면 수익용 기본재산을 임대하고 받은 임대보증금은 반드시 금융기관에 예치한 후 임차인의 임대보증금 상환에 전액 사용해야 한다.
임차인에게 돌려줘야 할 돈을 학교법인서 다른 용도로 사용한 사실이 적발된 것이다.
건국대는 그 규모가 다른 대학들을 압도했다. 건국대가 더클래식500과 건국AMC 등 수익성 부동산을 임대해 얻은 임대보증금 7566억원 중 금융기관에 예치된 돈은 495억원(6.5%)에 불과했다. 7071억원(93.5%)이 다른 곳에 쓰였다는 의미다. 그중 393억원(법인운영비 330억원+기타 62억원)은 건국대가 사용처를 증빙하지 못한 ‘임의 사용액’으로 확인됐다.
교육부는 건국대에 임대보증금 임의 사용액 393억원을 보전조치하라고 통보했다. 건국대는 법인운영 수익, 재산매각 등의 방법으로 2017년 31억원·2018년 83억원·2019년 89억원·2020년 92억원·2021년 96억원 등 5년에 걸쳐 393억원을 보전조치하겠다는 계획을 교육부에 제출했다.
건국대 설립자유가족, 교수협의회 등에서 건국대와 교육부의 조치에 반발했다. 이들은 임의 사용액 393억원뿐만 아니라 건국대가 다른 용도로 쓴 임대보증금 7071억원 전체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건국대학교개혁추진협의회(이하 개혁추진협의회)는 “감사원이 확인한 임대보증금 7071억원의 사용처, 특히 393억원의 사용처는 건국대가 제출한 자료에만 의존해 나온 결과다.
관련 계약서나 금융거래 내역 등을 전혀 확인하지 않았다”며 “임대보증금을 사용하는 과정서 당시 이사장 김경희가 개인적으로 소비한 구체적인 정황이 확인된다. 수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2017년 3월 감사원 감사서 지적
7566억원 중 7071억원 써버렸다
유현경 개혁추진협의회 설립자유가족 대표는 2019년 6월 국회 도서관서 열린 ‘사립대학 비리 해결을 위한 정책토론회’서 ▲임대보증금 임의 사용에 따른 배임 및 횡령 ▲교비전출금 명목 횡령 ▲예치금 미환수에 따른 횡령 및 뇌물 혐의 등을 제보했다.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의 주도로 열린 이날 토론회는 대학 내부 비리를 고발하기 위해 전국서 몰려든 공익제보자들의 성토장이 됐다. 건국대 등 10개 대학의 공익제보자들은 현장서 국민권익위원회(이하 권익위)에 공익제보를 직접 접수했다.
권익위에 접수된 건국대 임대보증금 임의 사용 문제는 지난 12일 대검찰청으로 송부됐다. 문제는 이 과정서 드러난 경찰, 권익위, 교육부의 행태다. 수사기관은 수사를, 관리·감독기관은 관리·감독을 제대로 하지 않은 사실이 드러난 것. 또 6개월 넘게 문제를 들여다본 권익위서도 석연치 않은 부분이 발견됐다.
▲경찰 ‘내사종결’= 권익위는 2019년 12월17일 개혁추진협의회가 신고한 ‘사립대학 전 이사장의 임대보증금 횡령 의혹 등(2019부패492호)’ 사건을 경찰청으로 송부했다. 광진경찰서로 넘어간 사건은 지난 1월말 경 ‘내사종결’ 처리됐다.
권익위에 따르면 광진경찰서는 “조사결과 피신고인의 혐의를 입증할 만한 자료가 없다”는 의견을 냈다.
참고인 이○○의 “임대보증금 횡령 의심 관련은 절대 있을 수 없고, 일부 횡령했다면 교육부와 감사원 감사에서 이미 적발됐을 것”이라는 진술을 언급했다. 임의 사용액 393억원에 대해서도 감사원에서 교육부에 단지 보전조치하도록 통보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전했다.
하지만 <일요시사> 취재 결과 광진경찰서는 신고인은 물론 피신고인에 대한 조사를 한 차례도 하지 않은 채 사건을 종결처리 했다.
광진경찰서 관계자는 “우리 경찰서에서는 수사한 게 없다.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서 수사하고 마무리까지 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 내용과 똑같아 수사한 게 없다”고 밝혔다.
수사 없이
종결 처리
이어 “(권익위서 송부된 사건이)지수대서 수사한 사건 내용과 같다고 보고 받았다”고 거듭 말하면서도 해당 사건 내용에 서로 다른 점이 있는지 기자에게 오히려 반문했다. 또 “지수대서 종결한 사건과 다른 점이 있어야 수사를 하지 않겠나”라고 덧붙였다.
앞서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이하 지수대)는 2018년 10월 건국대 임대보증금 임의 사용 문제 등 비리 의혹에 대한 내사를 벌였다. 하지만 지수대 역시 올해 1월 유 대표와 건국대 전 동문회장을 각각 불러 조사한 이후 사건을 내사종결 처리했다. 유 대표가 또 다른 제보자의 존재에 대해 언급하고 연락처까지 건넸지만 추가 조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오마이뉴스> 보도에 따르면 지수대 관계자는 ‘제보자가 이 사건을 잘 알고 있다고 지목한 관계자도 ‘제보내용이 사실과 다르다’고 출석을 거부했다‘며 ’교육부의 회신, 제보자가 지목한 관계자의 진술 등을 볼 때 횡령 등의 의혹을 제기할 수는 있지만 정식수사나 강제수사로 전환할 정도는 아니라고 봐서 내사종결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일요시사> 취재 결과 당시 유 대표가 언급한 관계자는 “지수대의 연락을 계속 기다렸지만 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지수대 관계자는 “제보자가 언급한 관계자에 대해서는 말해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광진경찰서에서 지수대의 내사종결을 이유로 사건을 종결 처리한 것에 대해서도 “이쪽(지수대)서 입장을 밝힐만한 사안은 아닌 것 같다”고 전했다.
▲권익위 ‘석연치 않은 문서’= 광진경찰서의 내사종결 소식을 들은 개혁추진협의회는 권익위를 찾아 자초지종을 물었다.
개혁추진협의회 관계자는 “광진경찰서 내사종결에 대해 묻는 과정서 A 조사관이 잘못 알고 있는 부분이 있어 자료를 중심으로 설명해줬다”며 “설명을 다 들은 A 조사관은 ‘제보 내용을 다시 검토해 대검에 송부하겠다’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개혁추진협의회에 따르면 A 조사관은 조사 결과에 대한 이의신청 대신 임대보증금 임의 사용액 393억원에 대해서만 다시 권익위에 신고해 달라고 요청했다. 개혁추진협의회는 지난 2월10일 제보서와 관련 자료를 첨부해 권익위 부패심사과로 우편을 보냈다. 우편은 2월11일 권익위에 도착했고, 개혁추진협의회 관계자는 A 조사관이 자료를 받은 사실을 유선을 통해 확인했다.
권익위 3건
제보자 2건
문제는 그 다음이다. 부패심사과로 보낸 제보가 ‘심사기획과’서 종결 처리된 것. 권익위에 따르면 심사기획과는 제보 내용이 형식적 요건을 갖췄는지를 판단하고 제보 내용에 따라 각 과로 전달하는 부서다.
개혁추진협의회는 2월13일, 2월12일 날짜로 사건이 종결처리 됐다는 내용의 공문을 우편으로 받았다. 우편으로 제보 내용을 보내고 하루 만에 엉뚱한 곳에서 사건을 끝냈다는 소식을 듣게 된 것이다. 제보 내용을 우편으로 보내달라고 했던 A 조사관도 모르는 일이었다.
공문에는 ‘귀하가 우리 위원회에 우편으로 제출한 신고사항을 검토한 결과, 감사원서 감사 후 처분요구를 한 사항’이라고 쓰여 있다. 감사원서 처분 요구를 한 사항이니 만큼 문제를 제기하는 것도 감사원에 해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건국대 임대보증금 임의 사용 문제는 감사원의 교육부 기관운영 감사 과정서 제기된 것으로, 감사원은 건국대에 직접적으로 처분 요구를 한 내용이 없다. 보전조치를 통보한 것은 교육부였다.
권익위 대변인실 홍보담당관은 “제보가 3차례에 걸쳐 권익위에 접수됐다”고 해명했다. 2019년 6월 박용진 의원실을 통해 한번, 올해 2월에 우편을 통해 심사기획과에 한번, 3월24일에 부패심사과에 한번, 총 세 번의 제보가 들어갔다는 것.
그러면서 심사기획과서 종결처리한 것은 “형식적 요건을 일단 확인하고, 감사원서 처분한 사항이니까 우리(권익위)가 처리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후 부패심사과서 이 문제를 대검으로 송부한 것에 대해서는 “서류가 보완돼서 접수된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다시 말해 같은 의혹을 두고 어느 부서가 제보 내용을 들여다봤는지에 따라 결과가 다르게 나왔다는 말이다.
하지만 개혁추진협의회는 권익위에 제보한 것은 두 번뿐이라고 못 박았다. 2019년 6월 사학비리 정책토론회 당시 직접 접수한 것과 올해 2월 A 조사관의 요청으로 우편으로 접수한 게 전부라는 주장이다. 또 권익위서 언급한 3월24일에는 권익위에 그 어떤 제보도 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이뿐만 아니라 <일요시사>서 입수한 해당 공문은 개혁추진협의회가 그동안 받았던 권익위 공문과는 사뭇 달랐다. 먼저 컬러가 아니라 복사본처럼 흑백 처리돼있고, 수신 부분에도 이전 공문에서는 ‘미기재 귀하’라고 한 것과는 달리 ‘유현경’(개혁추진협의회 대표)이라는 이름이 수기로 쓰여 있다. 그 옆에는 유 대표의 것으로 보이는 주소도 적혀 있다.
지난해 의원실 통해 권익위 접수
우여곡절 끝에 대검으로 넘어가
▲교육부 ‘여전히 부실한 관리’= 일각에선 건국대 임대보증금 임의 사용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으로 교육부의 부실한 관리·감독을 꼽는다. 교육부는 2017년 3월 감사원의 기관운영 감사 이전 2014년 4월 ‘대학 교육역량 강화시책 추진실태’ 특정감사서도 건국대 임대보증금 문제로 ‘주의’ 조치를 받은 바 있다.
교육부는 2010년 2월 건국대서 신청한 골프장 건설 자금 용도의 기채를 허가했다. 건국대는 850억원 상당의 기채 허가를 신청하면서 수익용 기본재산의 임대보증금으로 상환하겠다고 밝혔다. 임대보증금은 추후 임차인에게 반환해야 할 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교육부는 건국대의 기채 신청을 허가했다.
당시 건국대의 부채비율은 276%로 재무구조가 열악했지만 교육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개혁추진협의회는 “교육부는 2017년 감사 과정서 드러난 문제점에 대해서도 건국대에 관대한 처분을 하고 있다. 허술한 임대보증금 보전조치 계획을 승인해주는가 하면 보전조치에 대한 관리·감독도 없다”고 지적했다.
실제 교육부는 건국대의 임대보증금 임의 사용액 보전조치에 대해 ‘금액’만 확인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구멍난 임대보증금을 메꾸기 위한 학교법인의 재원마련 방법에 대해서는 파악하고 있지 않다.
교육부 관계자는 “매년 건국대서 보전조치를 하겠다고 밝힌 액수의 통장내역 등만 확인한다”며 “어떤 방식으로 보전했는지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고 밝혔다.
2019년 6월18일 박용진 의원이 공개한 ‘사학비리 현황’에 따르면 293개 사립대학이 개교 이래 교육부나 감사원에 적발된 비리 건수는 총 1367건, 비위 금액은 2624억원에 이른다. 박 의원은 “이는 최소한으로 조사된 금액”이라며 “이 자료는 교육부가 각 대학으로부터 자진해서 받은 자료이기 때문에 조사를 제대로 진행하려면 비위 실태는 더 크게 나타날 것”이라고 지적했다.
돈만 맞추면
상관없다고?
실제 건국대는 박 의원실에 자료를 제출하는 과정서 393억원에 대한 언급 없이 ‘비위 사실이 없다’고 말해 허위 제출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한 건국대 교수는 “학교는 문제가 생기면 덮는 데만 급급하다. 임대보증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수년에 걸쳐 학교에 자료를 요구했지만 단 한 번도 받지 못했다”며 “이럴수록 학교는 점점 더 망가져 갈 것”이라고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