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 현대중공업 고개 드는 MJ복귀론 막전막후

2014.09.22 10:44:31 호수 0호

‘딱히 할 일도 없는데…’회사 살리기 나설까

[일요시사 경제1팀] 한종해 기자 = 현대중공업이 지난 2분기 사상 최대 규모의 영업 손실을 봤다. 19년간 무파업을 자랑하던 노조는 파업 수순에 돌입했다. 정몽준 전 의원 측근들이 속속 회사로 복귀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정 전 의원의 현대중공업 복귀설이 고개를 들고 있다. 때마침(?) 정 전 의원은 백수 신세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해운업계는 극심한 불황에 빠져들었다. 대부분의 해운사는 수주 물량 감소 여파로 실적 부진을 겪었고, 일부 해운사는 유동성 위기를 맞아 경영난을 겪고 있다. 해운업계의 부진은 관련 산업으로 이어졌다.



세계 1위 현대중
해운 불황에 휘청

그중 조선업계에 미친 영향은 어마어마했다. '세계 최고의 조선 강국'으로 꼽히던 우리나라도 불황의 늪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대한해운, STX팬오션이 차례로 넘어졌고 후발주자인 중국 조선업체가 세계시장에서 우리나라의 입지를 침범하기에 이르렀다.

불황의 파고는 세계 1위 조선업체인 현대중공업까지 덮쳤다. 현대중공업은 사상 최대 적자를 기록했고 19년 무파업 역사까지 깨질 위기에 처했다.

지난달 29일 현대중공업의 2분기 실적이 발표됐다. 금융감독원 공시에 따르면 현대중공업은 올 2분기 매출액 12조8115억원, 영업손실 1조1037억원, 당기순손실 6166억원 등을 기록했다. 매출액은 전 분기 대비 5.2% 감소, 영업손실과 당기순손실은 각각 484%, 578% 급락했다.

당초 증권가가 현대중공업의 영업손실 규모를 250억원 정도로 예측했기 때문에 업계 충격은 더욱 컸다. 


현대중공업은 실적부진의 원인을 조선과 해양플랜트 부문 대형공사의 공정지연과 비용증가에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현대중공업은 지난 2010년 노르웨이에서 수주한 세계 최대 해양설비 골리앗 부유식 원유 생산·저장·하역설비(FPSO)의 생산비용을 처음에는 12억달러(1조2300억원)로 계산했으나 최근 들어 비용추정치는 22억달러(2조5000억원)로 급증했다. 건조에 들어간 뒤 두 차례나 설계가 바뀌면서 인도 시기가 지난해 7월에서 올해 하반기로 변경됐기 때문이다.

지난 2009년 10월 수주한 호주 고르곤 프로젝트도 원래대로라면 지난해 말 종료됐어야 하지만 선주사의 요구사항을 만족시키지 못해 설계 변경을 반복했고 건조 지연으로 이어졌다.

사상 최대 규모 영업손실, 노조 파업 움직임
구원투수 긴급투입…최길선-권오갑 투톱체제

현대삼호중공업이 2012년 수주한 세계 최대 규모급의 반잠수식 시추선도 마찬가지다. 노르웨이 씨드릴사로부터 수주한 이 공사도 선주사의 눈높이에 맞추지 못해 설계 변경이 잦아졌고 공사손실충당금 증가에 한몫했다.

육상플랜트에서도 문제가 이어졌다. 사우디아라비아로부터 수주한 제다 사우스 프로젝트와 슈퀘이크 프로젝트 등은 당초 계획보다 인건비 등 비용이 상승하면서 고스란이 손실로 잡혔다.

현대중공업은 이 같은 플랜트 부문 공사 지연 등으로 올 2분기에만 약 5000억원 규모의 공사손실충당금을 쌓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현대중공업은 19년 동안 이어져온 무파업 역사가 깨지기 직전이다. 현대중공업 노사는 올해 임금 및 단체협상과 관련해 평행선을 긋고 있다.

지난 1987년 설립된 현대중공업노조는 설립해 울산시청을 점거하고 88년에는 128일간 파업을 이어가는 등 강성 기조를 걸었다. 90년에는 골리앗 크레인은 점거하고 농성을 벌였고 94년에는 액화천연가스(LNG)선을 점거하고 농성하는 등 대규모 분규가 발생했다.

엇갈리는 노사
대규모 파업 예고

이러한 과정에서 회사의 매출은 크게 감소했고 수많은 해고자 발생과 임금손실, 노조 내부 갈등 등 피해가 발생했다. '회사가 정말 망할지도 모른다'는 인식이 노동자들 사이에 퍼졌고 노조를 탈퇴하는 조합원들이 크게 증가했다. 이후 95년 첫 무분규 타협에 성공한 현대중공업 노사는 지난해까지 19년 연속 임단협 무분규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웠다.


떨어져나갔던 '강성' 타이틀이 돌아온 것은 지난해 10월 정병모 후보가 노조위원장에 당선되면서부터다. 물밑협상 후 사측 일괄제시를 통해 합의안을 도출해오던 기존 협상관례가 노조에 의해 거부됐고, 노사는 지난 5월14일 처음 접촉한 후 30차례가 넘는 협상을 벌였지만 아직 합의안을 도출하지 못하고 있다.

노사 의견은 극명하다. 노조는 요구하는 사항은 ▲임금 13만2013원(기본급 대비 6.51%) 인상 ▲성과금 250%+추가 ▲호봉승급분 2만300원을 5만원으로 인상 ▲노조 전임자 임금지급 등 50여 가지다.

소유·경영 분리
10년 만에 깨지나

이에 대해 사측은 ▲기본급 3만7000원(호봉승급분 2만3000원 포함) 인상 ▲생산성향상 격려금 300만원 ▲경영목표달성 격려금 200만원 지급 ▲정기상여급 700% 통상임금에 포함 ▲2015년부터 정년 60세 확정 ▲사내 근로복지기금 30억원 및 노조휴양소 건립기금 20억원 출연 등의 협상안을 제시했다.

노조는 쟁의조정시청을 내고 파업 절차에 착수했지만 중앙노동위원회가 '추가교섭의 여지가 있다'는 취지의 조정연장 결정을 내림에 따라 다시 협상을 재개했다. 중노위는 조정기간을 오는 25일까지로 했다. 하지만 노조는 교섭과는 별개로 23일부터 26일까지 나흘간 파업 돌입을 위한 조합원 찬반투표를 진행할 계획이다. 일정대로 노조가 파업에 돌입할 경우 19년 연속 무분규 임단협 타결 기록이 깨진다.

현대중공업은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했다. 위기 극복을 위해 꺼낸 든 첫 번째 카드는 '사장단 인사 단행'이다. 이재성 대표이사 회장을 상담역으로 경질하고 지난달 최길선 현대중공업 회장에 이어 권오갑 현대오일뱅크 사장을 현대중공업 사장으로 내세웠다.

현대중공업은 지난 14일 그룹기획실장 겸 현대중공업 사장에 권오갑 현대오일뱅크 사장을 임명했다. 이로써 권 사장은 지난 2010년 현대오일뱅크 사장으로 자리를 옮긴 지 4년 만에 친정으로 복귀하게 됐다. 권 사장 후임인사로는 문종박 현대오일뱅크 부사장이 내정됐다.
 

권 사장은 내부 소통을 중시하는 인물로 유명하다. 현대오일뱅크 재직 당시 사장업무용 차량인 에쿠스를 직원들의 웨딩카로 제공했고 모친상을 회사에 알리지 않고 조용히 치른 일화가 대표적이다. 2011년에는 국내 대기업 중 처음으로 임직원 급여 1%를 기부하는 문화를 정착시키기도 했으며 현대오일뱅크 사장 시절 2년 연속 임금위임과 단체교섭을 타결했다는 점에서 현대중공업의 노사 갈등 해결에 큰 힘이 될 것으로 분석된다.

권 사장은 지난 16일 사내 인트라넷에 올린 취임사를 통해 "원칙과 기본이라는 '초심'으로 돌아갈 것"이라며 "오직 '일'로 승부하고 '일 잘하는 사람이 제대로 평가받는 회사'로 변화시켜 나가겠다. 학연, 지연, 서열이 아닌 오직 '일'에 근거한 인사를 실시할 것이다. 무사안일과 상황논리만으로 회사를 다니는 사람이 있다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분명히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권 사장은 백사장 지도만으로 선박을 수주한 고 정주영 창업자의 현대중공업 창업 스토리를 언급하면서 위기 극복을 자신한 뒤 "세계 1위라는 명성과 영광은 잠시 내려놓고 노와 사라는 편가르기도 그만두자"며 힘을 모아 줄 것을 당부했다.

현대중공업의 조선·해양·플랜트 부문을 총괄하게 된 최길선 회장은 별도의 취임식 없이 바로 울산으로 내려가 현장 점검에 착수하는 등 위기 극복에 앞장서고 있다. 최 회장은 오랜 기간 조선업계에 종사한 '베테랑'으로 한국 조선사업을 세계 1위로 끌어 올리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고 평가받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이로써 비상경영을 '최길선-권오갑' 투톱 체제하에 돌파해나갈 것으로 보인다. 기존 김외현 회장은 차기 주주총회가 열릴 때까지 대표이사직을 유지하며 현대중공업을 공식적으로 대표하는 역할을 맡을 것으로 예측된다. 

"정몽준, 두고 보지만 않을 것"
어떤 식으로든 '역할론' 주목

현대중공업은 소유와 경영이 분리된 전문경영인 체제가 확립된 대표적 기업으로 분류된다. 대주주는 정몽준 전 의원. 정 전 의원은 부친의 뜻에 따라 82년 31세의 나이에 현대중공업 사장을 맡아 기업인으로 활동하다 88년 3월 13대 총선에서 무소속으로 울산에서 당선, 국회에 입성하면서 경영일선에서 물러났다.

2004년부터는 회사와 관련된 모든 직함을 다 접었다. 현대중공업 지배 구조는 정 전 의원이 현대중공업 지분 10.15%를 보유하고 있다. 또한 현대중공업이 현대삼호중공업 지분 94.9%, 현대삼호중공업이 현대미포조선 지분 45.98%를 보유한 구조로 되어 있다.

하지만 요즘 기류는 다르다. 정 전 의원의 입김이 강해지고 있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업계에서는 현대중공업 대주주인 정몽준 전 새누리당 의원이 회사로 복귀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최 회장과 권 사장이 정 전 의원의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데다 정 전 의원이 현재 처해 있는 상황이 '정치적 백수' 신세이기 때문이다.

권 사장은 정 전 의원의 직계 라인으로 분류된다. 78년 현대중공업에 입사한 권 사장은 2010년 8월 현대오일뱅크 대표이사 사장으로 임명될 때까지 구매, 영업, 관리, 홍보 등 다양한 업무를 두루 섭렵했다. 특히 현대중공업이 사우디 아부다비국영석유투자회사(IPIC)로부터 현대오일뱅크를 인수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특히 권 사장은 현대축구단 단장을 지냈고 현재 한국실업축구연맹 회장과 프로축구연맹 총재를 맡고 있어 축구에 대해 남다른 관심과 애정을 쏟아 왔던 정 전 의원의 신뢰를 받고 있다.

최 회장은 현대중공업 실적 향상의 일등 공신으로 꼽힌다. 72년 현대중공업에 입사해 12년 만인 84년 임원에 오를 정도로 능력을 인정받았다. 현대삼호중공업 대표와 현대미포조선 대표 등 핵심 계열사 요직을 거쳐 2005년 현대중공업 사장직에 올랐다가 2009년 퇴임했다.

두 사람이 전문경영인으로 현대중공업에 합류한 것에 대해 업계에서는 외형상으로는 소유와 분리 원칙을 지킨 것으로 보이지만 사실상 자신의 최측근을 전문경영인으로 내세워 회사 위기를 해결하겠다는 정 전 의원의 의지가 엿보이는 대목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정 전 의원이 현재 '정치적 백수' 신세라는 점도 복귀설에 힘을 보탠다. 정 전 의원은 지난 4월 서울시장에서 낙선한 뒤 '야인'이 됐다. 정치권에서 모습을 숨겼다. 의원 신분도 아니라서 여의도에 모습을 보일 이유도 없었다. 정치 현안에 대한 의견 표명도 자제하고 있다. 지난 8월 허정무 전 국가대표 축구팀 감독으로부터 지목을 받아 '아이스 버킷 챌린지'에 동참하고 같은 달 미국으로 건너가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을 만나 한반도 문제에 전반적인 사항에 대해 논의한 게 알려진 정치적 일정의 전부다.

반대로 기업방문은 잦아졌다. 지난달 말 세계 최대 제약회사인 화이자 미국 뉴욕 본사와 코네티컷 연구소를 방문했으며 지난 15일 중국 방문길에 올라 중국의 대표적 IT기업인 바이두, 레노버, 알리바바 본사 등을 방문했다.

일각에서는 정 전 의원의 영향력 확대가 3세 경영을 위한 준비라는 시각도 있다. 정 전 의원의 장남 기선씨는 지난해 6월 재입사 후 경영수업을 받고 있다. 2009년 재무팀 대리로 현대중공업에 발을 들인 기선씨는 유학을 떠난 뒤 3년 만에 울산 본사 경영기획팀 부장으로 근무를 시작했다.

정치적 행보 ↓
해외기업 방문 ↑

지난해 말 그룹 인사에서는 승진인사에서 제외됐다. 당초 임원 승진이 유력했지만 안팎의 관심으로 인해 제외된 것으로 알려졌다.

기선씨는 그간 나이가 어리고 회사 근무 경력이 짧다는 이유로 경영전반에 나설 수 없었지만 아버지의 측근들이 최전방에 포진한 지금은 다르다. 상황에 따라 기선씨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질 수 있다.

그룹 내 모든 직함을 내려놓은 2004년 이래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정 전 의원과 사상 최대 위기를 맞은 현대중공업이 어떤 방법으로 현 상황을 돌파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han102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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