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빈 수레가 요란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이하 새정치연합)은 장관급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송곳 검증을 천명했으나 결국 허상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철저한 검증을 원했던 국민들은 반복되는 ‘부실 청문회’에 큰 실망감을 표출하고 있다. 진정 야당은 야성을 잃은 것일까? <일요시사>에서 지난 일주일간 진행된 부실 청문회 과정을 돌아봤다.
‘속전속결(速戰速決)’ 한 정치전문가는 이번 장관급 후보자 4명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이 네 글자로 답했다. 그만큼 이번 청문회는 빨라도 너무 빨리 처리됐다. 몇몇 정치부 기자들은 “예상과는 달리 청문회가 너무 순조롭게 진행됐다. 야당이 진짜 야성을 잃었는가 보다”라고 평했다. 과정을 지켜본 한 언론사는 ‘현역의원 불사의 법칙’이라고 총평했다.
현역불사 법칙
유기준 해양수산부장관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는 그야말로 전광석화처럼 처리됐다. 지난 9일 청문회가 진행됐는데 당일 오후에 보고서가 채택된 것이다. 헌정사상 이례적인 경우로써 일각에서는 청문회 시작 전에 야당에서 모든 것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청문위원과 후보자가 가족과 같은 대화를 나눠 눈총을 사기도 했다. 새정치연합의 김우남 의원은 유기준 해수부장관 청문회에서 “청심환을 드렸는데 갖고 계시나요?”라고 유 장관에게 물었다. 유 장관이 “예, 갖고 있습니다”라고 답하자 김 의원은 “지금 드세요”라며 권했다. ‘언제부터 여야가 서로를 챙겼냐’ ‘청문회와 맞지 않는 대화였다’라는 비판이 이어졌다.
과거 해수부를 폐지하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한 사실도 지적됐다. 유 장관은 과거 이명박정부 시절 해수부를 폐지하는 내용의 정부조직법을 공동발의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유 장관은 “해수부 폐지는 평소 소신이 아니라, 당시에는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여당안에 찬성했던 것”이라고 해명했다. 몇 년 전 해수부를 폐지하려던 사람이 이제 그 조직의 장관 자리에 오르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총평을 보면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과거 위장전입을 한 사실이 있으나 후보자가 진심으로 유감의 뜻을 밝힌 만큼 장관 직무수행에 큰 문제가 될 것으로 보이지는 않음”이라고 적힌 것이다. 유 장관은 청문회 자리에서 위장전입 두건이 있음을 시인한 바 있다.
유일호 국토교통부장관후보자 청문회는 사과의 연속이었다. 그는 배우자와 장남이 강남 8학군으로 위장전입한 사실을 인정했다. 유 장관은 “배우자와 자녀의 주소 이전 등 과거 저와 가족의 사려 깊지 못한 처사로 인해 국민들께 심려를 끼쳐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다는 말씀 드린다”고 밝혔다.
다운계약서 작성 사실도 인정했다. 서울 성동구 아파트를 5억9900만원에 매입했으나 4억800만원으로 액수를 줄여 신고한 것이다. 이 사실에 대해 유 장관은 “다운계약서를 작성한 것은 맞다”며 “당시 법무사에게 아파트 매매계약 등기업무를 일임한 탓에 직접 꼼꼼히 챙기질 못했다”고 설명했다.
2012년에는 아파트 전셋값을 한 번에 17% 가량 올려 받은 사실도 드러나 자질 면에서 부적격한 것 아니냐는 논란이 인적 있다. 이에 대해 “4년 동안 전셋값을 올리지 않다가 한 번에 올리다 보니 5000만원 가량 올려 받게 됐다”고 해명했다.
유 장관에 대한 총평을 보면 “국토교통 분야 현안에 대응하기엔 전문성이 부족하단 지적이 있었음. 위장전입 등도 부적절한 처신이었다고 지적됐음”이라고 작성됐다. 그러나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그가 장관이 되는 데는 아무런 제약이 되지 못했다.
전문성 낮아도 위장전입해도 무사통과
“우리가 남이가?” 또 ‘현역불사의 법칙’
이 두 장관은 현역의원이라는 점에서 비판에 자유롭지 못하다. 정치평론가들은 현역의원 출신 중에 인사청문회를 통과하지 못한 사례가 없는 점을 비춰 여야 의원들이 서로 봐주기를 하고 있다고 평했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숱한 의혹을 뒤로하고 장관급 자리에 올랐다. 임 위원장은 공직을 떠난 후 발생한 소득에 대해 ‘종합소득세 합산신고’를 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임 위원장은 “평생 공직생활만 하다 보니 종소세 신고를 누락하는 착오가 생겼다. 추후 수정신고를 통해 세금을 추가로 냈다”고 해명했다.
위장전입과 다운계약서도 빠지지 않았다. 임 위원장은 2004년 아파트를 6억7000만원에 매입했으나 2억원으로 낮춰 신고하는 등 다운계약서 작성 사실이 드러났다. 또한 친척 소유의 주택으로 주소지를 옮겼다는 위장전입 의혹이 제기된 바 있다. 임 위원장은 이를 시인하고 유감을 표명했다.
임 위원장에 대한 인사청문보고서 총평을 보면 과연 이번 청문회가 청문회라 말할 수 있는지 궁금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임 위원장에 대해 “도덕성 기준에 미흡하며 금융위원장으로 부적합하다는 의견이 ‘일부’ 있음”이라고 적힌 것이다. 부적합해도 그 의견이 ‘일부’면 금융위원장이 되는 것이냐는 불만의 목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왔다.
홍용표 통일부장관후보자의 청문회 과정은 때 아닌 ‘땜빵’ 논란에 휩싸였다. 청문회가 시작되기 불과 10시간 전에 청문위원을 추가 투입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추가로 투입된 새정치연합 진성준 의원은 개인 SNS를 통해 “고작 하룻밤 준비해서 청문회를 하라니 벼락치기도 이런 날벼락치기가 없다”며 “어쩌다가 ‘5분대기조’ 신세가 되었는지…”라고 한탄했다.
우리가 남이가?
새정치연합의 원내지도부는 일련의 과정을 ‘송곳 검증’을 위한 조치였다고 해명했지만 전문가들은 준비가 부족했던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른 장관후보자와 마찬가지로 홍 후보자 역시 청문회 과정에서 위장전입, 세금탈루, 논문표절 등이 문제로 지적됐다. 특히 위장전입에 대해서 주요 언론들은 4명의 장관급 인사가 모두 한 차례 이상 하는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고 촌평했다.
새정치연합 서영교 원내대변인은 지난 8일 기자들 앞에서 “장관후보자들의 인사청문회는 꽃길이 아니다. 호락호락 넘어갈 수 없다. 국민이 지켜보고 있다”며 “국민의 시각으로 벌써 이 후보자들은 부적격이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그 부적격하다던 인사들이 줄줄이 청문회를 통과해 장관이 됐다. 정치평론가들은 이렇듯 관행과도 같이 반복되는 부실 청문회를 끝내기 위해서는 ‘우리가 남이가?’라며 봐주는 현 국회의원들의 의식부터 바꿔야 한다고 지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