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호 교수의 대중범죄학> ‘밀양 성폭행 사건’ 재소환이 주는 교훈

  • 이윤호 교수
2024.06.15 00:00:00 호수 1484호

20년 전 발생했던 사건이 재소환돼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다. ‘밀양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이 바로 그것이다.



당시 남자 고등학생 44명은 만 13세 여중생을 비롯한 미성년 여자 아이 5명에게 1년 넘게 집단 성폭력 범죄를 저질렀다.

피의자들은 거짓으로 유인해 둔기로 때려 피해자를 기절시킨 뒤 여인숙으로 데려가 윤간했고, 그 장면을 촬영해 협박하는 방식으로 여인숙, 축사, 비닐하우스, 마을버스 등에서 집단 성폭력을 가했다.

그러나 어찌된 영문인지 피의자 중 단 한 명도 제대로 된 처벌을 받지 않았고,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다.

잊힌 듯 했던 이 사건은 최근 특정 유튜브 채널이 가해자들의 신상을 공개한 것을 계기로 다시 회자되는 양상이다. 물론 여기에는 두 가지 상반된 시각이 자리하고 있다.

‘사적 제재’라고 불리는 신상 공개는 근본적으로 사법 불신으로부터 시작된다. 사법 불신의 원인은 당연히 현재의 사법제도가 시민의 법 감정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현실 때문일 것이다.


법과 제도가 공적으로 사법 정의를 실현하지 못하면 절박함을 느낀 시민과 사회가 스스로 지키려 하는 일종의 자경주의가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된다. 공개적인 망신을 줘서라도 일말의 사법 정의를 구현하려는 게 신상 공개를 통한 사적 제재의 순수한 의도일 것이다. 

다만 사적 제재와 관련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존재한다. 일단 신상을 공개한 사회적 매체가 사적 이익의 창출 여부에 따라 의도의 순수성을 의심받을 수 있다. 실제로 신상을 공개한 유튜브 채널은 구독자가 10배 이상 증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금전적 이득을 비롯한 사적 이해관계가 전혀 없는 순수한 의미에서의 사적 제재라고 해서 반드시 긍정적인 면이 부각되는 건 아니다. 가장 우려되는 건 피해자의 ‘2차 피해자화(Secondary victimization)’다.

20년 전 일이 재소환된 이번 사건만 보더라도 피해자가 참담한 기억을 떠올리게 될까 두렵지 않을 수 없다.

피해자와 피해자 지원단체 측이 신상 공개에 동의하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사법 정의 실현을 내세워 피해자에게 또 다시 피해를 가하는 행위는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피해자가 우선이고, 모든 결정서 우선적으로 피해자를 지향해야 한다.

또 다른 무고한 피해자를 만들 수 있다는 우려도 생각해봐야 한다. 이번 공개에서도 유튜버의 오판과 잘못된 정보로 사건과 무관한 무고한 시민이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어떤 경우라도 무고한 시민이 억울한 피해자가 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현실적으로 개인이 정보에 접근하는 건 그리 쉽지 않은 일이고, 잘못된 정보에 기대면 오판의 위험성이 클 수밖에 없기에 더욱 신중해야 한다. 또 원칙적으로 형벌권, 특히 형벌 결정권은 국가 고유의 권한이라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

사적 제재를 위한 신상 공개가 불필요한 사회가 가장 바람직하다는 건 모두가 동의하는 사안일 것이다. 신상 공개가 국민의 법 감정과 제도적 법 해석의 간극서 초래된 것이라면, 먼저 대법원 양형위원회서 간극을 최대한 좁히기 위해 양형기준을 바로잡아야 한다.

양형기준의 상향 조정으로 해결될 수 없는 것이라면 기존 법률의 개정과 보완으로, 그래도 부족하면 국민의 법 감정을 제대로 반영하는 새로운 법률의 제정과 이를 제대로 이해하고 집행할 수 있게끔 사법제도를 구축해야 할 것이다. 국민의 법 감정과 괴리된 사법제도는 존재의 이유를 의심받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윤호는?]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명예교수
고려사이버대 경찰학과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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