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쓸쓸했으면…

2011.04.21 14:25:42 호수 0호

사기꾼 ‘효심공세’에 "그깟 돈이 대수랴"

속고도 “자식보다 낫다” 선처 호소
집에서 받지 못한 정성에 감복해…



서울 은평경찰서는 노인을 속여 건강식품을 비싸게 판다는 첩보에 따라 서울 홍은동의 한 건물을 급습했다.

경찰이 행사장을 촬영하고 현장을 조사하자 한 할머니는 “우리한테 잘해주는 사람들을 왜 잡아가려 하느냐”며 따졌고 다른 노인도 “이 사람들은 아무 잘못이 없다” “나쁜 사람들이 아니다”며 사기꾼 약장수들을 감쌌다.

은평경찰서는 업자 홍모(44)씨 등 6명을 현장에서 검거해 건강기능식품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고 다른 2개 조직의 9명을 더 붙잡아 같은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이들은 지난 2월부터 최근까지 서대문·은평구에서 노인 150∼200명에게 1만∼6만원대 제품을 최대 7배 비싸게 팔아 조직당 340만∼2600만원씩 모두 4940만원을 챙긴 혐의다. 업자들은 칼슘과 비타민 등을 팔면서 “연골이 되살아나고 신경통이 낫는다”며 효과를 과장했다.

이들은 먼저 “좋은 행사가 있다”며 노인들을 한 곳으로 부른 뒤 함께 춤추고 노래하며 흥을 돋웠다. 이어 ‘어머니’라고 부르며 팔다리를 주무르고 아들과 딸에게 받지 못하는 효심공세로 노인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자식 다 소용없다. 어머니 몸은 직접 챙기셔야 한다”며 제품을 소개했으며 대부분의 노인들은 집에서 받지 못한 정성에 감복해 물건을 샀던 것으로 알려졌다.

업자들로부터 건강식품 산 성모(67·여)씨는 “어느 자식이 날 이렇게 위해주나, 그런 생각이 들 정도”라고 말했다. 친구를 따라갔다는 하모(69·여)씨는 “어머니, 어머니 하고 살갑게 대해주니 마음에 위안이 되고 존재감이 생기더라”며 “그 순간만큼은 돈이 문제가 안 된다”고 했다.

경찰은 업자들을 검거하면 노인들이 “잘못한 게 없는 사람들”이라며 선처를 호소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사기꾼을 감싸는 할머니들을 볼 때마다 자식들이 깊이 반성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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