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호 교수의 대중 범죄학> 친밀한 관계 폭력

  • 이윤호 교수
2025.12.22 09:54:26 호수 1563호

사회적 관심과 경찰을 비롯한 사법기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데이트폭력, 이별 범죄, 가정폭력, 스토킹 등 다양한 유형의 가까운 관계에서 발생하는 폭력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실제 경찰 자료에 따르면, 이 같은 친밀한 관계 폭력으로 경찰의 안전조치를 받은 피해자가 2020년 이후 5년 동안 무려 5배나 폭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서 더 심각한 것은 이 친밀한 관계 폭력 10건 중 9건의 피해자가 여성이라는 사실이다.

상대적으로 힘과 권력의 우위에 있는 남성이 취약한 여성에게 가하는 폭력이라는 점에서 그 패해가 더 심각하다.

우리가 이런 유형의 범죄를 특별히 우려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용어가 말해주듯 친밀한, 가까운 관계이자 믿고 있는 사람으로부터의 폭력은 모르는 사람으로부터의 폭력보다 더 심각한 배신감과 상처를 남기기 마련이다.

가장 안전해야 할 가정이, 자신의 지지자, 보호자로 믿고 있었던 사람이 가장 위험한 장소, 사람이 되는 현실 앞에서 그 피해자는 몸과 마음 모두에 깊은 상처를 남기게 된다.

미국 질병통제센터(CDC)에서도 친밀한 관계의 폭력은 피해자에게 건강과 기회를 빼앗고 평생에 걸쳐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고 경고하고 있다. 친밀한 관계 폭력은 단순한 폭력과 형사사법의 문제 대상이 아니라, 이제는 심각하고 중요한 공중보건의 문제요, 쟁점으로 다루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형사사법의 실무적으로, 범죄학적인 측면에서는 친밀한 관계 폭력이 주로 로맨틱 관계에서 일어나는 학대나 공격이라고 본다. 이런 관점에서 가정폭력에서도 아동학대는 빠지게 되고, 친밀한 관계는 자연스럽게 전·현 배우자와 연인 사이의 폭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친밀한 관계 폭력에는 당연히 물리적, 신체적 폭력이 우선시되고 있지만, 로맨틱 관계라는 점에서 성폭력도 이에 못지않게 문제가 되고 있다. 여기에 최근에는 이별 범죄가 다수인 스토킹 범죄와 가스라이팅까지도 친밀한 관계 폭력의 범주에서 다뤄지고 있다.

이런 현실을 고려해 세계보건기구(WHO)에서는 상대에게 신체적, 심리적 또는 성적 해악을 가하는 모든 행위라고 친밀한 관계 폭력을 규정하고 있다. 이를 좀 더 구체적으로 신체적·심리적 또는 성적 해악을 초래하는 폭력에 물리적 공격, 성적 강제, 심리적 학대와 통제 행위가 포함된다고 미국 질병통제센터는 규정하고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한국 경찰은 세계보건기구나 미국 질병통제센터의 규정과는 약간 결을 달리한다는 점이다.

즉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에 초점을 맞춰 경찰이 사용하는 관계성 폭력에 친밀한 관계 폭력을 포함시키고 있어서 아동학대까지도 포함시키는 반면, WHO나 CDC에서는 이를 단순히 관계 자체보다는 그 관계에서 비롯한 힘의 불균형에 더 초점을 맞춰 그 원인으로서 사회의 성 불평등을 초래하는 것으로 지적되고 있는 사회구조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다.

우리 경찰은 아동학대도 관계성 폭력 또는 친밀한 관계 폭력에 포함시키지만 WHO나 CDC에서는 아동학대를 대신해 성폭력을 포함시키고 있다.

이처럼 우리 경찰의 시각과 WHO나 CDC의 친밀한 관계 폭력을 바라보는 시각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떤 시각과 접근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등장한 친밀한 관계 폭력의 더 나은 대책이 될까?

일단, 우리 경찰의 접근은 대체로 사후 대응적인, 형사사법적 접근에 초점을 맞추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친밀한 관계 폭력의 근본적인 해결은 이미 발생한 폭력 자체를 구제하거나 벌하기보다는 폭력이 일어날 수 있었던 근원적인 원인의 해결이 필요하다. 이런 측면에서 친밀한 관계 폭력을 저변의 원인이라고 할 수 있는 불평등한 관계, 불평등한 힘의 균형 등에 초점을 맞추는 관계 폭력보다는 젠더 폭력으로 다루는 것이 어떨까?

그런 면에서 WHO나 CDC의 친밀한 관계 폭력의 규정과 접근이 문제의 근본적 해결에 더 가깝지 않을까? 바로 폭력 자체에만 초점을 맞추는 형사정책보다는 그 이전에 남녀 간 불평등한 관계가 가능해질 수 있는 사회구조의 변화와 이를 위한 공중보건 접근이 필요하다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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