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취재> 공룡 공기업 LH공사 횡포 '제1탄'

2014.09.26 15:35:43 호수 0호

힘없는 '자회사(주택관리공단) 죽이기'

[일요시사 경제2팀] 이창근 기자 = 지난 9월12일, 주택관리공단 이봉형 사장은 경영간부회의를 소집한 뒤 “오늘이 마지막 회의다. 지금 곧 LH공사에 사표를 제출하겠다”는 요지의 발언을 했다. 이어 공단 직원을 통해 모회사인 LH공사에 사표를 전달했다. 이 사건을 두고 일각에서는 “LH공사의 자회사 죽이기 신호탄이 울린 것”이라는 견해가 제기되고 있다.
 



주택관리공단 이봉형 사장은 LH공사에서 30년 이상 재직한 인물로 LH공사 내 핵심보직을 두루 거쳐 이사가 된 후 지난 2012년 8월 자회사인 주택관리공단의 사장으로 부임한 인물이다. 당시 일부 언론에서는 그의 사장 취임을 두고 ‘LH공사의 제 식구 챙기기’, ‘전관예우용 낙하산 인사’라는 시각을 제기하기도 했지만 정작 주택관리공단 직원들 사이에서는 ‘모회사 실세의 영입’이라는 점과 ‘화합을 중시하는 스타일’이라는 것에서 큰 기대와 호응을 얻은 바 있다.

말 못할 속사정은?

실제로 이 사장은 취임 이후 모회사와 자회사 간의 업무계약 조건을 조율하고 투자약속을 받아내는 등 공단 측 입장을 모회사에 관철해내는 역할을 훌륭히 수행해 왔다.

더불어 친정인 LH공사의 부당한 처사, 즉 자회사의 업무 수수료를 삭감이나 자회사의 주택관리업무 영역을 침범하는 행위 등에 거세게 발발하는 공단직원들을 다독이는 역할도 원만히 수행했다. 이 사장에 대해 모회사와 자회사 양측 모두가 긍정적인 평가를 내놓는 배경이다.

따라서 이 사장의 퇴임식은 얼마든지 아름다운 모양새를 취할 수 있었다. 임기도중 비리 사건에 연루된 바도 없고 지난 8월9일부로 임기가 만료된 이상 박수를 받으며 떠나는 일만 남은 상태였다. 더구나 공단의 후임사장이 선정된 상황도 아니기 때문에 서둘러 자리를 떠나야 할 이유도 없다.


입맛대로 골라
눈엣가시 제거

통상적이라면 후임사장이 취임할 때까지 느긋하게 자리를 지키다가 인수인계 후 책상을 비우는 식의 진행인 것이다. 그런 입장에서 이사장이 한사코 ‘사표 제출’이라는 형식을 통해 공단을 떠나려한 것은 나름 말 못할 속사정이 있음을 반증하고 있다.

주택관리공단 측은 임기만료 된 이사장의 사표제출을 ‘LH공사의 압박’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LH공사가 주택관리공단 업무영역 축소 및 민영화 플랜을 짜고 있는데 이 사장이 껄끄러운 나머지 ‘빨리 자리를 비워 달라’는 압박을 가했다는 것이다.

사실 금년 초부터 국회에서는 ‘LH출신인 이 사장이 물러나면 후임사장 인선 없이 이사의 직무대행체제로 운영될 것’이라는 전망이 떠돈 바 있다. 그 배경에는 LH공사가 국회 상임위를 돌면서 ‘임대주택관리, 운영효율화 관련 설명자료’를 배포하고 다닌 행동이 있었다.

이 자료에는 주택관리공단의 기능을 축소 임대주택관리 업무만 남기고, 이 기능 또한 민간부분과 경쟁을 시켜야 한다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필요하다면 LH가 보유한 지분을 매각해 민영화하는 방안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이른바 ‘LH공사의 자회사 죽이기 프로젝트’다.

주택관리공단 사장 사표 두고 뒷말
‘자리 비워 달라’ 윗선 압박 있었나

그리고 이 프로젝트의 본격화 타이밍은 이 사장의 퇴임직후로 알려졌다. 이는 임기 만료가 얼마 남지 않은 이사장의 체면을 배려해서 본격화시점을 잡았다는 분석이다. 대행체제 같은 맥락이다.

섣불리 후임사장을 임명하기보단 공석이나 대행체제로 두는 것이 공단의 반발력을 약화시키는 방안이라는 것이다. 당시의 예측은 ‘임기가 만료된 사장의 사표제출’이라는 사건을 통해 어느 정도 설득력을 갖게 됐다.

더불어 이 사장의 임기가 지난 8월로 만료됨을 알고 있는 LH공사 측이 후임사장 공모와 인선작업을 전혀 진행하지 않고 있는 정황도 하나의 근거가 되고 있다. 주택관리공단 임직원들이 “일련의 과정이 모회사인 LH공사의 자회사 죽이기와 연관돼 있다”고 해석하고 있는 것도 무리가 아닌 것이다.

이에 공단 측은 이 사장 사수 작전에 돌입한 상태다. 향후 회사의 존립 자체가 위협받는 상황이 불가피해 보이는 상황에서 공단의 입장을 대변할 능력을 가진 인물로는 이 사장을 대신할 만한 인물이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공단의 임직원은 물론 노동조합까지도 합세한 ‘이봉형 사장 퇴진반대’ 외침에는 자칫 조직이 없어질 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배어 있다.

공단 측은 이 사장에게도 공단 정관 26조에 의거 ‘임기가 만료됐다 하더라도 후임사장이 취임할 때까지 사장으로서의 권리와 의무가 있다’는 주장을 관철하고 있다.

“몸집 줄이기 싫으니
자회사들 업무 회수”

더불어 “비록 공단이 LH공사의 자회사인 것은 맞지만 분명히 하나의 공공기관이기 때문에 후임 기관장의 선정에 있어 투명한 공모절차와 청와대의 검증을 거친 후 주주총회의 승인을 얻는 과정이 정상적으로 진행되지 않는 한 이봉형 사장을 물러나게 할 수 없다”면서 배수의 진을 친 상태다.

공단의 김용래 노조위원장은 “LH공사는 부채만 142조인 국내 최대의 부실공기업이다. 그래서 어떤 공기업보다 정상화 압박을 심하게 받고 있다. 자신들 몸집을 줄이기 싫으니 자회사인 공단의 업무를 회수하는 편법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LH공사가 공기업 정상화에 대한 국가적 요구를 회피할 작정으로 ‘자회사 죽이기’ 수순을 밟고 있다는 것이다.

LH공사는 이 사장의 사표 문제에 대해 주택관리공단이 너무 확대 해석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그러면서도 후임인사 부분에 대해서는 “아직 구체적인 계획이나 절차를 밟고 있지 않다”는 사실만 확인해 줬다.

자의반 타의반으로 공단의 최후의 보루가 되고 있는 이 사장은 ‘LH공사의 압박설’을 부인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왜 임기만료 상태에서 사표를 제출해야 했는지’에 대한 부분에 대해서는 마땅한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사장님을 지켜라”

LH공사 측이 이 사장에게 ‘9월 15∼17일 중 편한 날을 택해 치르라’고 한 이임식 또한 공단 측의 읍소와 규정준수 요구에 막혀 무산된 상태다.


임기만료 상태로 자리만 지키고 있자니 명분이 없고, 후임사장도 없는 데 자리를 비우자니 공단임직원의 입장이 눈에 밟히는 딜레마 속에서 힘겨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공기업 생활 30년, 명예로운 퇴진을 기대하던 이 사장의 시름이 가을밤을 밝히고 있다.


<manchoice@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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