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연재> 선감도 ⑦골방에 갇힌 50개 눈동자

  • 김영권 작가
2024.06.17 04:00:00 호수 1484호

“정치가 자기들만의 장난은 아니어야지.” 김영권의 <선감도>를 꿰뚫는 말이다. 박정희 군사정권 시절 청춘을 빼앗긴 한 노인을 다뤘다. 군사정권에서 사회의 독초와 잡초를 뽑아낸다는 명분으로 강제로 한 노역에 관한 이야기다. 작가는 청춘을 뺏겨 늙지 못하는 ‘청춘노인’의 모습을 그려냈다.



적막이 감도는 방 안에서 번들거리는 50여개의 눈동자가 문을 들어서는 두 신입의 일거일동을 뚫어지게 주시하고 있었다. 

그 살벌한 공기는 퀴퀴한 마룻바닥 냄새와 더불어 당장이라도 둘을 질식시켜 버릴 것만 같았다.

피에로가 기진한 듯 소리없이 무릎을 꿇고 앉았다.

자석에 이끌리듯 용운도 따라 꿇어앉았다. 

서해안 참선


“오, 들어들 왔니?”

한쪽 벽에 비스듬히 기대 있던 땅딸한 체구의 사내가 느릿느릿 입을 열었다. 거드름이 잔뜩 스민 음성이었다.

“예.”

“오느라구 수고했다. 괴롭지?”

“괜찮습니다!”

“뭘, 피곤할 텐데 다리 뻗구 편히들 앉아라.”

“괜찮습니다!”

“그러지 말고 다리 뻗구 편히 앉으라니까 자꾸 그러네.”

“아닙니다!”

“어허! 그냥 편히 앉으라니까. 괜히 우리가 미안시럽구먼.”


더 이상 사양하는 것도 상대방의 신경을 자극하는 일이라 싶었는지 피에로가 조심스럽게 다리를 움직였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가까이에 있던 스라소니 눈매의 원생 하나가 한쪽 다리를 번쩍 날리더니 피에로의 턱을 사정없이 차버렸다. 

“으악!”

채이고 튕긴 피에로는 벽에 또 한번 머리를 찧곤 구석으로 처박혔다. 용운은 마른침을 삼켰다. 

“이 잡새끼가 황천 갈라구 환장했나. 반장님이 편히 앉으랬다구 겁도 없이! 니네덜 외가집 사랑방에 놀러 왔냐, 응?”

피에로가 황급히 상체를 바로 세웠다.

“죄, 죄송합니다. 잘못했습니다!”

“죄송은 죄인을 찌르는 송곳이냐, 쌍놈아?”

스라소니 눈이 또다시 그의 옆구리를 우악스럽게 내질렀다. 좀 전의 땅딸보가 신입들을 향해 손가락을 까딱거리자 스라소니가 말했다.


“얘들아, 반장이신 백곰 님이시다. 짜식덜아, 어서 인사드려.”

시키는 대로 다가가서 정중하게 머리를 숙이자 반장은 손짓으로 앉으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러고는 먼저 피에로에게 물었다.

“문패는?”

“예?”

“니 이름도 모르나, 짜슥아!”

스라소니가 윽박질렀다.

“아, 예, 김순식입니다!”

반장 백곰과 스라소니 원생
“국가발전의 백년대계 위해”

“각설이였냐?”

“아닙니다. 고아원에 있었습니다!”

“고아원에 있던 놈이 여긴 어떻게 걸려 왔냐?”

“저…… 채플린처럼 아기의 아이스케키를 훔쳐 먹다가 그렇게 됐습니다!”

“뭐? 니가 채플린이냐? 사람 웃기려 하는군.”

반장은 비스듬히 기댄 채로 피에로의 면상을 발로 힘껏 걷어찼다.

“같잖은 새끼 같으니.”

“으악!”

비명과 함께 얼굴을 싸쥐는 피에로의 두 손 사이로 금세 코피가 주룩 흘러내렸다. 그래도 반장의 표정엔 털끝만한 동요조차 일지 않았다. 그런 그가 이번엔 용운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넌 문패가 뭐야?”

“윤용운입니다. 콜록!”

긴장으로 입 안에 잔뜩 고인 침을 삼킴과 동시에 말을 하다가 그만 사레에 들리고 말았다.

“거지였냐?”

“콜록, 예!”

“걸달던 무대는?”

“예?”

“빌어먹던 데가 어디냐구, 새꺄.”

“그냥 여기저기 도, 돌아댕겼습니다. 콜록…….”

“시꺼러, 개새꺄!”

눈앞에 번개가 번쩍했는가 싶은 순간 용운은 백곰의 발길에 이마빼기를 된통 채이곤 뒤로 나뒹굴었다.

백곰은 문득 음성을 착 깔더니 은근스럽게 말했다.

“에~ 그건 그렇고, 잘 들어둬. 우리들은 시방 국가발전의 백년대계를 위하야 에~ 돼먹잖은 소싯적 악습을 몽땅 털어버리구 여기 서해안 무인도에서 참선을 하시는 중이라 말씀이여. 알아듣겄는감?”

“예!”

먼지 털기

“그런데 참선의 경지가 석가모니 큰형님하구 동등해지려는 찰나에 두 분께서 또 바깥 세상의 타락한 먼지들을 묻혀갖구 들어왔단 말씀이야. 그러니 이 노릇을 어째야 되겄는가?”

두 신입은 묵묵부답인 채 반장의 눈치만 살폈다. 

“먼지를 털어야 되겄지? 우리들이 오염되기 전에 말여.”

말할 여지가 없었다. 어느새 스라소니 눈을 가진 원생이 부러진 삽자루를 가지고 와서 문 앞에 버티고 서 있었다. 


<다음 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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