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특감반 수사관의 극단적 선택 입체분석

2019.12.09 10:14:15 호수 1248호

모든 걸 놓게 하는 ‘서초동 살기’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벌써 다섯 명째다. ‘청와대 하명 수사 의혹’과 관련해 전직 청와대 특별감찰반 A 검찰 수사관이 검찰 조사를 앞두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최근 3년간 검찰의 주요 수사 중 극단적인 선택을 한 피조사자가 다섯이나 된다. 왜 매번 검찰 조사 과정서 이 같은 일이 반복될까. <일요시사>는 한국형사정책연구원서 발간한 <검찰 수사 중 피조사자의 자살 발생 원인 및 대책연구> 보고서를 토대로 A 수사관의 비극적인 선택을 입체적으로 분석했다. 
 



백원우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 시절 민정비서관실 특별감찰반원으로 근무한 검찰 수사관이 지난 1일 숨진 채 발견됐다. 해당 수사관은 김기현 전 울산시장에 대한 ‘청와대 하명 수사 의혹’과 관련해 이날 서울중앙지검서 참고인 조사를 받을 예정이었다. 검찰과 경찰에 따르면 서울동부지검 A 수사관이 서울 서초구에 있는 지인의 사무실서 숨져 있는 것을 사무실 관계자가 발견했다. 

A 수사관은 민정비서관실에 재직할 당시인 지난해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울산지방경찰청이 김 전 시장 주변의 비위 혐의를 수사한 일과 관련해 불거진 ‘청와대 하명 수사 의혹’에 연루됐다고 지목된 인물이다.

당시 백 전 비서관이 별도로 꾸린 민정비서관실 특감반원들이 울산에 직접 내려가 경찰의 수사 상황을 챙겼다는 의혹이 제기된 상태다. A 수사관은 울산에 내려간 인물로 지목됐고, 앞서 울산지검서 조사도 받았다. 하명 수사 의혹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은 이날 오후 6시 A 수사관을 불러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할 예정이었다.

왜 유독
서울지검?

검찰 조사 중 피조사자가 비극적인 선택을 한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일요시사>는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발간한 보고서 <검찰 수사 중 피조사자의 자살 발생원인 및 대책 연구>를 토대로 A 수사관이 극단적인 선택을 한 과정을 입체적으로 분석했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은 발간사에서 “사회 유력인사에 대한 검찰 특별수사 중 자살은 검찰의 강압수사 및 정치적 목적을 가진 편파수사 등에 대한 논란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 사회적 반향이 매우 크다”고 밝혔다. 

<검찰 수사 중 피조사자의 자살 발생원인 및 대책 연구>에 따르면 2004∼2014년까지 검찰 수사 도중 자살한 사람은 총 83명에 달한다. 해마다 8명 이상이 검찰 조사를 받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셈이다. 

보고서는 검찰 수사 중 일어난 자살 사건을 분석해 3개의 결과를 도출했다. 

첫째, 2004∼2010년까지 한 자릿수를 유지하던 피조사자의 자살 숫자가 2011년 이후 두 자리를 유지하며 증가 추세를 보인다. 해당 보고서는 2007년 6월1일 형사소송법이 개정되면서 피의자에 대한 불구속 수사 원칙이 강화된 이후 피조사자의 자살이 급증한 게 아니냐며 조심스럽게 추론했다. 

둘째, 전국 지검 및 지청 별 피조사자 자살 건수는 한두 명의 오차 범위 내에서 동일하게 분포하고 있었지만, 서울중앙지검·창원지검·대구지검·울산지검의 경우 오차 범위 밖의 많은 피조사자의 자살 사건이 발생했다. 
 

셋째, 검찰 수사 도중 자살하는 피조사자의 경우 공직자 및 사회지도층 인사를 포함한 화이트칼라의 비율이 매우 높게 나타났다. 해당 보고서에서는 ‘그동안 쌓아 온 명예와 자존심에 상처를 입게 되면서 이때 이들이 느끼는 감정은 일반 범죄자들과 일반인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견디기 힘든 스트레스로 작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3년간 수사 중 목숨 끊는 피조사자 5명  
검 문턱만 넘으면…대부분 화이트칼라

또 <검찰 수사 중 피조사자의 자살 발생원인 및 대책 연구> 보고서에서는 검찰 수사 중 피조사 시 자살 원인을 ▲화이트칼라 범죄의 특성 ▲검찰의 수사 압박 ▲언론의 피의사실 보도 ▲정치권력과 관계 등으로 분석했다. 

A 수사관은 서울중앙지검이 수사 중인 청와대 하명 수사 의혹 관련 참고인 조사를 앞두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해당 보고서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서 피조사인의 자살 사건이 가장 많았다. 2004∼2014년까지 서울중앙지검서 18명의 피조사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2015년과 2016년도의 수치를 합하면 극단적인 선택을 한 피조사자는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서울중앙지검이 다른 지검이나 지청과 비교할 때 더 많은 사건을 처리한다는 점은 고려해야 한다. 


이외 최근 3년간 서울중앙지검서 피조사자 자살 사건이 4차례 발생했다. ▲국정원 ‘댓글 수사 방해 의혹’으로 조사 받던 국정원 직원(2017.10.31) ▲국정원 ‘댓글 수사 방해 의혹’으로 조사 받던 현직 검사(2017.11.06) ▲세월호 ‘사찰 의혹’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2018.12.07) ▲조국 전 법무부 장관 가족펀드 의혹 관련 상상인그룹 관계자(2019.11.30) 등이다. 

서울중앙지검에 이어 창원지검 5명, 대구지검과 울산지검 4명, 청주지검과 홍성지청 3명 순인 것으로 나타났다. 앞서 울산지검도 청와대 하명 수사와 관련해 A 수사관을 한 차례 조사했다.

범죄유형 
살펴보니…

검찰이 수사 중인 청와대 하명 의혹은 공직자 및 사회지도층 인사가 포함된 ‘화이트칼라 범죄’에 속한다. 조 전 장관과 백 전 비서관 등 청와대 고위인사들까지 수사 대상에 올랐기 때문이다. 화이트칼라범죄란 존경 받고 높은 사회적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 저지른 범죄를 뜻한다. 이 범죄의 특징 중 하나는 개인적인 비리도 있지만, 대체로 조직 차원서 구조적, 조직적으로 발생한다는 점이다.

해당 보고서에 따르면 검찰 수사 도중 자살하는 피조사자의 경우 공직자 및 사회지도층 인사 등 화이트칼라의 비율이 매우 높게 나타났다. 검찰 수사 도중 피조사자가 자살한 사건을 범죄 유형 별로 살펴보면 횡령배임(25%), 뇌물범죄(21%), 성범죄(15%) 기타(41%) 등이다. 검찰 수사 중 자살한 피조사자의 화이트칼라 비율은 72%에 달했다. 화이트칼라 중 공직자는 27%인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는 검찰 수사 중 화이트칼라 피조사자가 반복적으로 자살한 현상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했다.

‘피조사자가 사회 유력인사거나 사회지도층 등과 같이 사회서 어느 정도 지위가 있고 크게 성공한 경험이 있는 사람일수록 실패와 좌절에 대한 저항력이 매우 약하다. 이 때문에 실패와 좌절에 대한 공포를 더 심하게 느끼고 우울증 등 급성정신장애에 걸릴 위험이 매우 높다. 정신과의의 견해에 따르면 이른바 엘리트들은 작은 실패에도 자신을 쉽게 패배자로 낙인 찍고 현실과 이상의 간극을 좁히지 못한 채 자살이란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엘리트 중년 남성에게서 이런 증상이 많이 나타난다고 한다.’

어떤 식으로
수사하길래?

A 수사관이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에 대해 검찰의 강도 높은 압박 수사 때문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A 수사관은 울산지청서 첫 조사 전 함께 일했던 청와대 행정관에게 “고래고기 사건 때문에 간 건데 왜 부르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검찰 조사 직후 자신이 힘들어질 것 같고 개인적으로 감당해야 할 일인 것 같다고 이야기한 것으로 전해진다. A 수사관 유족들도 경찰에 “그동안 힘들어했다”고 밝혔다. 청와대와 여당 내에선 A씨에 대한 검찰의 별건 수사를 의심하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무리한 먼지털이식 조사
언론 피의사실 공표 때문?

<검찰 수사중 피조사자의 자살 발생원인 및 대책 연구>에 따르면 검찰 수사 과정 인권 침해 시비 문제는 항상 논란의 대상이 됐다. 검찰의 무리한 수사 관행이 피조사자의 자살로 이어질 위험성이 매우 높다고 덧붙였다.

이번 청와대 하명 수사와 관련해 수많은 피의 사실이 쏟아졌다. 연일 검찰의 수사 진행 상황이 실시간으로 언론을 통해 알려졌다. A 수사관이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게 언론을 통해 보도된 오해와 억측 때문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로 이번 사건의 당사자인 청와대와 황운하 대전지방경찰청장과 백 전 비서관은 언론의 의혹 보도에 적극적으로 반박하고 있다. 

보고서는 검찰 수사 중 자살하는 피조사자 사건에 일정한 패턴이 있다고 분석했다. 먼저 사건이 외부로 노출되고, 수사기관 조사와 언론보도를 통해 세상에 알려진다. 이에 대한 관련 당사자들의 해명과 방어의 과정을 거쳐 결국 사건은 사회적 반향을 일으키는 스캔들(Scandal)로 극화(Dramatization)된다. 특히 ‘화이트칼라 범죄는 범죄자에 대한 사회적 신뢰를 깨뜨린 행위란 점에서 그 범죄가 초래하는 사회적 반향이 작지 않다’고 보고서는 밝혔다. 

언론들은
잘못 없나?

언론의 피의사실 공표로 인한 인권침해 문제는 오래전부터 지적돼왔다. 보고서는 ‘범죄와 관련된 언론보도는 강력한 전파력을 가진 매체를 통해 대중에게 전달되기 때문에 범죄 혐의자나 그 가족 등 범죄 관련자들의 인권을 심각하게 침해해 당사자에게 극심한 고통을 주고, 한 번 침해된 인권은 사후에 회복이 불가능하거나 심히 어려운 상황을 초래한다’고 밝혔다.
 

▲ 본 사진은 특정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

또 언론이 범죄에 대해 보도할 때 피의자가 진정한 범인이라는 공식에 따라 일단 ‘피의자로 보도된 자에 대해서는 총체적 비난을 가하는 것이 언론의 보도 태도’ 라며 ‘이런 보도 행태는 범인의 가족 또는 주변 인물에게까지 회복하기 어려운 피해를 입게 한다는 점에서 범죄 보도 오보의 심각성은 더욱 크다’고 지적했다. 

검찰은 ‘청와대 하명 사건’이 대통령 측근과 연관 있다는 의혹을 규명하기 위해 수사에 착수했다. 검찰 수사중 피조사자는 이런 정치적 역학 관계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한다.

<검찰 수사중 피조사자의 자살 발생원인 및 대책 연구>에 따르면 검찰 수사가 정치적인 결단 혹은 통치의 산물 등으로 해석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검찰 수사 과정서 피조사자가 자신의 수사에 대해 이런 인식(‘왜 유독 자신만 처벌받아야 하는지’, 표적수사, 불공정한 수사, 정치적 보복수사, 짜맞추기 수사 등의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이런 상황 인식을 배경으로 자신이 처한 문제 상황에 대해 주관적 의미를 부여하게 된다고 분석했다.

이것이 곧 좌절로 이어져 자살에 이르게 될 수 있다고 보고서는 밝혔다. 

정치권력과
피조사자들

이번 검찰 수사가 정치적 목적 때문에 이루어 진 것이라는 시각도 많다. 청와대 하명 수사는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의 감찰 무마 의혹 수사와도 연장선상에 있다. 당시 민정수석이 조국 전 법무부장관이었기 때문이다. 정치권에선 법무부장관 청문회 과정서 불거진 조 전 장관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이 기소가 어려워지자 사실상 별건 수사를 하려는 게 아니냐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보고서는 검찰 수사중 피조사의 자살 방지 대책으로 ▲화이트칼라 범죄의 특성 이해 및 적정대책 강구 ▲무리한 수사 관행의 개선 및 인권 교육 강화 ▲피의사실공표죄 적용의 현실화 방안 모색 ▲수사공보제도의 개선 등이라고 제시했다. <검찰 수사중 피조사자의 자살 발생 원인 및 대책 연구>의 저자는 보고서에 대해 말을 아꼈다. 익명을 요구한 저자는 “자칫 어느 한쪽 편을 든다는 인상을 줄 수 있으며, 중립적이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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