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기의 시사펀치> 뛰는 국가에 노조도 함께 보조 맞춰야

2026.02.05 08:30:07 호수 0호

정부, 노조, 그리고 로봇·외국인·AI가 바꾸는 한국 산업

이재명정부 출범 이후 한국 사회는 동시에 여러 개의 시간이 움직이고 있다. 금융은 코스피 5000을 넘어선 뒤 새로운 자본 질서로 재편되고 있고, 부동산은 투기 억제라는 강한 규율 속으로 들어가고 있으며, 외교와 산업 전략은 수출과 기술 중심으로 구조를 바꾸고 있다.



이 모든 변화는 하나의 방향을 가리킨다. 한국이 더 이상 과거의 성장 방식으로는 버틸 수 없다는 국가적 판단이다.

이 흐름 속에서 노조의 시각도 함께 움직여야 한다. 산업 구조가 바뀌고 기술이 전환되는데, 노조만 과거의 좌표에 머물 수는 없다. 지금 벌어지는 노조와 정부 사이의 미묘한 긴장은 충돌이 아니라 ‘속도의 차이’에서 비롯된 조정 과정에 가깝다.

정부는 이미 다음 단계의 경제를 보고 있고, 노조는 당장의 생존을 기준으로 판단한다. 이 두 시계가 어긋나면 갈등이 생긴다.

이정부가 보여주는 가장 큰 특징은 회피하지 않는 정치다. 주식시장, 부동산, 산업 정책, 외교까지 모두 기존 이해관계를 정면으로 건드리는 선택을 하고 있다. 그래서 국민은 이정부가 ‘불편한 개혁’도 피하지 않을 것이라는 신뢰를 갖고 있다.

이 신뢰는 노조 문제에서도 작동한다. 노조와 갈등이 있더라도, 결국 국가 전체를 기준으로 결정을 내릴 것이라는 믿음이다.


그 믿음은 노조를 배제하겠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이제 국가는 산업과 노동을 함께 설계해야 하는 단계에 들어섰다. 정부는 더 이상 단순한 중재자가 아니라, 기술·산업·고용을 하나의 구조로 엮는 설계자다. 이 구조 속에서 노조는 보호 대상이 아니라, 함께 규칙을 만드는 공동 주체가 돼야 한다.

이 긴장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 장면이 바로 현대자동차 로봇 논쟁이다.

지난달 29일, 이 대통령은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현대차 노조의 휴머노이드 로봇 도입 반대를 언급하며 “흘러오는 거대한 수레를 피할 수 없다. 어차피 올 세상이면 미리 준비하고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말은 노조를 압박하기 위한 정치적 발언이 아니라, 기술 전환이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지점에 왔다는 현실 인식에 가깝다.

앞서 21일, 현대차 노조는 휴머노이드 로봇 도입에 대해 강하게 반대 입장을 밝혔다. 노사 합의 없는 기술 도입은 받아들일 수 없으며, 일방 추진 시 강경 대응하겠다는 메시지도 나왔다. 이는 단순한 고용불안이 아니라, 기술 도입의 주도권을 누가 쥘 것인가에 대한 구조적 문제다.

로봇이 들어오는 순간 노동의 질서도 다시 짜야 하기 때문이다.

현대차가 1월6일부터 9일까지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기술전시회 CES에서 밝힌 계획은 분명하다.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를 미국 조지아주 공장에 먼저 투입하고, 장기적으로 조립 공정까지 확대하겠다는 구상이다.

글로벌 자동차 산업은 이미 인간과 로봇이 함께 일하는 구조로 이동하고 있으며, 이를 늦추는 기업은 경쟁에서 밀려난다. 기술 도입을 늦춘다고 일자리가 지켜지는 시대는 이미 끝났다.

노조가 느끼는 두려움의 본질은 로봇이 아니라 불확실성이다. 어떤 직무가 사라지고, 어떤 일이 새로 생기며, 누가 재교육을 받고 누가 밀려나는지에 대한 설계가 없을 때 공포가 커진다. 그래서 이 논쟁의 핵심은 “로봇을 막을 것인가”가 아니라 “로봇과 노동의 관계를 누가,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다.

이 지점에서 노조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진다.

이 대통령이 러다이트 운동을 언급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과거 노동자들은 기계를 부쉈지만 기계는 멈추지 않았고, 결국 노동의 성격만 바뀌었다. 주산과 타자기가 사라지고 컴퓨터가 들어왔듯, AI와 로봇 역시 피할 수 없는 진화다. 중요한 것은 속도를 늦추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노동의 위치를 어떻게 재설계하느냐다.


지금은 2026년 2월 초로, 노조가 아직 요구안을 만들고 있는 단계다. 노조의 진짜 시간은 6월부터 시작되는 임금 협상 기간이다. 그 협상 테이블에서 이 정부를 믿을지, 버틸지를 결정하게 된다. 그래서 지금은 싸우는 시간이 아니라 어떤 경제 전망을 기준으로 요구할지를 계산하는 시간이다.

지금 벌어지는 로봇·외국인 노동자·AI 논쟁은 모두 6월 임금 협상을 향한 전초전이다.

외국인 노동자 문제도 이 구조와 정확히 맞물려 있다. 한국은 이미 내국인 노동력만으로 산업을 유지하기 어려운 단계에 들어섰다. 제조업, 건설, 돌봄, 서비스 현장 곳곳에서 인력 부족이 구조적 문제가 되고 있다. 외국인 노동자는 임금을 깎는 대체재가 아니라, 산업이 멈추지 않게 하는 필수 인프라가 됐다.

필자는 최근 한 제조업 간부로부터 현실적인 하소연을 들었다. 그는 “요즘 현장에선 합법적으로 채용된 외국인 노동자까지 노조가 내보내라고 압박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고 토로했다. 법적 비자와 고용 절차를 모두 밟아 일하고 있는 인력인데도 이들을 배제하라는 요구가 나온다는 것이다.

문제는 그렇게 되면 회사가 당장 같은 인원을 내국인으로 채워야 하고, 그 순간 인건비가 지금의 두 배 이상으로 뛴다는 점이다. 그는 “그러면 공장이 버티지 못한다. 노조가 지키려는 일자리 자체가 사라질 수 있다”며 깊은 위기감을 털어놨다.

노조가 외국인 노동자를 배제하는 대신 함께 일할 규칙을 만드는 쪽으로 나아갈수록 노조의 힘은 오히려 커진다. 임금 체계, 근로 조건, 안전 기준을 노조가 주도적으로 설계하면 노동시장의 질서도 지켜진다. 닫는 전략보다 여는 전략이 더 많은 영향력을 만들어내는 시대다.

이정부는 지금 금융과 부동산, 외교와 산업에서 기존의 이해관계를 재배치하며 국가 운영 방식을 바꾸고 있다. 노동 문제 역시 그 큰 틀 속에서 다뤄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국민은 노조와의 마찰이 있더라도 정부의 조정 능력을 더 신뢰하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 이는 노조를 불신해서가 아니라, 국가 설계에 대한 기대 때문이다.

노조는 이정부를 만드는 데도 큰 역할을 했다. 조직된 노동의 힘과 현장의 표심이 정권교체의 중요한 동력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는 이정부가 성공하도록 함께 책임을 지는 단계로 이동해야 한다. 권력을 만든 주체는 그 권력이 제대로 작동하도록 도울 권리와 의무를 동시에 가진다.

이 대통령이 AI와 로봇의 시대를 언급하며 기본사회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생산성이 기계로 이동할수록 인간 노동은 재분배와 재설계의 대상이 된다. 기본사회는 베풀어주는 복지가 아니라 기술 시대에 필요한 새로운 사회 안전망이다. 노동이 기술과 함께 살아남기 위한 제도적 토대다.


정부가 성공하면 산업이 살아나고, 산업이 살아나면 일자리가 늘어난다. 이 연결고리는 결국 노동자의 삶으로 돌아온다. 노조가 정부를 적이 아니라 공동 설계자로 인식할수록, 노조의 정치적 영향력은 오히려 커진다. 지금 필요한 것은 투쟁의 구호가 아니라, 함께 그리는 설계다.

노조가 스스로를 변화의 브레이크가 아니라 변화의 조정자로 자리매김하는 순간 사회의 인식도 달라진다. 노조가 강성이 아니라 책임 있는 파트너로 보일 때 발언권은 더 커진다. 현대차의 로봇, 외국인 노동자의 제도화, AI 기반 산업 전환은 그 시험대다.

이정부는 이미 개혁의 시간표 위에 올라서 있다. 그 흐름 속에서 노조가 함께 방향을 잡아줄 때 변화는 충돌이 아니라 진화가 된다. 이정부 탄생에 도움을 줬던 노조가 이정부를 성공시키는 노조로 거듭날 때, 한국의 노동은 비로소 미래를 갖게 된다.

그러나 이 모든 전제가 성립하려면 하나의 조건이 필요하다. 노조 스스로의 자정과 양보가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 정부가 산업 전환과 국가 전략을 밀어붙일 수 있으려면, 노조가 단기 이해관계를 내려놓고 중장기 국가 설계에 동참해야 한다.

그래야 이정부가 국민으로부터 개혁 정부로 박수를 받을 수 있고, 노조 역시 변화의 발목을 잡는 세력이 아니라 미래를 함께 만드는 새로운 파트너로 인식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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