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광 ‘비리 모자' 이호진-이선애 중형 왜?

2012.02.29 11:14:30 호수 0호

철창 탈출 몸부림 ‘도로아미타불’

[일요시사=박민우 기자] 대형 사건으로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던 재벌그룹 총수들의 잔혹사엔 특별한 패턴이 있다. 일단 구속 후 이런저런 비슷한 과정을 거쳐 결국 풀려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은 달랐다. ‘일단’무사귀환하지 못했다. 호화 변호인단에 휠체어 행보도 모자라 막판에 회장직까지 내던졌지만 ‘철창’에서 빠져나오는데 실패했다.

수백억 회삿돈 횡령·배임 혐의…징역 4년6월 선고
돈 반환, 회장 사임 등 공염불 “건강도 감안 안돼”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에게 실형이 떨어졌다. 서울서부지법 형사11부는 지난 21일 회사 자금을 횡령하고 회사에 손실을 끼친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등)로 기소된 이 전 회장에 대해 징역 4년6월에 벌금 20억원을 선고했다.

이 전 회장은 지난해 1월 무자료 거래와 회계 부정처리, 임금 허위지급 등의 수법으로 회사돈 445억원가량을 횡령한 혐의로 구속기속됐다. 또 골프연습장 헐값 매도 등으로 그룹 측에 975억원의 손해를 끼친 혐의도 받았다.

모친도 징역 4년

앞서 검찰은 이 전 회장에 대해 “태광산업과 대한화섬 주주들에게 손해를 입히고 횡령한 돈을 자신의 유산증자와 세금납부, 보험금 납부 등에 사용했다. 잘못을 진지하게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경영권 확보와 아들의 경영승계에 활용한 것은 물론 그 책임을 임원들에게 돌리고 있다”며 징역 7년에 추징금 70억원을 구형했었다.

공소 내용은 ▲1997년부터 2005년까지 태광산업에서 생산된 섬유제품 빼돌리거나 회계 조작 ▲계열사가 보유한 한국도서보급 주식과 골프연습장을 사주에게 헐값 매각 ▲이 전 회장이 소유한 골프장 건설업체 지원 ▲유선방송업체 티브로드를 이용해 CJ미디어의 채널배정 청탁 대가로 CJ미디어 주식 186만주를 받은 혐의 등이었다.


재판부는 이 회장의 1400억원대 횡령 및 배임 혐의 가운데 횡령 208억원과 배임 582억원을 유죄로 인정하고 나머지에 대해선 유죄임을 증명할 증거가 부족하다며 무죄로 판단했다. 이에 따라 선고량도 검찰 구형에서 절반 정도로 줄어들었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의 유죄 부분 범행은 다수인이 역할을 분담해 조직적으로 이뤄졌고, 장부조작 등의 범행 수법이 불량하다”며 “재판 과정에서 확인된 친전문건의 내용과 법정 진술에 따르면 이 전 회장은 검찰이 제기한 공소사실에 대해 지속적으로 보고받아 인식하고 있었으나, 이를 묵인하고 조장하면서 범죄로 인한 수익을 향유했음이 인정된다”고 판결 이유를 밝혔다.

재판부는 이 전 회장의 모친 이선애 전 태광산업 상무에게도 징역 4년에 벌금 20억원의 중형을 선고했다. 이날 법정구속돼 서울남부구치소에 수감된 이 전 상무는 225억원 횡령 등 ‘태광 비자금’을 실질적으로 조성·관리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의 공동범행은 이 전 상무가 범행을 주도했다”며 “이 전 회장은 가담정도는 낮지만 그룹에서의 지위, 이 전 상무와의 관계 등을 종합하면 이 전 회장이 어쩔 수 없이 가담했다고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번 판결은 사법부가 서민에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반면 재벌에겐 너무 관대하다는 목소리가 높은 와중에 이례적으로 모자 오너에게 동시에 중형을 선고했다는 점에서 시선을 끌고 있다. 이 전 회장은 교도소에서 나오기 위해 ‘바동바동’몸부림쳤지만, 결국 철창신세를 면치 못했다.

이 전 회장 측은 무거운 실형을 피하기 위해 그동안 여러 가지 전략을 구사했다. 우선 국내 최대의 로펌인 김앤장을 변호인으로 선임하는 등 호화 변호인단을 구성해 방어에 나섰다. 재계에선 역대 최강의 ‘드림팀’이 모였다는 얘기가 나돌 정도였다. 그만큼 유명한 변호사들이 이 전 회장 모자를 겹겹이 둘러쌌다.

문제가 된 돈도 변제했다. 이 전 회장 등은 재판을 앞두고 300억원 이상을 태광산업 등에 반환했다. 법조계에선 이를 두고 무거운 형을 피하려는 의도로 보인다는 분석이 나왔다.

막판에 회장직까지 내던졌다. 이 전 회장은 지난 9일 책임을 지고 회장직을 포함한 일체의 지위에서 사임했다. 태광산업 및 대한화섬 대표이사를 포함해 티브로드 홀딩스 등 주요 계열사의 등기임원 등 태광그룹과 관련된 모든 법적 지위에서 물러난 것.

그룹은 “회장단 사임을 출발점으로 앞으로 정도경영과 윤리경영을 실천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강구할 방침”이라며 “능력과 도덕성을 겸비한 인사를 경영진 및 사외이사로 적극 영입하는 방안을 포함해 경영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해 각종 제도개선에 주력하겠다”고 설명했다.

이 전 회장이 돌연 사임하자 업계는 다른 의도가 있는 게 아니냐는 미심쩍은 시선을 보냈다. 선고 공판을 불과 10여일 앞두고 갑자기 사임해 법원의 선처를 겨냥한 고육지책이란 지적이 나왔다.


무엇보다 건강 문제도 소용없었다. 이 회장은 지난해 4월 서울아산병원에서 간암 수술을 받았다. 구속집행정지 상태에서 치료를 받으며 공판 내내 환자복을 입고 휠체어에 앉아 법원을 오갔다. 항상 헝클어진 머리에 면도도 하지 않은 초췌한 모습이었다.

이 전 상무도 휠체어나 이송용 침대에 누운 채 검찰 청사를 출입했다. 태광 측은 이 전 상무가 고령인 데다 뇌졸중을 앓고 있고 대동맥류 수술을 받은 적도 있어 건강이 우려된다고 전했다.

“범행 수법이 불량”

변호인은 건강상의 이유로 두 차례에 걸쳐 이 전 회장의 보석 청구를 냈으나, 법원은 “10년 이상 징역이나 금고에 해당하는 죄이고 증거를 인멸할 우려가 있어 보석을 허가하기 어렵다”며 두 번 모두 기각했다.

1심 재판부의 판단도 다르지 않았다. 변호인은 이 전 회장이 간암 수술 등 건강상의 이유로 감형을 요구했으나, 재판부는 “양형 기준상 집행유예에 해당하지 않는다. 건강상의 사유는 집행 단계에서 고려될 수 있을 뿐 양형에 영향을 미칠 수는 없다”며 “(다만) 3월2일까지인 이 전 회장의 구속집행정지 연장 여부는 의료진의 소견서 등을 검토해 판단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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