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박찬욱 감독은 신작 <어쩔수가없다>에서도 상징·미장센 활용에 대한 극찬을 듣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핍진성이 부족해 관객의 호불호가 엇갈린다. 과연 박 감독의 영화 철학은 지금과 같은 OTT 시대서도 이어질 수 있을까?

박찬욱 감독의 신작 <어쩔수가없다>는 지난달 29일 기준 관객 289만명을 동원하면서 극장 개봉을 마무리 짓고 있다. <어쩔수가 없다>는 마치 찰리 채플린의 영화 <모던 타임즈>의 100년 후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이 영화는 <헤어질 결심>에 이어 상징·미장센의 활용이 정점에 달했단 평을 듣고 있다.
초현실주의
박 감독의 작품 성향에 대해선 평소 “초현실주의·표현주의 성향이 짙다”는 평이 따라다닌다. 이런 평을 듣는 박 감독 고유의 특징은 ▲문어체 대사 ▲극단적 설정 ▲다수의 상징·미장센 사용 ▲현실에서 벗어난 연출 등이 거론된다.
박 감독은 20세기 벨기에의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어쩔수가없다>는 지난 2016년 개봉한 <아가씨>에 이어 마그리트의 영향을 많이 제시하는 작품으로 꼽힌다.
<어쩔수가없다>에선 마그리트의 ‘빛의 제국’ 연작 오마주가 자리 잡고 있다. <아가씨>에선 마그리트의 1937년 작 ‘금지된 재현’의 오마주가 제시된다. <어쩔수가없다>는 서사 전반이 마그리트 특유의 비틀기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는 평이 많다.
박 감독과 마그리트의 작품 전반을 관통하는 핵심은 ‘낯설게 하기’라고 볼 수 있다. 낯설게 하기는 20세기 러시아서 창안된 시 창작 이론이다. 낯설게 하기의 핵심은 사물의 통상적인 이미지를 낯설게 표현하면서 시적 미학을 완성하는 것이다.
고정관념과 사물의 배치를 낯설게 만들면서 현실에서 벗어난 다른 방향의 사유를 제시한다는 취지로 볼 수 있다. 그래서 마그리트의 작품은 다른 거장들에게도 많은 영감을 준 것으로 알려졌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천공의 성 라퓨타>와 <하울의 움직이는 성>을 디자인할 때 마그리트의 1959년작 ‘피레네의 성’으로부터 영감을 얻었다.
박 감독은 색채 대비를 능숙하게 사용하면서 의미를 부여한다. 박 감독의 색채 대비가 정점에 달했던 작품은 <헤어질 결심>이다. 박 감독은 <헤어질 결심>에서 주인공들을 각각 바닷가에 세워놓은 후 여주인공 서래에겐 블루톤 색감을 부여하고, 남주인공 해준에겐 오렌지톤 색감을 부여한다.
정점 다다른 색채 대비로 의미 부여
낯설게 하기 넘어 ‘특유의 비틀기’
하지만 카메라의 상하 이동은 정반대로 움직인다. 이들의 캐릭터 특징을 설명하면서 결말까지 암시하는 핵심 장면으로 통한다.
박 감독이 현실을 낯설게 표현해 비유적·극단적 연출을 하면서 생기는 약점은 핍진성이다. 박 감독의 영화를 두고 관객의 호불호가 갈리는 것은 작품 개봉 때마다 따라오는 반응이다. 이는 초현실주의 성향 연출로 인해 작품에 몰입하기 어려워하는 관객이 많은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극장에선 2시간 동안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로 작품을 봐야 한다. 이 때문에 핍진성이 중요하지만, 박 감독은 핍진성보다 고유의 초현실주의를 더 비중 있게 다룬다.
박 감독이 알프레드 히치콕·구로사와 아키라·페데리코 펠리니·김기영 등 거장들을 선호하는 것을 고려할 때, 이는 약점이 될 수도 있다. 이들도 초현실주의 성향을 일정 부분 받아들여 서사·미장센 구성이 독특해진 것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이들은 서사의 밀도가 꽉 찬 작품들을 연출하는 감독으로도 유명하다. 특히 히치콕·김 감독은 서스펜스 스릴러 영화 전문이었다. 서사가 부실한 서스펜스 스릴러 영화는 성공하지 못한다.
<헤어질 결심>과 <어쩔수가없다>에 이르러, 박 감독은 서사 이해에 큰 영향을 주는 중요한 상징조차 찰나의 순간만 보여주며 휙휙 스쳐 보내는 연출을 즐겨 사용했다. 이는 박 감독의 열성 팬이 아닌 일반 관객으로선 서사가 뚝뚝 끊겨 이해하기 어렵단 문제로 느껴진다.
이 때문에 호불호 논란은 더욱 거세진다. <공동경비구역 JSA>나 BBC 6부작 드라마 <리틀 드러머 걸>은 밀도 있는 서사로 호평 받았다. 이를 고려할 때, 박 감독의 최근 연출은 의도적이라고 해석할 소지가 강하다.
의미심장한 것은 박 감독이 왕자웨이 감독의 영화에 비판적이란 사실이다. 왕 감독은 서사의 밀도·성숙도는 크게 신경 쓰지 않고 뮤직비디오 방식의 스텝 프린팅 기법을 즐겨 사용했다. 그러다가 <화양연화>에선 종전 작품과 다르게 느리고 정적인 화면 구성을 통해 불륜을 다룬다. 왕 감독도 박 감독처럼 열성 팬을 거느리고 있다.
극장 관람과 거리 먼 부실한 핍진성
OTT 시대에도 계속 통할지 의문 남아
박 감독은 지난 1999년 영화 월간지 <키노>와의 인터뷰에서 왕 감독의 1994년 작 <중경삼림>을 과대평가된 영화 5위로 꼽았다. 그는 “고독한 게 뭐가 자랑이라고, 고독하다고 우기면서 알아달라고 떼쓰는 태도가 싫다”며 “수건이나 비누를 붙들고 말 거는 장면은 기가 막힐 따름”이라고 평가했다.
이 관람평은 박 감독이 <헤어질 결심>을 공개한 이후 특히 더 많이 거론되고 있다. <헤어질 결심>과 <화양연화>는 소재와 일부 구성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화양연화>의 일부 장면을 오마주한 것으로 보이는 흔적도 있다.
그런데 부실한 핍진성은 역설적으로 박 감독에겐 상업적 성공을 안겨주고 있다. 박 감독의 영화는 대중성과 다소 거리가 있다. ‘박찬욱’이란 이름값이 없었다면, 흥행이 어려운 측면이 있다.
하지만 박 감독은 <올드보이>로 칸 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받은 이후 열성 팬 집단을 형성했다. 이들은 박 감독의 영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다른 관객들에게 비판적이다. 이들은 극장에서 박 감독의 영화를 N차 관람하면서 사소한 미장센이라도 완전히 이해하기 위해 노력한다. 이는 박 감독의 상업적 성공으로 연결된다.
공교롭게도 이는 칸 영화제 심사위원장으로서 박 감독에게 상을 줬던 미국의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영업 전략과 비슷한 측면이 있어 의미심장하다. 박 감독과 타란티노 감독 모두 지적 만족을 원하는 열성 팬 집단이 형성돼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엄청난 영화광인 타란티노 감독은 다른 작품의 오마주를 수없이 활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타란티노 감독의 오마주들을 분석하는 글들은 매우 흔하고, 열성 팬은 N차 관람을 통해 오마주를 탐색한다.
저무는 스크린
하지만 박 감독의 영업 전략이 언제까지 유지될진 알 수 없다. 극장의 시대가 저물고 있고, OTT 시대는 성큼 더 가까이 다가왔기 때문이다. OTT에선 월정액을 지불한 후 추가 비용 지출 없이 원하는 영화를 반복해서 볼 수 있다. 코로나19와 극장 관람 비용 인상 이후 OTT는 더 가까운 일상으로 자리 잡았다.
따라서 후세의 영화감독은 박 감독의 방법을 인용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어쩌면 우리는 마지막 극장 키드의 일대기를 생생히 지켜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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