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30 세대가 ‘극우’ ‘극좌’ 프레임에 갇힌 채 또다시 정치권의 먹잇감이 됐다. 한 명이라도 많은 청년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정치인들의 설전이 뜨겁다. 지역은 물론 성별과 나이대마저도 좌우로 갈라지면서 한국 정치가 분열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논란의 불씨는 조국혁신당 조국 혁신정책연구원장이 댕겼다. 한 라디오를 통해 “20·30대 남성이 70대와 비슷한 극우 성향을 보인다. 2030의 길을 극우 정당 국민의힘이 포획하고 있다”고 주장한 것이 화근이다.
먹잇감
이날 조 원장은 “2019년 ‘조국 사태’는 법률적·정치적으로 해결됐지만, 2030 세대는 다르게 생각하는 것 같다. 계속해서 사과했지만, 사과한다고 2030의 마음이 풀리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지금 2030이 느끼고 있는 고통과 분노에 대해 전망을 제시하고 정책을 제시하는 게 제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얼마 뒤에는 “2030 세대 일부, 특히 남성 일부는 극우화됐다”는 발언이 주목받았다. 그는 “어떤 분은 2030이 극우화되지 않았다고 하는데 저는 아니라고 본다”며 “2030 세대 남성 극우화엔 그들이 처해있는 사회·경제적 조건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 문제 해결이 정치인으로서 제 임무이며 극우화된 부분은 용인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로부터 한 달 뒤에는 자신의 SNS를 통해 ‘서울 잘사는 청년은 극우’라는 제목의 기사를 공유하기도 했다. 조 원장이 기사를 공유하자 보수 진영이 곧바로 들고 일어섰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서울 거주, 경제적 상층 청년’이 극우라면 자신의 딸인 조민씨도 극우냐”며 “자신에게 비판적이라는 이유로 2030 남성을 극우로 낙인 찍고 세대, 젠더 갈등을 정치적 자산으로 삼고 있다”고 지적했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 역시 “조 원장이 본인을 안 찍는 사람을 싸잡아서 적대시하는 것(이야말로) 극우에 해당한다”며 “대일 관계에서 긴장을 고조시키고, 죽창가를 얘기하면서 배타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도 극우”라고 밝혔다. 이 대표는 “조 원장은 진보주의자와 민족주의자의 혼종”이라며 “갈라치기 하는 모습을 보면 극우”라고도 비판했다.
이낙연 전 총리와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도 말을 보탰다. 이 전 총리는 “한 정치인이 2030 세대가 ‘극우화됐다’고 말하자 비판과 반발이 이어졌다. 한 세대를 한마디로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면 ‘일반화의 오류’에 빠지기 쉽다”고 말했으며 김 전 위원장은 “그 사람들이 조국 전 대표에 대해 비판적인 얘기를 한다고 극우화 현상이라고 하는 것은 잘못된 표현”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잘사는 서울 청년=극우” 발언 일파만파
지역 넘어 세대·젠더로 급 번지는 갈등
그럼에도 조 원장은 “주장을 철회할 생각이 없다”며 “국민의힘에서 비난을 퍼부었지만 이는 제 주장이 아니라 사실이다. 2당이자 제1야당인 국민의힘이 급속히 극우화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이 대표를 향해서는 “2030 세대 남성 전체를 비난한 것이 아니라 일부의 극우화 현상을 우려하고 있다”며 “이 대표가 마치 제가 세대 전체를 비난한 것처럼 공격하는데, 독해력부터 좀 길러야 한다”고 꼬집으면서 설전이 벌어졌다.
이에 이 대표는 “전라도 사람을 싸잡아 특성을 분석해 보려는 시도가 결국 지역 갈등을 낳았고, 유대인을 싸잡아 그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 보려는 시도가 홀로코스트의 씨앗이 됐다”며 “남녀노소 누구든 극우적 행태를 보이는 사람이 있다면 구체적으로 그 행동을 비판하되 2030을 극우로 싸잡지 말라”고 받아쳤다.

혼란이 시작된 건 비상계엄 이후 탄핵 정국에 접어들면서다. 탄핵에 찬성하는 이들은 응원봉을 들고 국회의사당으로, 반대하는 이들은 ‘STOP THE STEAL’ 카드를 들고 서울 한남동으로 향했다.
이때부터 정치인들은 온·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2030 세대를 정치 한가운데로 끌어들였다. 정치인은 그들이 원하는 말을 대변하고, 반응을 유도하면서 양 집단 간의 틈새를 서서히 벌렸다.
이 과정에서 ‘백골단’으로 불리는 이른바 ‘반공청년단’ 등이 생겨났다. 이들이 활동범위를 넓혀가면서 탄핵 찬성 집회와 정면으로 맞붙었고 일부 정치인은 이들의 발언에 힘을 실어줬다. 일련의 과정은 전파를 타고 고스란히 대중에게 노출돼 또 다른 분열을 탄생시키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정치인이 ‘청년’에 꽂힌 이유?
“미래 위한 투자” 결국엔 ‘표심’
2030 세대의 갈등은 6·3 조기 대선 결과에서도 볼 수 있었다. 출구 조사 결과 20대 남성의 37.2%는 이준석 후보를, 36.9%는 김문수 후보를 선택했다. 반면 20대 여성 58.1%는 이재명 후보를 선택한 것으로 드러났다.
정치인에게 있어 2030 세대는 미래 자산이다. 이들이 차지하는 비율도 결코 낮지 않다. 행정안전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의 선거인 수는 총 4428만11명이다. 이 중 18~29세 선거인 수는 701만3499명으로 약 16%를 차지한다. 수십 년 후 이들이 기성세대가 됐을 때를 위해 미리 표밭을 가꾸는 셈이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대표적인 예시로 이준석 대표를 꼽았다. 그는 “이 대표의 언행이 ‘갈라치기’라고 매번 쓴소리를 들어도 자기기 팬만 챙기는 이유가 뭐겠냐. 지금은 큰 힘도, 돈도 없는 젊은이지만 시간이 지나 이들이 기득권이 됐을 때를 기다리는 것”이라며 “앞으로 다가올 모든 선거에 미리 투자하는 거라고 본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는 “어느 특정 집단을 설득해서 내 편으로 만드는 것보다 상대편을 혐오하고 불신하게 만드는 게 더욱 쉽다. 특히 요즘 같은 온라인 시대에는 감정을 부추기면 여론은 알아서 형성된다”고 말했다.
이어 “‘저쪽’을 막기 위해 ‘나’를 찍어 달라고 호소하기만 하면 된다. 점점 더 갈라치기 정치 허들이 낮아지는 이유”라며 “한 표라도 더 쉽게 얻기 위한 정치인들의 가벼운 언행이 문제다. 한번 갈라진 집단은 쉽게 봉합되지 않는다”고 우려를 표했다.
이에 2030 세대를 정치적 도구로 사용한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선거 때마다 정치인들은 청년 맞춤 공약을 들고나오지만 막상 당선되고 난 뒤에는 뒷전으로 미룬다는 점에서다.
베스트셀러
청년 당원으로 활동했던 한 정당 관계자는 “정치인들은 ‘젊은 피’라는 단어를 무척 좋아한다. 단체사진을 찍어도 청년이 한두 명 정도 있어야 활기차 보이고 또 조직 간 소통도 원활하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라며 “그렇게 탄생한 청년 공약은 범위가 좁고 무엇보다 실제 청년들이 실효성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정치권에서 ‘청년’이란 단어는 잘 팔리는 키워드 중 하나인 만큼 선거 때마다 들러리 세우는 행태는 끊이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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