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한시 한편 감상해보자. 고려 시대 정지상(鄭知常)의 작품인 ‘송인(送人)’이다.
雨歇長堤草色多(우헐장제초색다)
送君南浦動悲歌(송군남포동비가)
大同江水何時盡(대동강수하시진)
別淚年年添綠波(별루년년첨록파)
비 갠 뒤 긴 제방에 풀빛 푸른데
그대를 남포에서 보내니 슬픈 노래 울리네
대동강 물은 언제나 마르려나
해마다 이별의 눈물 푸른 물결에 더해지네
정지상은 서경(평양) 출신으로 정치인이자 천재 문학가였다. 그는 고려조 인종 시절 묘청과 함께 수도를 개경(개성)서 서경으로 옮길 것을 주장하다 김부식을 중심으로 한 개경 세력과 대립하게 된다.
결국 묘청과 함께 수도 이전을 위해 금나라 정벌을 주장하며 칭제건원(稱帝建元, 국호는 大爲, 년호는 天開)하고 난을 일으켰으나 김부식이 이끄는 개경 세력에 패해 참살된다.
이 시는 정지상이 자신의 고향인 서경의 대동강 유역에 있던 남포(浦, 고려시대 전국의 주요 해변과 강가에 위치해 수로교통의 요충지로 이용되었던 촌락)서 소중한 사람을 보내면서 회한을 풀어낸 시다.
아울러 더 이상 대동강 너머, 즉 개경으로 소중한 사람을 보내고 싶지 않다는 의미도 담겨있다.
이제 시선을 현실로 돌려보자. 문재인 대통령이 제12회 평화와 번영을 위한 제주포럼 개회식에 보낸 영상 기조연설 중 일부다.
“전쟁 위협이 사라진 한반도에 경제가 꽃피우게 하겠다. 남북이 아우르는 경제공동체는 대한민국이 만든 ‘한강의 기적’을 ‘대동강의 기적’으로 확장시켜 세계 경제 지도를 바꾸는 ‘한반도의 기적’을 만들어낼 것이다.”
문 대통령의 언급을 보면 박근혜 전 대통령이 부르짖었던 ‘통일대박’이 은연중 떠오른다. 그야말로 뜬금없이 떠올렸던 통일대박에 대해 당시 필자는 <일요시사> 지면을 통해 그 황당함을 가열하게 몰아세웠었다.
두 가지 이유에서였다. 첫째는 민생경제는 외면하면서 그를 회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한 점이었다. 둘째는 북한의 김정은을 상대로 가정법, 그것도 실현 불가능한 가정법 미래를 언급한 일은 그녀의 정신세계까지 엿볼 수 있었다.
그런데 문재인정권이 들어서기 무섭게 남북 간 전쟁의 위협이 사라졌다고 공언하면서 ‘대동강의 기적’이라는 신조어를 들고 나섰다.
그와 관련 “미국·중국 등 관련국들과 함께 북한을 설득하고 압박해 대화의 장으로 이끌고, 북핵 문제 해결과 남북 및 북·미 관계 개선을 함께 이뤄내겠다”며 “‘외국 역할론’에 기대지 않고 한반도 문제를 대한민국이 주도해나가겠다”는 언급을 덧붙였다.
뜬금없는 ‘대동강의 기적’이란 말도 그렇지만 덧붙인 말 역시 이해되지 않는다. 관련국들과 함께 남북 간 관계를 호전시켜나가겠다는 이야기인지 남과 북의 문제는 우리 스스로 해결하겠다는 의미인지 전혀 납득되지 않는다.
그런 연유로 모두에게 개경서 서경으로 천도를 꿈꾸다 좌절했던 정지상의 시를 인용했던 게다. 혹시라도 함경남도 함흥서 1·4 후퇴 때 실향민으로서 부산에 정착한 문 대통령이 정지상과 같은 생각을 지니고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 말이다.
※ 본 칼럼은 <일요시사>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