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연재]‘레드모델바’ 김동이 대표의 <여자의 밤을 디자인하는 남자 10>

2010.12.07 10:20:27 호수 0호

동이, 환멸의 선수생활 접다?

전국 20여개 지점을 가지고 있는 국내 최고의 여성전용바인 레드모델바를 모르는 여성은 아마 별로 없을 것이다. 현재 레드모델바는 기존의 어두운 밤 문화의 하나였던 호스트바를 건전하게 바꿔 국내에 정착시킨 유일한 업소로 평가받고 있다. 이곳에 근무하는 꽃미남들만 전국적으로 무려 2천명에 이르고, 여성들의 건전한 도우미로 정착하는데 성공했으며 매일 밤 수많은 여성손님들에게 생활의 즐거움을 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성공의 배경에는 한때 전설의 호빠 선수로로 불리던 김동이 대표의 고군분투가 녹아있다. 그런 그가 자신의 삶과 유흥업소의 창업 이야기를 담은 자서전 <여자의 밤을 디자인하는 남자>를 펴낸다. <일요시사>는 김 대표의 책 발행에 앞서 책 내용을 단독 연재한다.

“병구야, 소주 한잔 하자, 나 정말 미치겠다!”
선수들의 인생…참 험하고 더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엇갈린 사랑
둘은 마치 연인처럼 친근한 사이처럼 보였다.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동이씨, 들어갈래요?”
하지만 그녀의 얼굴에는 약간의 불만이 묻어나왔다. 아무런 연락도 없이 찾아온 나에 대한 불만이었을까. 하지만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나를 집으로 안내했다.
“누구예요? 아까 그 남자?”
“아, 그냥 아는 오빠예요.”
나 역시 당장 그녀에게 뭐라고 할 만한 것은 없었다. 결혼한 사이도 아니고, 그렇다고 공식적인 연인 사이도 아니지 않은가. 하지만 가슴속에서 끓어오르는 그 무언가는 참기 힘들었다. 순간적으로 욕실에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 나름대로의 직감이라고 할까.
욕실에는 수증기의 열기가 남아 있었다. 마치 방금 누군가가 샤워라도 한 듯했다. 욕조 역시 물기가 흥건하게 남아있었다. 은영씨가 했든, 그 남자가 했든 상관 없었다. 남녀가 함께 있으면서 둘 중에 하나라도 샤워를 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입에서 나오는 한숨이 수증기 열기보다 더 뜨거웠다.
밖으로 나오자 은영씨는 소파에 앉아 음료수를 마시며 TV를 보고 있었다.
“은영씨, 저 갈게요.”
그녀 역시 아무 말 없었다. 이제는 더 이상 과거와 같은 나에 대한 호의가 사라진 듯했다. 표정은 차가웠고 눈빛은 냉정했다.
나는 서서히 다시 신발을 신고 문을 나서려는 순간, 물어서는 안 되는 것을 묻고 말았다. 아마도 평상시의 나라면 절대 그런 건 묻지 않았을 것이다. 특히 선수들에게 그런 질문은 쉽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은영씨, 한 가지만 알고 싶어요. 방금 그 사람, 누구예요?”
사실 그녀가 변명이라도 해주기를 바랐다. 내 앞에서 어쩔 줄 몰라 하며 말을 둘러댄다면 나는 그것을 믿으면 그만이었다. 다시 한 번 ‘그냥 아는 오빠’라고, 아니면 ‘친척 오빠’라고 말해도 상관이 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마음은 이제 정리가 된 듯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말이 그녀의 입에서 나왔다.
“스폰서요.”
그 순간 은영씨와 나는 아무런 사이가 아닌 듯했다. 그저 화류계에서 지나가다가 만난 낯선 사람처럼 느껴졌다. 사랑이라는 것은 눈곱 만큼도 개입되어 있지 않은 듯 했다. 은영씨가 나의 가슴을 후비는 말을 했다.
“빚을 갚아준다고 해서요.”
눈물이 핑 돌고 가슴이 아팠다. 그래, 화류계가 바로 이런 데구나. 속고 속이고, 돈이라면 의리도, 사랑도 아무 것도 없는 곳이 바로 이 비정한 화류계구나. 발걸음은 천근만근이었다. 명자씨와의 관계도 은영씨와의 관계도 모두 그렇게 허무하게 끝이 나버리고 말았다. 천국에서 지옥으로, 왕자에서 거지가 되어버렸다. 오랜만에 병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병구야, 소주 한잔 하자, 나 정말 미치겠다!”



■병구의 일본행
소주잔을 앞에 놓고 한동안 아무 말도 없었다. 나보다 훨씬 오랫동안 선수 생활을 한 병구는 뭔가를 눈치 챘는지 녀석도 별 농담도 하지 않고 그렇게 내가 말을 해주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듯 했다. 조금 취기가 오르자 그때부터 오늘 있었던 기묘하고도 허탈한 이야기를 풀어냈다. 그런데 병구가 좀 이상했다. 처음에는 내 말을 기다려주는 의미에서 아무런 말도 없는 듯했다. 그런데 그게 아닌 듯싶었다. 녀석의 얼굴이 시무룩했다.
“그런데, 너 무슨 일 있냐? 오늘 왜 그러냐? 이 친구가 이렇게 험한 꼴을 오늘 하루에 두 번이나 당했는데.”
알고 봤더니 병구도 나만큼이나 심각한 고민을 안고 있었던 듯 했다.
“동이야, 나 일본 간다. 일본에 있는 한국 호스트바 가서 돈 많이 벌어야 돼.”
갑자기 일본이라니.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일본에 ‘한국 호스트바’가 있는지도 처음으로 알았다. 병구의 말에 따르면 일본에는 일본 남성들을 상대하는 한국 술집 여성들이 많다고 했다. 그녀들 역시 호스트바에 가서 남자들을 만나며 스트레스를 푼다고 했다. 병구는 바로 그런 여자들을 상대하기 위해 일본으로 떠나는 것이었다. 그런데 왜 하필 일본일까? 한국에서도 적지 않은 돈을 버는 병구였다.
“아버지가 지금 빚 때문에 도망다니고 계셔. 사업하다가 망하셨거든. 일본은 환율이 높아서 한국보다 훨씬 돈을 더 많이 번대. 이거 아니고는 방법이 없다, 동이야.”
우리네 선수들의 인생살이, 참으로 험하고 더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서 선수하는 것도 모자라 머나먼 타국까지 가야한다니. 병구에게 이야기했다.
“그래, 잘 가라. 우리 언제 다시 만날지 모르겠지만, 일본 가서 돈 열심히 벌고, 스폰도 엄청 땡겨서 네 인생 달라지는 것 좀 보자!”
입가에는 웃음을 머금었지만, 내 가슴은 찢어질 듯 아팠다. 집으로 돌아오며 생각했다.
‘오늘은 정말로 운 더럽게 없는 날이네, 세 명의 사람들이 한꺼번에 나를 떠났잖아’
헛웃음이 나왔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술을 샀다. 어차피 매일 먹는 술, 집에까지 가서 먹을 필요는 없었다. 그래도 그날만큼은 술에 진탕 취하고 싶었다. 어제 먹은 술이 아직 다 깨지도 않은 상태였건만, 술 취한 상태가 아니고서는 도저히 그 순간을 견뎌내기가 쉽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나는 백마담에게 전화를 걸었다.
“백마담형, 저 오늘 못 나갈 것 같아요, 죄송해요.”
하지만 나는 그날부터 호빠에 나가지 않았다. 그리 길지 않은 호빠 생활이었지만 환멸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또 그들과 함께 있다가는 내 인생조차 지리멸렬함을 벗어나지 못할 것 같은 생각도 들었다. 가난해도 참자, 호빠 기웃거리지 말고 열심히 살아보자. 결국 내가 원하는 것은 호빠를 떠나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해서 나는 다시 가난했던 과거의 모델일을 하기 시작했다. 몸은 고달팠지만 명자씨와 은영씨와의 관계 속에서 입었던 상처를 달래기에는 그리 나쁘지 않았다. 내가 계속 호빠를 나갔다면, 밤마다 그녀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팠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하루 종일 열심히 일하고 적은 돈에 만족하는 소박한 일상에서 어느덧 나의 상처는 조금씩 아물어 가고 있었다.

<다음호에 계속>

저작권자 ©일요시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Copyright ©일요시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