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삼의 맛있는 정치> 22대 초선 의원들에게 바란다

2024.05.23 09:12:46 호수 0호

며칠 후 역사 속 사라질 21대 국회는 한국 현대 정치사에서 가장 추악한 모임이었다. 금배지를 단 선거 사범은 임기를 마치도록 재판이 끝나지 않아 누릴 호사들은 모두 누리고, 형사 피의자들이 활개를 치는 여의도의 민낯을 보였다.



물론 확정판결 이전의 무죄추정의 원칙을 내세운다면 더 논의할 일이 없겠지만, 우리의 현실에는 이제 수치마저 사라졌다. 초등학교 사회생활 교과서에 수록된 최소한의 양식도 이제는 우리의 기대를 저버렸다.

22대 국회의원 선거에 당선된 초선의원들에게 바라는 바는,

첫째로 정치를 애증이나 사사로운 복수의 도구로 쓰는 것은 좋은 정치가 아니라는 것이다. 학회서 나라 장래를 걱정하던 중, 누가 “우리나라의 정체를 ‘대통령 격노 중심제’라고 하기에 나는 한술 더 떠서’ 대통령 복수 중심제”라고 응수했다.

1945년 해방 이후 역사를 되돌아보건대 대통령만 바뀌면 지도급 인사 몇 명이 자살하거나 의문사를 겪었다. 100명 정도가 형사처벌을 받았는데, 형량을 합치면 대략 징역 200년 정도였다.

육군 대장이 당번병에게 구두를 닦도록 하고 꽃밭에 물을 주게 한 것이 병사의 인권을 짓밟은 죄가 돼 구속된다면 이는 사람 사는 도리가 아니다. 권력을 잡아 이미 승자가 됐으면 가슴이 넓어야 하는데, 한국의 지도자들 대부분은 일신의 호강과 복수에 중요한 가치를 둬왔다.


중국 춘추전국 시대 제나라 재상 관중의 운명이 가까워졌다는 말을 듣고 환공이 그를 찾아가 “경이 세상을 떠난 다음에 누가 그 자리를 이을만합니까”라고 물었다. 환공은 거듭 “포숙이 어떻겠습니까”라고 관중의 뜻을 물었다.

그 말에 관중은 “그 사람은 안 됩니다. 남의 허물을 평생 기억하기에 재상 재목이 아닙니다”라고 답했다.

인간이 살아가면서 다치고 부디끼다 보면 왜 애증이 없겠는가?

그러나 그것은 대체로 사사로운 감정인 경우가 많다. 한국 정치사에서 애증의 문제는 ‘헤어지는 인연’을 헌신짝처럼 버렸기 때문에 일어나곤 했다. 종교적 체험과 관계없이 한국인의 심성에는 석가모니의 핵심적 가르침인 ‘인연’에 대한 소중함을 익히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독 정치 무대에선 이 인연이 무상하다.

국민의힘 김기현과 이준석을 그런 방식으로 대표직서 몰아내는 것은 지혜로운 방법이 아니며, 홍준표와 나경원이 그런 식으로 척지는 것은 하책의 자해였다.

그러니 어떻게 해야 하나

버린 사람은 공의로운 처사였다고 말하지만, 버림받은 사람은 가슴에 비수를 맞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특히 젊은이의 앞길에 한을 안기는 것은 마지막까지 고민했어야 했다. 독기에 찬 이준석은 처음부터 정적이었던 대상보다 원한이 깊다.

그도 젊은 나이에 실수한 바가 있을 수도 있겠으나 그런 식으로 헤어지는 것은 어른의 도리가 아니다. 정치가 증오로 변할 때 피해자만 아픈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도 상처가 되며, 가장 피해를 보는 무리는 국민이다.

둘째로 최소한의 염치를 아는 국회의원이 되기를 진심으로 빈다. 인간은 어느 정도의 염치와 수치를 알아야 한다. 최소한 자식 앞에 떳떳하게 설 수 있는 정도는 갖춰야 하지 않겠는가. 하기사 작금의 우리 사회는 부모와 자식이 머리를 맞대고 허위공문서를 작성하니 자식에게 부끄러워할 것도 없다.

자식 보기에 부끄러움을 알 정도라면 당초에 그런 짓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염치는 맹자께서 마지막까지 붙잡아야 할 인륜이라고 가르쳤다.


그러기 위해선 먼저 168개에 달하는 의원 특혜 가운데 스스로 부끄럽다고 여기는 조항을 없애야 한다. 이 정도라면 한국의 국회의원은 호강을 위한 자리지, 국민을 위한 자리가 아니다. 누구인들 초심에 우국심이 없었을까마는 21대 국회의원들은 인면수심이었다.

셋째로, 국회의원 불체포특권을 포기해야 한다. 이제 국회는 더 이상 소도(蘇塗)가 되어서는 안 된다. 21대 국회의원의 33%가 전과자였다. 사실 한국서 이 정도의 범죄율이 높은 공직사회는 국회와 지방 의회밖에 없다.

국회의원이라고 자신을 소개한다든가, 아니면 뒷날 자신을 전직 국회의원이라고 소개할 때 국민의 인식이나 반응이 어떨지를 생각해 보시라. 존경하고 부러워할 국민이 몇이나 될까? 거의 없을 것이다. 호강하는 것만으로 치르기에는 너무 비싼 대가다.

넷째로 절대로 줄 서지 마라. 한국의 국회의원이 국회에 입장하는 모습은 외국 관광지서 깃발 들고 앞장서 가는 관광 안내원을 따라가는 패키지 관광객 같다. 그것은 들쥐들이나 하는 짓이다. 시라큐스의 격언 중 “바르게 살지 않으면 정치는 가장 아름다운 수의가 될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아무쪼록 22대 국회를 마쳤을 때 국민에게 갈채 받는 국회의원으로 남길 바라며…

김명삼 대기자
<hntn118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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