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들 위해 목숨 건 김용래 주택관리공단 노조위원장

2014.10.24 17:41:13 호수 0호

“국회·정부 무시하는 LH 눈도 꿈쩍 안 해요”

[일요시사 취재1팀] 이창근 기자 = 거대 공기업 LH공사의 자회사 죽이기 내막에 대한 <일요시사>의 연속보도 이후 수면 아래 묻혀 있던 주택관리공단의 고난사가 재조명되고 있다. 자회사를 재물 삼아 공기업 개혁에 따른 피해를 최소화하겠다는 LH공사의 노림수 역시 사실상 공개된 셈이다. 자본과 조직규모로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 속에서 터져 나온 주택공단 김용래 위원장의 일갈에는 2000여 주택공단 직원들의 울분과 소명의식이 담겨 있었다.

"원주에 안회택이란 친구가 있어요. 마흔 한 살인데 작년 겨울에 죽었죠. 새벽까지 보일러고치다가 가스에 질식해서. 대구에서 근무하던 정병흔씨는 입주민이 던진 아령에 맞아서 반신불구가 됐고요. 공기업 중에서 가장 터프한 곳이 바로 주택관리공단입니다."



김용래(53) 위원장의 첫 마디는 현장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됐다. 일주일에 사나흘 당직은 기본이고, 추석이나 설 명절을 쉬어 본 사람도 거의 없는 곳. 시설물 대부분이 90년대 초반부터 건축된 터라 난방부터 청소까지 일일이 사람 손을 거쳐야만 되는 일이 지천인 곳이 공공주택 부문이다.

"공단이 효율적"

특히 주택공단이 주로 관리를 맡고 있는 영구임대주택의 임대인은 독거노인이나 소년소녀 가장, 한 부모 가정, 해외노동자, 탈북자 등과 같이 국가의 보살핌이 절실한 사회취약계층이 대부분. 사회에 대한 울분과 분노, 스스로에 대한 좌절을 안고 살면서도 그래도 보다 나은 내일을 위해 하루하루를 이어가는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매년 십여 명은 생활고와 자기비관에 빠져 투신자살을 한다는 것.

"1년 365일 입주민 곁을 떠나지 않고 근무하는 게 우리 주택공단 사람들입니다. 사회에서 소외된 취약계층의 마지막 안전망이 우리 공단인 셈이죠. 그래서 절대 민영화해서는 안 되는 것이고요."

김 위원장은 LH공사가 시도하고 있는 주택공단 업무의 민영화란 곧 사회안전망의 붕괴로 인식하고 있다. 가뜩이나 힘겹게 살아가는 입주민들을 상대로 관리비와 임대료를 독촉하고, 미납이 쌓여 연체하면 곧바로 내보내는 원칙주의와 탁상행정으로 관리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주거복지와 사회안전망 기능은 결코 수익을 기준으로 다룰 영역이 아니라는 것.
 


"공단 직원들은 입주민과 대면접촉이 많아요. 혼자 사는 노인 양반들 말벗도 해주고, 전등까지 갈아줍니다. 아이들 공부도 도와주고. 임대료 밀리는 세대 나오면 사회 각처를 뛰어다니며 온정의 손길을 연결해줍니다. 그러다 보니 각 세대의 숟가락 개수 까지 다 알아요. 우리가 이들에게는 최후의 보루인 셈이죠. 그것 때문에 이 자리를 못 떠나고 있는 것이죠."

입주민들의 아픔과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고 있다는 소명의식. 그것이 주공에 함께 입사했던 LH공사 동료들의 월급이 껑충 뛸 때, 찔끔 오르는 주택공단의 일을 20년 넘게 해 올 수 있었던 동력이라는 것이다.

"주택공단 10년 근무한 직원 연봉이 2700만원입니다. 웬만한 중소기업 연봉보다 낮은 수준이죠. 그런데 LH는 우리가 민간위탁업체보다 약간이라도 많은 게 사실 아니냐고 시비입니다. 민간은 주택관리만 하고, 우리는 주택관리와 임대운영 업무를 다하는데 말입니다. 우습죠. 그러면서 자기들 반성은 안 해요. 평균 연봉 7200만원 받는 사람들이 노력한 결과가 142조원 넘는 부채라니 말 다했죠."

김 위원장은 20년 전 분사 자체가 비극은 아니지만 이후 LH의 처사가 비극으로 만들고 있다고 주장했다. IMF 직후 공기업 혁신 차원에서 실시한 분사가 지금의 귀족 공기업과 천민 공기업으로 나뉜 계기가 됐다는 것이다. 현재 주택공단의 처우수준은 전체 공기업 304개 중 밑에서 세 번째 수준. 반면 주공과 토공의 통합으로 출범한 LH공사는 상위 10% 안에 드는 수준으로 알려졌다.

"분사 당시의 명분은 주공이 건설부분에 주력하고 공단은 임대운영과 관리, 주거복지에 주력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출자는 주공이 했지만 결정은 정부가 해준 거예요. 정부가 LH공사를 통해 재투자한 것이 주택공단입니다. 그것을 LH공사가 '주택공단은 상법상 주식회사다'는 식으로 왜곡하고 있는 겁니다. 듣는 주택공단 입장에서는 어이없고 미칠 노릇이죠."

주택공단 업무 민영화 시 사회안전망 붕괴
"LH는 임대운영 업무 이관 약속 실천해야"

김 위원장이 어이없음을 반복하는 대목이 하나 더 있다. 2002년 노사정위원회와 2009년 LH공사 통합위원회에서 합의한 '공공주택 임대운영기능의 주택공단 이관'에 대한 불이행 부분이다.

"LH는 정부보다 상위기관입니다. 국민보다 강하고요. 그러지 않고서야 정부의 권고나 국회의 주문을 무시할 수 있겠습니까? 이번 국감에서도 임대운영업무를 공단으로 이관하라고 여러 국회의원들이 목소리를 높였지만 까딱도 안 합니다."
 

LH가 임대운영 업무를 이관하지 않으면서 내세운 명분에 대한 이의제기도 있었다. 현재 LH공사는 임대운영 업무를 LH 중심으로 통합하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주장을 펴는 중이다.

"LH 주장은 한마디로 억지죠. 부지매입과 건설은 LH가, 임대운영 및 관리는 주택공단에서 하는 게 효율적입니다. 그게 서로의 전문성을 살리는 길이죠. 정 그렇게 일원화가 중요하다면 분사시킨 주택공단을 다시 재통합하던지요. 그게 아니면 정부와 국회의 권고대로 업무를 공단쪽으로 이관해야 맞습니다."


김 위원장은 LH의 업무이관에 있어 가장 큰 장애물로 'LH의 협소한 인식'을 들었다. 정부의 공기업 정상화 요구를 주택공단의 업무회수와 민영화 추진 등으로 모면하려는 것은 작은 발상이라는 것이다.

"LH는 진정으로 자신들이 노력해야 할 일을 자각해야 합니다. 주공시절 저지른 반칙을 지금이라도 시정해야죠. 해야 할 일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통일이후 북한주민들에 대한 주거 수요를 예측하고 미리 대비해 둬야죠. 조직의 안위가 아니라 국민의 안위를 위해 노력한다면 주택공단도 힘을 보탤 겁니다."

표면 위로 부상한 LH공사와의 전쟁에 임하는 각오도 비장했다. 자본과 조직규모의 열세, 주택공단의 지분 전부를 LH공사가 쥐고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끝까지 투쟁"

"이번에는 다를 겁니다. 걸핏하면 수수료 깎고, 낙하산 인사 보내고, 공공기관인 주택공단 임직원을 하청업체 대하듯 하는 처사를 더 이상 묵과하지 않을 겁니다. 이젠 아예 대놓고 공단 업무를 회수하고 민영화시키겠다는데 더 물러날 곳도 없어요. 우리 공단직원들을 다 죽이고 나서야 민영화가 가능할 겁니다. 두고 보세요. 이번에는 절대 물러서지 않을 겁니다." 

자본금 30조 대 70억, 조직원 1만명 대 2000명. 절대열세의 전쟁에 나서는 김 위원장의 모습에서 영화 <명량> 최민식의 결연한 모습이 오버랩 되고 있다.

"우리에겐 아직도 대의명분과 소명의식, 물러서지 않는 투쟁심이 남아 있습니다."

 

<manchoice@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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