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만난 마린보이’ 박태환

2010.11.23 11:47:21 호수 0호

물속에만 들어가면 펄펄…‘마린가이’의 진화는 계속된다

3관왕 등극 위업 달성, 아시안게임 최다 금메달 기록
천식 앓던 약골 소년에서 수영계의 살아있는 전설로

 
마린보이 박태환이 광저우에서 열린 아시안게임 남자 수영에서 3관왕을 달성하는 쾌거를 누렸다. 세차게 물속을 가르던 그의 모습은 ‘물 만난 고기’라는 말 외엔 달리 표현할 방도가 없다.

로마세계선수권 대회에서의 부진한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오히려 베이징올림픽 당시보다 한층 업그레이드된 모습이다. 마린보이에서 이제 ‘마린가이’로 우리 곁에 돌아온 박태환. 그의 진화에 주목해봤다.

마린보이 박태환이 지난 14일 광저우 아오티 아쿠아틱센터에서 열린 남자 자유형 200m 결선에서 아시아 신기록인 1분44초80을 기록하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또 지난 16일 열린 자유형 400m에서도 자신의 최고 기록을 갱신하면서 금메달을 획득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딸 때 세운 당시 아시아 신기록(3분41초 86)을 0.33초 줄였고, 지난 8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어바인에서 열린 팬퍼시픽(범태평양)선수권대회 때 기록한 올해 이 부문 세계 1위 기록(3분44초73)도 갈아치웠다.



‘최고’ 되기까지
숱한 좌절·눈물

이어 열린 17일 자유형 100m 결선에서도 48초70으로 터치패드를 찍으면서 금메달을 손에 넣었다. 이는 컨디션이 가장 좋았던 2008년 제89회 전국체전에서 기록한 자신의 자유형 100m 최고기록이자 개인 최고기록(48초94)도 0.24초나 앞당긴 기록이다.

특히 중장거리를 주로 뛰어온 만큼 금메달은 쉽지 않다는 것이라는 예상을 뒤엎고 차지한 금메달이라 더욱 빛났다. 그리고 지난 18일에 있었던 자유형 1500m에서는 중국의 쑨양에 이어 은메달을 땄다.

이로써 박태환은 2006도하아시안게임에서 또다시 3관왕(자유형 200m, 400m, 1500m)에 이어 3관왕에 등극하는 위업을 달성했다. ‘아시아의 인어’ 최윤희가 가지고 있는 한국 수영 아시안게임 최다 금메달 기록(5개)도 갈아치웠다.

이번 대회를 통해 박태환은 더 이상 아시아에 적수가 없음을 증명했다. 이제 세계 무대에 우뚝 서게 된 박태환. 그가 이 자리에 오르기까지의 이면에는 숱한 좌절과 눈물이 있었다.

박태환이 처음 태극마크를 단 것은 중학교 3학년이던 2004아테네올림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올림픽이라는 큰 무대는 15세 소년이 감당하기엔 너무도 벅찼다. 박태환은 자유형 400m 예선에서 긴장한 탓에 출발 부저가 미처 울리기도 전 물속으로 뛰어들었고, 결국 헤엄도 쳐보지 못한 채 실격 당했다. 어린 박태환은 화장실 문을 잠그고 2시간 동안 서글픈 눈물을 훔쳤다.

그러나 당시 흘린 눈물은 현재 세계 최고 수영선수가 되는 밑거름이 됐다. 눈물을 닦고 피땀을 흘려가며 연습에 매진한 박태환은 이듬해 4월 상하이에서 열린 쇼트코스(25m) 세계선수권대회 자유형 400m와 1500m에서 은메달을 따냈다. 그리고 그해만 무려 8개의 한국 신기록을 쏟아냈다. 특히 2006도하 아시안게임에서는 3관왕에 오르며 대회 MVP로 선정되는 영광을 누렸다. 그가 ‘국민 남동생’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이 때부터였다.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박태환은 2007 멜버른 세계선수권대회를 통해 세계적인 선수로 급부상했다.
자유형 400m에서 세계 최고의 중장거리 스타인 그랜드 해켓(호주)을 누르고 금메달을 차지했으며, 200m에서는 ‘황제’ 마이클 펠프스(미국) 등에 이어 동메달을 따냈다.

폐활량 7000cc
일반인의 2배

미국과 호주 언론은 앞다퉈 박태환의 활약상을 보도했다. 새로운 수영 영웅이 탄생했음을 알렸다. 당시 박태환의 나이는 불과 18세. 미처 성인이 되지도 않은 소년이 세계 수영계를 뒤흔든 것이다. 박태환의 거침없는 행보는 2008베이징올림픽까지도 이어졌다.

400m에서 한국수영 사상 처음으로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걸며 국민적 영웅이 됐다. 200m에서는 펠프스에 이어 은메달을 따냈다. 나중에는 펠프스와도 해볼만하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였다.

그러나 항상 좋은 일만 있던 것은 아니었다. 2009 로마세계선수권대회 400m, 200m, 1500m 세 종목에서 모두 결선진출에 실패하는 충격적인 부진을 겪은 것. 세계최고의 선수가 갑자기 나락으로 떨어지자 국민들과 언론은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 박태환 스스로도 은퇴를 생각할 정도였다. 선수생활의 가장 큰 위기가 찾아온 것.

하지만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박태환의 모습은 달라져 있었다. 레이스 조절 능력은 물론, 좌우 밸런스와 막판 스퍼트 등에서 보여준 모습은 로마가 아닌 베이징 때의 그것이었다. 박태환은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세 차례의 호주·괌 훈련 때 강도 높은 훈련을 통해 자신감을 되찾았다”고 밝힌 적이 있다.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한 듯했다.

2년 전 베이징올림픽 당시의 모습으로 되돌아간 박태환의 신체 비밀은 어디에 있을까. 그것은 바로 폐활량에 있다. 박태환의 최대 폐활량은 7000㏄ 정도다. 이는 보통 사람의 2배에 가까운 수치다. 마라토너 이봉주의 8450㏄와 비교해도 크게 뒤지지 않는다. 또 ‘산소탱크’로 소문난 박지성의 5000㏄나 엄청난 산소섭취량이 필요한 쇼트트랙의 ‘간판’ 이정수의 5140㏄를 크게 앞선다.

로마세계선수권대회 충격적 부진으로 은퇴 생각도
시행착오, 성공의 발판으로 삼아 세계 수영 ‘정복’


박태환이 3관왕을 차지한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은 물론, 남자 자유형 400m에서 우승한 2007년 멜버른 세계선수권대회, 그리고 이듬해 베이징올림픽 등에서 폭발적인 막판 스퍼트를 보여줄 수 있었던 것도 천부적인 폐활량 덕이 컸다.

그러나 박태환은 베이징올림픽을 정점으로 폐활량이 줄었다. 그의 폐활량은 지난해 6300㏄까지 준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부력을 떨어뜨려 경기력에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지난 8월27일 측정한 폐활량은 6820cc였다. 베이징올림픽 직전 측정한 6750cc를 넘어선 것.

대표팀 관계자는 “폐활량은 나이를 먹으면서 자연스럽게 감소하지만, 박태환은 훈련 부족의 영향이 컸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이번 대회 경기를 지켜본 코칭스태프는 “지난해 로마 대회 때는 상체가 자꾸 물에 가라앉는 느낌이었는데 지금은 물 밖으로 드러내놓고 헤엄을 친다”고 설명했다.

또 올림픽대표팀 코치를 두 차례나 맡았던 마이클 볼(호주) 코치를 만나 올해 1월부터 전담 지도를 받으며 기술적 약점들을 보완한 덕분이기도 했다.
볼 코치는 턴 동작과 턴 이후 잠영, 스타트 등에서 기술적인 점들을 가르친 것으로 알려졌다. 볼 코치를 만나기 전까지 박태환의 잠영 거리는 7∼8m 정도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최대 11∼12m까지 늘어났다.

‘자유형 전문가’인 박태환에게 접영 훈련을 적잖게 시킨 건 돌핀킥을 향상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돌핀킥은 잠영 거리에 직접적으로 상당 부분 영향을 미친다.
국제수영연맹이 올 들어 첨단 수영복을 퇴출시킨 것도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과학 도핑’으로 불렸던 전신 수영복을 쓰지 않았기 때문에 경기력에 별 영향이 없었던 것이다.

박태환도 잠시 전신 수영복을 입어봤지만 어깨 부위가 쓸리고 기록 단축 효과도 없어 허리부터 발목까지 덮는 반신 수영복을 입었다. 박태환은 국제수영연맹의 규정에 따라 배꼽 아래에서 무릎 위까지만 덮는 직물 소재 수영복을 입었다.


호주의 마이클 볼 코치는 “예전의 신소재 수영복은 수영을 효율적으로 못하는 선수들을 도와줬다. 박태환은 다르다. 기본기가 탄탄하고 효율적인 수영을 할 줄 아는 선수라 첨단 수영복이 필요 없다”고 말했다.
실제 지난해까지만 해도 전신 수영복을 입었던 박태환의 라이벌 중국의 장린은 기록이 크게 후퇴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박태환이 1년 전과 달라진 점은 수영하는 즐거움을 되찾았다는 것이다.

체육과학연구원 송홍선 박사는 지난해 로마 대회 직후 박태환과 면담한 뒤 “태환이는 이제 수영할 때 즐거운 마음 50%, 의무감 50%라고 하더라”고 밝힌 적이 있다. 지금 박태환은 뚜렷한 목표의식과 함께 즐거운 마음으로 수영하고 있는 것이다. 다소 줄어들었거나 늘어난 신체적인 변화는 둘째 문제라는 것이다.

21살 박태환은
여전히 ‘진화’ 중

어린 시절 천식을 앓던 약골 소년 박태환. 약한 몸을 극복하기 위해 의사의 권유로 수영을 시작하게 됐다. 그리고 그 소년이 성장해 수영 불모지인 한국에서 살아있는 전설로 성장했다.

그리고 이번 아시안게임 남자 수영에서 3관왕을 달성했다. 충분히 만족할 만한 성과지만 21살 박태환은 여전히 성장 중이다. 시행착오를 성공의 발판으로 삼아 세계를 정복했던 박태환. 그가 앞으로 어디까지 ‘진화’할 수 있을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 박태환 프로필

“노다지 메이커”

■학력
2008 단국대학교 체육교육학과 입학
2008 경기고등학교 졸업
2005 대청중학교 졸업
2002 도성초등학교 졸업

■경력사항
2010 제16회 광저우 아시안게임 수영 국가대표
2010 서울학생 7560+ 운동 홍보대사
2009 경기국제보트쇼 및 코리아매치컵 세계요트대회 홍보대사
2009 낙농자조금관리위원회 우유홍보대사
2009 2020 부산 하계올림픽 유치 홍보대사
2009 2014 인천아시안게임 홍보대사
2008 제29회 베이징 올림픽 수영 국가대표
2007 국정홍보처 다이내믹 코리아 홍보대사
2007 대한항공 명예홍보대사
2006 제15회 도하 아시안게임 수영 국가대표
2004 제28회 아테네 올림픽 수영 국가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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