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사회팀] 이제석 대표를 만나고자 상수역 인근에 위치한 작업실을 찾았다. 조금 허름해 보였지만 회의실은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회의실 의자는 다름 아닌 자동차 시트였다. 소품 하나하나에 독특함이 묻어 있었다. 무엇보다도 이 대표의 꾸밈없는 옷차림새가 그의 진정성을 대변했다.
세계 3대 광고제의 하나인 뉴욕 윈쇼 페스티벌에서 최우수상을 받는 등 국내외 유명 광고제에서 50여개 상을 휩쓴 천재적인 크리에이터 이제석 대표. 그는 기발한 아이디어로 세상을 변화시키고 있다. 최근에는 예술과 광고를 넘나들며 문화예술적인 요소가 가미된 광고로 대중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행복을 위한 광고
최근 서울시청역 지하 출입구에 인권 조각품이 설치됐다. 이를 두고 말이 많았다. 하지만 이 작품은 단순 광고가 아니라 예술적인 부분을 도입한 공익 캠페인 광고였다. 이 대표가 직접 땀 흘려 만든 수작업 작품이었던 것. 그는 문화예술적인 요소가 가미된 공익 캠페인 광고를 통해 사람들의 인식을 변화시키고자 한다.
“공익광고는 삶의 가장 기본적인 행복과 관련돼 있어요. 물리적인 여건은 정부가 사회 인프라를 통해 마련할 수 있지만 정신적인 문제, 인식은 캠페인을 통해 풀 수 있어요. 예를 들어, 물이 필요하면 물을 수입한다? 이건 매우 단적인 생각이에요. 물이 부족하면 물을 아껴야죠. 광고는 이러한 메시지를 상징적으로 전달할 수 있어요.”
이 대표는 기획만 하지 않는다. 현장 작업에 직접 참여한다. 손맛이 들어간 수제의 가치를 알기 때문이다. 열심히 땀 흘린 작품과 그렇지 않은 작품은 아우라 자체가 다르다는 것.
“사람들은 먹는 것도, 입는 것도 수제를 찾잖아요. 보는 것도 수제여야 해요. 이건 진정성의 문제죠. 사람의 체취가 묻어 있는 광고는 확실히 달라요.”
요즘 그가 보여주는 작품은 광고라기보다는 설치미술, 회화, 조화와 가깝기도 하다. ‘광고홍보의 목적을 가진 예술’이라고 볼 수 있다. 실제로 그는 예술을 만드는 광고인인지, 광고를 만드는 예술인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고 한다. 때때로 이 차이에 대한 고민을 하지만 굳이 결론을 내리진 않는다. 그리고 그는 디지털 보다는 ‘아날로그’를 추구한다.
“저도 한때 디지털 매체에 의존한 적이 있었어요. 시대가 변함에 따라 최첨단으로 가야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죠. 하지만 저는 역으로 아날로그적인 부분을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수단적이고 반복적인 광고는 목적적이거나 본질적이지 않기 때문이죠. 진짜 중요한 건 콘텐츠인데 말이죠.”
이 대표는 살아 있는 광고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매체 의존적인 광고는 일회용 광고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좋은 광고 콘텐츠는 알아서 돌고 돌아 인구에 회자된다는 것. 광고의 콘텐츠가 훌륭하면 신문·방송·라디오·스마트폰 등 어떤 매체든 적용이 가능하다고 한다.
“혼자 걸어 다니는 광고가 좋은 광고예요. 아이디어로 승부하는 거죠. 강남스타일만 봐도 알 수 있어요. 콘텐츠가 좋으니까 알아서 퍼지잖아요.”
보수적 틀 깨고 ‘인식의 틀’서 해답 찾아
‘살아있는 광고’ 대중 기억 속에 오래 남아
그렇다면 이 대표의 아이디어는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걸까. 그는 ‘제품’에서 나온다고 말한다. 순수성을 바탕으로 제품을 만든 창작자의 의도를 파악하면 아이디어가 절로 나온다는 것.
“아이디어는 제가 아니라 클라이언트가 갖고 있어요. 즉 제품 속에 아이디어가 내재돼 있는 거죠. 제품을 들여다보면서, 이 제품을 만든 창작자의 의도가 무엇인지, 그 배경을 생각하면 아이디어가 나와요.”
이 대표의 광고는 제품이 주인공이다. 연예인으로 광고하는 것보다 제품중심으로 광고하는 것이 홍보에 더 효율적이라는 것.
“가구 광고면 가구, 과자 광고면 과자가 주인공이 돼야 합니다.”
이제석광고연구소는 인적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유동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프로젝트 시 업계 최고의 전문가들이 모여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흥미로운 건 단 한 번도 광고 경쟁PT에 참가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기존의 형식을 파괴하기 위해서는 광고주로부터 자유로워야 하기 때문이라고. 그간 경쟁PT 없이 수많은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세계적인 명작을 만들었다.
“경직된 조직을 싫어해서 해쳐 모여 식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어요. 프로젝트는 스케일에 따라 몇 달씩 걸리는 경우도 있어요. 철야작업을 할 때도 있죠.”
또한 이제석광고연구소는 부설로 광고연구원을 운영 중이다. 예비 광고인들을 위한 일종의 도제교육이다. 학교 교육과 차별화된 실무교육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경쟁이 치열하다.
“스킬보다는 멘탈을 많이 가르치죠. ‘진정성 있게 장인정신을 갖고, 광고주가 주인이 아닌, 대중이 주인이 될 수 있는 광고를 해라’ 이런 식의 교육을 많이 해요. 그리고 하나의 단순한 광고라도 엄청난 인고의 과정이 필요하다는 걸 깨닫게 해주죠.”
이제석광고연구소는 정부부처, NGO 등과 일을 안 해본 곳이 없을 정도로 많은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그만큼 이 대표의 작품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이 지대하다는 것. 그는 “광고가 사람을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다”고 말한다. 인식이 세상을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단순하게 접근
“사람은 감정적인 동물이에요. 대부분 마음에 의거해 움직이죠. 생각보다 단순하다는 거예요. 그래서 광고도 단순하게 접근해야 합니다. 좋은 인식의 씨앗을 심으면 좋은 결과가 핍니다. 광고가 생각을 바꿀 수 있어요. 제 작품에는 과격한 면도 있지만 이게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심어주죠.”
겉보기엔 단순해 보이는 광고지만 이 대표는 늘 어마어마한 스트레스와 씨름한다. 지금 그의 피땀이 우리 사회의 인식을 조금씩 변화시키고 있다.
이광호 기자 <khlee@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